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스틸
(주)에무필름즈
빔 벤더스가 촬영한 분량은 이듬해인 1999년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다큐멘터리로 세상에 공개되며 이들의 성공에 화룡점정을 이룬다. 화면을 수놓은 노익장들의 드라마틱한 사연이 세계적 인기를 얻던 음악과 어우러진 영화 역시 호평을 얻으며 미국 아카데미상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로 오르는 등 큰 인기를 얻었다. 이들의 합작 앨범은 단 1장에 불과했지만, 공연 실황이나 개인의 솔로 음반 역시 대부분 높은 평가를 얻으며 열풍은 한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촬영 당시 90살 고령이던 기타리스트 콤파이 세쿤도를 비롯, 주요 구성원 태반이 고령이던지라 황혼에 누린 인기를 뒤로 한 채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물론 생존자와 후배 세대 음악인이 모여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이름으로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고, 처음 프로젝트 원안이던 아프리카 음악과 교류 및 쿠바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토속 음악 발굴이 진행된다. 월드뮤직 역사에 한 장을 차지할 만한 궤적은 현재도 진행 중인 것.
찰나에 불과한 고작 몇 년 동안만 지속된 활동이었지만, 이들의 음반과 다큐멘터리는 반짝에 그치지 않고 세계구급 인기를 꾸준히 유지하는 중이다. 사실상 쿠바 음악을 상징하는 정체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위상이다. 이들의 음악에 푹 빠지고 나면 '쿠바'라는 국가를 떠올릴 때 자동 재생하듯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연상되는 건 기본값이 된 것이다. 물론 쿠바엔 다양한 음악의 보물창고가 존재한다지만, 이들의 음악은 그 열쇳말 같은 역할인 셈이다.
영화는 그들의 음악이 녹음되던 스튜디오와 역사적 공연 현장 실황을 통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대표곡 트랙을 맛보기로 제공한다. 음악에 취하고 나면 마치 실제 공연 현장에서 가수가 한 곡 멋들어지게 뽑아낸 다음, 만면에 웃음을 띤 채 객석과 소통하는 것처럼 그들 각자의 사연을 들려준다. 이게 '인간극장' 뺨치게 진하게 우러나는 맛이다. 아마 많은 이들이 본 작품의 진짜 매력으로 꼽는 대목일 테다. 기구하고 안쓰러우면서 동시에 감동 포인트다.
왜 천재 음악인들은 세상에서 잊혀졌을까?
주름이 자글자글한 원로 음악인들은 오랜 미국의 봉쇄와 제재로 낙후된 쿠바 거리에서 옷깃 스치며 지나칠 평범한 노인들과 구분할 길이 없지만, 일단 스튜디오나 공연 무대에만 들어서면 돌변해 세계 최고의 노래와 연주를 선보인다. 그 역시 세계적 명성의 음악인인 라이 쿠더조차 경외감에 휩싸일 정도다. 그런데 대체 이들은 왜 파묻히듯 세계 음악계로부터 잊힌 채로 머물러 있던 걸까? 그들의 음악을 듣고 나면 이상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영화는 복잡한 정치와 역사를 해설하는 유형과는 거리가 멀다. 주인공들 역시 굳이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하지 않는다. 물론 누군가는 삐딱한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다. 쿠바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그들이 체제 비판을 쉽사리 할 수 없다며 색안경을 낄 순 있지만, 그들의 소년 같은 눈망울과 삶의 연륜 담긴 육성을 들으면 정말 음악 그 자체에만 몰입하며 행복해하는 황혼의 거장들에겐 단지 음악 활동을 늘그막에나마 마음껏 펼칠 수 있음에 기쁜 것으로만 비친다.
