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과 줌인, 홍상수 영화가 특별해지는 방법

[김성호의 씨네만세 1366] 홍상수 전작전 <그녀가 돌아온 날>

데뷔 30주년을 맞은 홍상수 감독이다. 그간 햇수보다 많은 34편의 장편영화를 낳은 그는 왕성하기로는 짝을 찾기 어려운 인물이 됐다. 영화 찍기 정말로 어렵단 불평을 이 영화 저 영화에 넣으면서 영화찍기를 멈추지 않는 그 자세야말로 그 작품만큼, 어쩌면 그보다도 조명할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생태계랄 것이 얼마 되지 않는 한국 독립영화의 척박함 가운데, 그래서 더욱 지속가능한 창작환경을 위해 고투해온 홍상수의 수고는 존중돼 마땅하다. 나는 독립영화의 독립, 그러니까 자본으로부터든 양식화된 영화학적 통념으로부터든 홍상수의 독립성보다 더 치열한 자세를 얼마 보지 못하였다. 딱히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 여긴 적 없는 내가 '홍상수 전작전'을 찾아 작품들을 다시 살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심을 담아 박수를 보낸다.

<그녀가 돌아온 날>은 홍상수의 34번째 장편영화다. 말인즉슨 최근 개봉한 신작이란 얘기다.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6월 중순까지 홍상수 전작전을 여는 것도 신작 개봉에 발맞춰 데뷔 30주년을 챙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과연 현장에선 이 작품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스크린으로 만날 기회를 갖기 어려운 홍상수 감독의 <50대50>까지를 끝에 묶어 깜짝 상영한 것도 시네필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주최 측에선 이 짧은 단편을 통해 홍상수 감독의 영화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자, 그는 신작에서 또 어떤 얘기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놓을까.

<그녀가 돌아온 날>은 제목처럼 한 여성의 복귀로부터 빚어지는 이야기다. 결혼 뒤 연기를 그만뒀던 배우(송선미 분)가 독립영화로 복귀했다. 영화는 그녀가 작품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 하는 날, 하루 동안의 이야기다. 인터뷰 요청을 넣은 기자들을 그녀는 좋아하는 가게에서 연달아 만난다. 독일음식점으로 실제 주인장이 독일인이라고. 영화엔 주인장이 일하며 요리하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어간다. 영화적으로 구현한 장소가 아니라 장소가 그대로 영화가 되는, 그러니까 보다 실재에 가깝게 구현하려는 홍상수의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녀가 돌아온 날 스틸컷
그녀가 돌아온 날스틸컷한국영상자료원

거장 영화에서 보이는 구조의 미학

홍상수의 영화를 아는 이들은 이야기만큼이나 구조를 보고는 한다. 구조에 홍상수 영화의 진짜 미학이 숨어있다고들 말하기를 즐긴다. 아주 틀린 이야기도 아니다. 구조며 상징이 서사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은 뽐내기 좋아하는 평론가들의 생각과 달리 꼭 맞는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적어도 내용과 형식에 대한 한 <논어> '옹야'편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이 언제나 옳다. 바탕이 무늬를 가벼이 여기면 거칠어 보이고, 무늬가 바탕을 앞서면 알맹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홍상수의 형식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 하면 나는 '달리 보게 하기'라 말할 테다. 일상 가운데 흔한 것을 달리 보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무협지의 독문무공처럼 홍상수 '특유'의 것이라 할 만한 수법을 그는 몇 개쯤 갖추고 있는 것이다. 저예산 영화의 어찌할 수 없는 형편 가운데서도 독문무공을 개발해야 했던 그다. 저기 화산파 장문인의 이십사수매화검법만이 독문무공인 건 아닌 것이다. 개방의 제자는 개 잡는 봉을 미친 듯이 휘둘러 고수들을 때려잡는다 했다. 홍상수가 택한 것도 그런 것이다. 손에 쥔 것을 기깔나게 쓰는 법. 어쩌면 어딜 가나 있는 일상을 특별하게 바라보도록 하는 내용과도 꼭 맞는 방법을 마련했다.

홍상수의 영화를 말할 때 빠지는 법이 없는 '반복'과 '줌인'이 그의 독문무공이 됐다. 반복이야 저기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 그러니까 무려 70년도 더 된 옛 영화가 신기원을 이룩했고, 줌인 클로즈업의 역사는 그보다도 훨씬 더 길어 20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적인 광학 줌렌즈가 개발된 1950년대부터는 아주 흔한 기법으로 여겨졌다. 그러니까 새로울 것 없는 이 기법들을 홍상수는 저만의 것으로 오랫동안 단련했다. 마치 정권 지르기를 십구만사천이백번쯤 하면 절예의 대가조차 무릎 꿇릴 수 있는 비기가 되듯이 말이다.

