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튜버가 제주 다랑쉬 오름을 오르며 '힐링' 된다고 행복해하는 장면에서 잠깐 조금 상처받았다. 내 경우 다랑쉬하면 다랑쉬굴이 먼저 떠올라서인데, 아마도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유튜버는 '다랑쉬굴 유해 사건'을 몰랐을 것이다. 제주는 이런 곳이다. 곳곳에 '4.3'의 피눈물이 여전히 묻어나지만 힐링과 관광으로 상징된다. 알고 보면 제주에 '4.3'의 고통을 비껴간 곳이 드물 테지만, '4.3'을 타자화할 수 있는 우리는 '힐링'할 수 있는 것이다.
4월은 생명이 움트는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마음 놓고 행복해지기 어려운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다. '4.3'을 알고 난 뒤부터 그리고 '4.16'이 있은 후부터 내게 4월은 참 고약한 시절이 되었다. 그래서 '4.3'을 다룬 영화 <한란>도 4월을 피해 미루다 겨우 마음을 다잡고 볼 수 있었다.
무고한 죽음
제주 '4.3'의 '다랑쉬굴 유해 사건'을 다룬 허호준의 <4.3, 기억의 폭풍 속으로>도 미루다 읽었다. '4.3'에 대해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비극에 대해, 이 책은 두 피해자의 삶을 교차해 소중한 진실을 알게 해준다. 제주 남로당이 철저히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경찰이나 군인과 대립할 빨치산을 조직해 싸웠다기에는 '빨치산' 혹은 '산부대'의 면면이 그리 균질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수적으로나 무장 전투력으로나 군경에 비해 오합지졸일 제주 남로당은 극악한 군경의 탄압을 피해 숨으며 세를 확장하기 위해 주변인들을 포섭, 회유 혹은 강권해 입산시킨 경우도 있었다. 이를 제주 남로당의 억지 강요로 양민을 '빨치산'을 만들어 희생시켰다는 뜻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군경에 의해 간단히 '폭도'로 정의되는 남로당 '빨치산'이 얼마나 어설프고 우연으로 양민들을 입산시켰는지, 그리고 이로 인해 군경의 지독한 토벌이 정조준한 적이라는 존재가 그들이 그렇게 증오한 '빨갱이'가 결코 될 수 없었다는 말하는 것이다.
산에 오른 이들 중에는 남로당원도 있었지만, 잠시 당적을 가졌거나 남로당원과 친분이 있는 제주민 그리고 이들과 혈연관계에 놓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승만의 계엄 선포 후 본 화된 군경의 서슬 퍼런 '빨갱이' 색출엔 진위 따위를 가리는 최소한의 절차를 무시하고 우선 죽이고 보는 학살로 이어졌기에, 이를 피해 일단 숨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개죽음'을 면하기 위해, 그리고 먼저 올라간 가족의 안위를 알기 위해,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영화 <한란>에 등장한다. 당장 먹을 것과 죽이라고 끓일 솥단지를 이고 지고 살육을 피해 산에 오른다. 이 무고한 양민이 토벌대에게 학살 실적을 올릴 수 있는 '폭도 빨갱이'가 되는 것이다. 잔혹한 시절이었다.
먼저 산에 오른 해생 아버지 강이철은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해 하산하려다 '산부대'원들에게 살해당한다. '산부대'의 거취가 노출될 것을 우려한 살인이었다. 이 장면은 '4.3'의 피해가 매우 다면적임을 시사한다. 군경에 의한 학살이 수적으로나 잔인성으로나 압도적이지만, 남로당의 무고한 살해 역시 존재했다. 영화 속 남로당원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며 가족의 안위를 위해 하산하려는 동료를 죄책감 없이 죽이는 장면이 이를 보여 준다. 선량한 사람을 죽이고 누구를 위한 '좋은 세상'을 만든단 말인가. 무고한 죽음이 제주 도처에 있었다.
해생 아버지의 입산이 있었으니 그 가족들의 학살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환란을 피하고 남편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해 해생 모 아진(김향기)이 입산하기에 이른다. 산에 오르는 엄마를 따라가기 위해 여섯 살 해생(김민채)이 따라나서지만 조모가 만류한다. 이후 벌어질 간난신고를 상상조차 못하는 모녀는 눈물로 헤어진다.
