악당 상어만 보셨죠? 뻔하지 않은 애니메이션의 탄생

[김성호의 씨네만세 1370] <돌핀보이 : 푸른 바다의 수호자>

아이 앞에선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란 말처럼 우리도 모르는 새 아이들이 부모와 교사, 어른들의 모양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이다. 좋은 것만 닮아 가면 더없이 좋으련만, 우리의 못한 것을 아이들이 이어받는 모습이 얼마나 흔한가를 생각한다. 어른들이 이루지도, 이르지도 못한 더 나은 세계를 우리의 아이들은 마땅히 이루고 이르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못난 것을 경계하며 좋은 모습을 이어받도록 해야 할 테다.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은 그래서 남다른 주의를 들여야 한다. 혹여 어른들의 못난 점이 미처 의식하지 못한 채로 반영되면 아이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같이 우리도 모르는 새 인식과 판단에 영향을 주는 몹쓸 장막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드리워져선 안 될 일이다. 한 번 자리 잡은 장막은 두터워지긴 쉬워도 걷어내긴 어렵다. 디즈니가, 비록 인종과 여성에만 해당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뒤집는 캐스팅과 설정을 꾸준히 강조해 온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은 아무렇지 않게 작품에 스며든다. 올해 개봉한 아동용 애니들의 문제를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테면 태국 역사상 최대 흥행작으로 한국에도 개봉한 <아웃 오브 네스트>는 유전과 혈통의 특별함을 강조하고 신분제를 고착화하는 설정과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왕실에 대한 비판을 헌법으로 금지하며 왕실이 군부와 결탁해 민주화 요구를 억눌러온 태국 역사와 함께 보자면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돌핀보이 : 푸른 바다의 수호자 스틸컷
돌핀보이 : 푸른 바다의 수호자스틸컷(주)팝엔터테인먼트

쉬운 설정 뿌리치고 세심한 배려를

마찬가지로 <마법 숲 동물 친구들 대모험>은 육식동물은 나쁘고 초식동물은 선하단 설정을 두고 있고, <펫 트레인>은 야생동물을 악당으로, 반려동물을 희생자로, 공생동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이들 영화를 본 한국 관객을 더하면 3만 명이 훌쩍 넘는데, 이와 같은 문제를 지적하는 비평은 찾아볼 수 없는 형편이다. 한국 평론가들의 게으름을 탓하며 나는 이와 같은 글을 거듭 작성해 알리고자 애쓴다. 낡은 주제의식과 비좁은 사유의 틀이 우리 아이들의 세계인식을 낡고 좁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신작 <돌핀보이 : 푸른 바다의 수호자>는 흥행이 예고된 기대작이다. 앞서 언급한 세 작품 이상의 흥행을 내다보는 이도 적지 않은데, 2023년 2만5000명의 관객이 든 <돌핀보이>의 후속작인 때문이겠다. 푸른 바다를 헤엄치는 아이와 그를 둘러싼 수많은 해양생물을 시각화하는 기술력도 전작에 비해 더욱 나아졌단 평이다. 비슷한 작품을 찾기 어려운 만큼 아이들과 함께 극장에 걸음하려는 부모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다.

앞선 세 작품과 달리 이 영화를 적극 권한다. 그는 이 영화가 가진 기본적인 얼개와 그것이 주는 재미에 더하여 앞서와 같은 우려를 세심하게 제거한 수고로움 때문이다. 영화는 돌핀보이라 불리는 소년의 이야기다. 부모를 잃고 돌고래에게서 길러진 소년 '보이'가 저를 돌봐준 돌고래를 잃고 겪는 사건을 다루었던 게 전작 <돌핀보이>다. <돌핀보이 : 푸른 바다의 수호자>는 그로부터 제법 시간이 흐른 뒤의 시점에서 펼쳐지는데, 전편에서 저를 도와준 선장 내외와 여러 동물들의 지지로 또 다시 닥쳐온 위기를 극복하고 진짜 부모와 조우하기까지를 다룬다.