그녀가 돌아온 날 스틸컷
그녀가 돌아온 날스틸컷한국영상자료원

반복과 줌인, 홍상수다움의 효과

모든 수법엔 효과가 있다. 그러니까 수단은 결과를 위해 존재한다. 반복과 줌인 또한 그러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둘의 효과는 한 가지로 모인다. 반복은 같은 짓을 계속한다는 뜻이다. 두 번, 세 번, 때로는 그 이상을 비슷한 일을 한다. 그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것이 있고 잃는 것 또한 있다. 이중 두드러지는 것이 효과이고 잃는 것은 부작용일 테다. 반복하면 무엇이 보이는가.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체에 치면 쭉정이가 걸러지듯, 같은 것은 사라지고 다른 것이 부각된다. 묘한 차이가 부각된다. 관객은 반복으로부터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본다. 달리 보는 것이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인물들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대사들을 두 번, 또 세 번 천천히 뱉고는 한다. 때로는 엇비슷한 장면이 반복되기도 한다. <라쇼몽>에서 그러했듯 인물마다 서로 다른 시점을 대놓고 내보이는 순간도 여러 차례 있었다. 꼭 그와 같지는 않더라도 닮은 장면을 연이어 내보이기도 한다. <그녀가 돌아온 날>에선 후자다.

돌아온 배우는 연달아 세 명의 기자와 대면한다. 비슷한 질문들이 오가고 조금씩 다른 답변 또한 나온다. 누구는 배우가 권하는 음식과 맥주를 거절하고, 누구는 그를 받아들인다. 그 사소한 선택이 큰 차이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중 무엇이 낫고 다른 것이 못할 것을 뉘라서 안다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어지는 또 한 번의 반복이 좋든 나쁘든 승부수가 된다.

그녀가 돌아온 날 스틸컷
그녀가 돌아온 날스틸컷한국영상자료원

단숨에 전환하는 한 순간

줌인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피사체나 카메라를 이동시키지 않고도 초점거리를 조절하는 기법이 낯설게 보는, 그러니까 달리 보도록 하는 힘을 발한다. 왜 그토록 관객은 홍상수의 줌인과 줌아웃을 강렬하게 인식하는가. 그건 이 선택이 자연스러움을 깨우기 때문이다. 많은 현대 상업영화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현실처럼 바라보도록 이끌 때, 홍상수의 줌인과 줌아웃은 그림처럼 멈춘 앵글을 움직여 영화를 인식하도록 한다. 웬만한 연출자는 '깬다'고 기피할 이 낡은 수법이 그렇게 진짜로 '깨는' 효과를 발한다. 관객의 의식을, 어느 것이든 익숙해지려는 나태한 본능을 깨부수는 효과 말이다.

<그녀가 돌아온 날>에서 배우는 세 번의 인터뷰를 마치고 연기수업으로 향한다. 선생(조윤희 분)은 이날 있었던 일을 한 번 써보라고 말하고, 배우는 상대역을 맡은 젊은 배우(박미소 분)와 함께 이날의 인터뷰를 재구성한 연기를 시작한다. 카메라가 곁에서 그 모습을 찍는다. 이 카메라 렌즈를 통해 관객은 영화 안의 영화를 마주한다.

홍상수 영화에서 반복되는 '있는 그대로 보는 일'의 중함이 이번에도 직접, 또 간접적으로 부각된다. 렌즈를 통해서도 진짜를 볼 수 있도록, 구현해낼 수 있도록 배우들은 분투한다. 그런 배우를 이 감독은 악착같이 집어내려 한다. 그러니 관객에게도 제 눈의 렌즈를 걷어 진실하게 영화를 볼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닐까.

홍상수 전작전 포스터
홍상수 전작전포스터한국영상자료원

홍상수식 영화 만들기

그러고보면 전작 <소설가의 영화>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도 같다. 아마도 홍상수 감독 본인이 투영된 소설가 준희(이혜영 분)가 영화를 찍겠다며 제가 찍을 작품을 우연히 만난 배우(김민희 분)에게 설명하는 대목에서다.

감독은 이야기보다도 배우를 구하는 것이, 또 그 배우를 정말 좋아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제 배우를 편안하게 만들고 그 상황에서 빚어지는 무언가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 제 영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배우가 사람과 사건을 만났을 때 빚어지는 진실한 무언가가 있고, 그 무언가가 곧 영화라는 것. 대단한 이야기일 필요 없이 그냥 오랜만에 복귀한 어느 여배우가 기자들과 연달아 인터뷰를 하고 그를 재구성해 연기연습을 하는 내용도 얼마든지 영화가 될 수 있겠다.

준희는 영화가 다큐멘터리냐고 묻는 배우에게 그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극영화라고 해도 진실을 담아내야 한다고, 관객을 사로잡는 데 몰두하는 흔해빠진 가짜와 구별되는 진짜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녀가 돌아온 날>을 보면, 또 홍상수 전작전의 여러 작품을 보다 보면 그것이 어째 홍상수의 영화와 얼추 겹쳐 보이는 듯도 하다.

홍상수의 팬이라 할 수 없고, 여전히 그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나다. 그러나 30년을 지속해온 홍상수 감독의 영화여정 가운데서 사람과 세상, 그리고 자기 자신을 보다 더 진실하게 바라보고 다루어내려는 의지가 엿보인단 점을 여기 기록해둘 만하다. 이와 같은 자세는 예술가에게 마땅한 것이지만 불행히도 충실히 그를 수행하는 이를 나는 얼마 알지 못하고 있는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와 같이 무딘 이들조차 박수치고 감동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나게 될지 모를 일이다. 나는 그 일이 충분히 있을 수가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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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