해생의 조모는 왜 해생을 만류했을까. 설마 어린아이까지 죽이겠나 하는 일말의 인류애를 믿었겠지만, 살육으로 눈이 뒤집힌 토벌대에게 어린아이는 그저 어린 '빨갱이'였을 뿐이다. 산으로 간 아들을 둔 죄로 해생 조모는 어린 손녀와 함께 학살당한다. 학살 후 군인이 죽은 양민의 수를 마치 소나 돼지의 수를 기록하듯 수첩에 작대기로 표시한 후 상관으로 보이는 미군에게 보고하는 장면은, '4.3'에 미군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일 것이다.
굳이 미군이 토벌 현장을 확인했을까 싶지만, <4.3, 기억의 폭풍 속으로>에서 저자가 '4.3' 당시 제주에 주둔했던 고문관으로부터 입수한 문서를 보면, 미군이 토벌 작전 일자와 대대, 작전 지역과 사살자 수 및 노획품 등을 낱낱이 보고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4.3'에는 미군이 깊이 관여되어 있다. 어디 '4.3'뿐인가. 한반도 곳곳에 미군의 오폭 등으로 학살당한 억울한 희생자의 주검이 묻힌 곳이 한두 곳인가.
해생은 죽은 할머니 품에서 기어 나와 거의 본능적으로 엄마를 찾아 산으로 향한다. 산에 오르기 위해 해생이 챙긴 물품은 밥주발과 숟가락 3개 그리고 콩 주머니다. 이는 해생이 산을 헤매다 잠시 쉬며 콩주머니를 풀어 숟가락 세 개에 콩 한 알을 놓고 자신도 한 알을 먹는 장면으로 설명된다. 산에 부모가 살아있을 거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부모와 자신의 숟가락 세 개를 챙긴 것이다.
아진은 살던 집과 마을이 토벌대에 의해 초토화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딸 해생을 찾기 위해 산을 내려간다. 이때 남편을 죽인 '산부대'원들을 만나는데 이들은 이 사실을 숨긴 채 아진을 이용하려 든다. 이들에게서 겨우 도망친 아진은 마침내 해생을 만나지만, 다시 토벌대에 붙잡히고 다시 도망치기를 반복하다 애초 산에 같이 올랐던 마을 사람들을 만난다. 이들은 토벌대가 뿌린 삐라를 들고 항복하기 위해 하산하는 중이다. 이들이 받아 든 삐라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자비로 귀순하는 자에게 생명을 보장한다고 쓰여있을 것이다. 이를 믿고 백기를 들고 하산하다 토벌대를 만난 마을민들은 처참하게 학살당한다.
마을민들과 다시 만나자며 헤어진 아진과 해생은 애초 산에 같이 오른 애기 무당 소희와 재회한다. 동굴에 거처를 정하고 마을민들의 안위를 기도하는 애기 무당 소희에게 신들은 이 참변이 언제 끝날지 알려주지 못한다. 그저 기도하며 기다리자고 하지만 버틸 식량이 없다. 해녀인 아진은 바다에서 이것저것 따다 굶주리고 있는 딸을 먹일 상상을 하다 마침내 동굴이 끝내 이어져 있다는 바다를 향해 길을 나선다.
아진과 해생 모녀의 바다를 향한 여정은 온전한 삶의 의지를 보여준다. 아무리 잔혹한 세상이어도, 딸을 살리고 싶은 엄마의 사랑과 엄마를 의지하며 동시에 돌보고 있는 딸의 사랑을 말살할 수는 없다. 숨이 모자라 여정을 계속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한 엄마를 일으키기 위해 충격으로 말을 잃은 해생은 마침내 공포를 이기고 입을 뗀다. "어머니. 나만 두고 죽지 맙소."
동굴을 통과하는 바람이 바다가 가까웠음을 알린다. 마침내 도달한 동굴 끝에서 해녀인 아진은 아무 망설임 없이 해생을 안고 바다에 뛰어든다. 딸을 살릴 전복을 캐와 해생의 입에 넣어주는 아진은 행복하다. 하지만 참혹한 시절의 행복은 찰나일 뿐, 다시 경찰에 붙잡힌 모녀는 결코 무사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을 것이다.
그저 살고자 했건만, 이들을 취조한 조서에는 결국 '폭도'라는 두 글자가 선명히 박혀있다. 영화는 물음을 남긴다. 고작 여섯 살 해생을 '폭도'로 만드는 세상에 어떤 정의가 있었나. 무해한 이들을 '폭도'로 만들어 죽이고 지킨 권력은 정당한가.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는 '4.3'을 직시하고 있는가. '4.3'을 통해 지금의 우리를 비출 수 없다면, 결코 과거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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