돌핀보이 : 푸른 바다의 수호자 스틸컷
돌핀보이 : 푸른 바다의 수호자스틸컷(주)팝엔터테인먼트

선악의 고정적 잣대를 넘어서

더 빠르고 짧은 템포로 위기와 극복을 지속하는 건 요 근래 나오는 아동용 애니의 특징이다. 이미 유튜브를 비롯한 온갖 짧은 호흡의 영상에 노출된 아이들을 붙들기 위해 자극을 지속하는 것이다. 영화는 바다, 그것도 바닷속이라는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 또 돌고래와 상어, 범고래 같은 일상적으로 보기 어려운 해양생물을 등장시켜 관심을 붙든다. 선과 악의 이분적 잣대를 활용해 주인공이 이들과 대척점에 놓이는 상황 또한 수차례 활용하니, 아이들은 그 성패에 자연스레 몰입하게 된다.

흥미로운 건 영화가 그저 선악의 고정적인 잣대를 활용하고 있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한 편의 장편영화 안에서 여러 기승전결을 병렬적으로 놓아두고 거듭하여 선과 악의 대결을 이어가야 하는 제약을 흥미롭게 돌파한다. 단순히 에피소드와 에피소드를 병렬로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의 것을 뒤집는 전복과 확장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도입부는 돌핀보이와 돌고래가 어부를 공격하는 상어에 대항하는 장면으로 꾸려진다. 물론 승자는 돌핀보이와 돌고래인데,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확인되는 건 상어가 실은 악당이 아니라 이들과 한 패거리였다는 설정이다. 즉, 마을의 선장과 돌핀보이가 상어와 결탁해 '위기와 이에 맞서는 마을의 영웅'이라는 극적 효과를 종종 연출하고 있었다는 것. 이는 그대로 영화 속 마을의 비밀이자 본 사건이 빚어지는 환경을 제공한다.

돌핀보이 : 푸른 바다의 수호자 스틸컷
돌핀보이 : 푸른 바다의 수호자스틸컷(주)팝엔터테인먼트

상어 한 마리도 흔하게 쓰지 않는다

재미있는 점은 상어의 활용이다. 통상 많은 영화가 상어를 주인공과 선한 이들을 위협하는 악으로 묘사하고는 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1975년 작 <죠스>에서 상어를 괴수처럼 묘사했을 때까지만 해도 참신했던 이 설정은 이후 수십, 수백 편의 아류작이 나오는 동안 지루하고 진부해졌다.

실제 자연 생태계에서 상어가 인간을 해쳤단 보고가 거의 나오지 않고, 400여 종에 이르는 상어 종 가운데서도 지극히 일부인 10여 종만이 인간을 공격한 사례가 보고되며, 심지어 인간을 먹는 식인상어는 그보다도 예외적임에도 인간은 상어를 악처럼 묘사해 왔던 터다. 실제로는 연간 1억 마리 이상의 상어가 인간에 의해 지느러미가 잘리고 배가 갈라져 알만 꺼내진 뒤 버려진단 사실을 누구도 충실히 고려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영화 <돌핀보이>는 상어를 악당이 아닌 선의 쪽에 배치한다. 그저 그뿐만이 아니라 상어를 악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흔한 고정관념을 이용해 악을 연기하도록 한다. 그저 상어뿐일까. 저 포악하다고 소문난 범고래조차 영화는 그저 포악하게만 놓아두지 않는 것이다. 자연히 영화를 보는 이들은 선과 악의 흔한 구분에, 이미 답습했을 법한 그와 같은 인식에 저항하는 순간과 마주한다.

<돌핀보이 : 푸른 바다의 수호자>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어떻게, 어느 지점에서 이뤄질 수 있고 이뤄져야 하는지 또한 생각하도록 한다. 어른들이 보기엔 유치하고 시시할 수 있겠으나, 아이에겐 얼마든지 달리 가 닿을 수 있는 문제다. 과학과 자연주의, 어업과 공존, 선과 악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가 이 영화 안에 담겨 있다. 푸른 바다를 수호하는 작업과 파괴하는 작업이 모두 인간으로부터 비롯되니,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둘 중 어느 한편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 순간은 필연적이겠다. 나는 이 영화가 그에 작으나 분명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 여긴다.

돌핀보이 : 푸른 바다의 수호자 포스터
돌핀보이 : 푸른 바다의 수호자포스터(주)팝엔터테인먼트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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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