하지만 이들이 세상에 복귀하기 전까지 사연을 듣고 나면 말문이 막힌다. 세상을 놀라게 할 재능을 품은 이들 상당수가 음악 활동을 중단한 채 가족 부양을 위해 거리에서 구두를 닦거나 공장에서 시가를 말며 생계를 유지했다는 것. 그나마 형편 나은 이들도 제대로 대접받을 기회와 동떨어져 있었다. 무용을 배우는 어린 연습생을 위해 피아노 반주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참이다. 물론 현역에 머물던 이들도 무명 음악인으로 쿠바 밖에선 누구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들이 그렇게 매장된 건 무슨 이유이고 누구의 탓일까? 그들이 젊은 시절 공연하던 클럽 이름은 곧 황혼의 활동명이 되었다. 1940 ~ 50년대 쿠바는 미국 중산층의 휴양지이자 본토에서 누릴 수 없는 온갖 쾌락과 유흥의 본산으로 기능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수도 아바나에서 가장 유명한 공연장이었고, 이들은 재즈와 토속음악의 퓨전으로서 '손(Son)' 장르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외세 간섭과 극심한 빈부격차는 필연적으로 쿠바 혁명을 불러왔다.
쿠바 현대사의 부침과 함께 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스틸(주)에무필름즈
미국과 불화하며 관광업이 쇠락하고, 외국 자본 국유화와 더불어 사치 향락 산업의 종말이 깃든다. 이런 정치적 격변과 더불어 이들의 무대도 사라지고 만 것. 일자리가 사라지니 그들의 음악 활동도 종말을 고하고 만 것. 쿠바가 오랜 기간 미국 주도의 봉쇄에 시달리며 자연스럽게 그들의 실력을 널리 알릴 기회도 잃었다. 게다가 혁명 이후 쿠바에선 그들이 대표하던 장르는 독재 치하 외국인 전용 음악으로 취급받을 혐의도 일정 부분 존재했다.
성공한 이후에도 그들의 활동을 둘러싼 갈등은 (영화에선 크게 부각되지 않지만) 되풀이된다. 특히 대중음악의 본산, 미국에선 그들의 쿠바 국적 정체성을 이유로 공연이 무산되거나 부당한 비난에 휩싸여 활동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오직 음악이 좋아 황혼을 불태우며 뒤늦게 찾아온 기회를 그간 삶에 대한 보상처럼 기쁘게 받아들이던 그들에겐 난감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이미 고령이던 주축들은 찰나의 행복을 누린 채 차츰 사라져 갔다.
영화가 공개될 당시에 이미 세계 음악계를 들썩이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열풍의 확장판으로 이 다큐멘터리를 목격하던 시절과 국내에서도 몇 번이고 특별상영과 재개봉을 이어온 작품의 사반세기 훌쩍 넘긴 공개로 재회하는 기회의 단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 1990년대 후반에 그나마 쿠바를 원조하던 소련 등 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한 후 고립무원에 빠진 쇠락한 풍경은 지금은 더할 테다. 거리 곳곳에 새겨진 혁명 구호 역시 빛이 더 바랬을 건 분명하다.
오랜만에 재회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마치 현대판 '동화' 같은 성공담과 어쩔 수 없는 물리적 한계는 그들의 모국 쿠바의 현대사 속 운명과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 가난하고 남루한 조건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왔지만, 여전히 낙천적인 모습을 잃지 않던 초로의 음악인들이 보여주던 표정과 멋들어진 연주는 현대 쿠바를 떠올리는 이미지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초강대국의 심기를 거스르고 굽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들이 감내한 고통은 너무나 과했다.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존심 지켰지만, 밥 먹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쿠바 상황을 떠올리며 영화를 봤다. 공개 당시부터 좌우 대립 구도 아래 한쪽은 쿠바 체제를 옹호한다고, 다른 쪽은 낙후된 풍경을 전시할 뿐 실제 맥락과 동떨어진 묘사라고 비판이 쏟아졌다. 그런 아이러니는 세기가 바뀌고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의 쿠바 침공 가능성이 우려되는 시점이다.
카네기홀 공연을 앞두고 뉴욕 시내를 관광하며 감격에 벅찬 음악인들은 상점에 진열된 유명인 피규어를 보며 나누던 잡담은 이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인상적인 대목이다. 그저 음악이 좋아 평생을 바친 이들에게 복잡한 정치적 입장을 강요하는 건 과도한 것 아닐까. 세상에 가끔은 이런 풍류도 필요하지 않나 싶은 그런 단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 순간이다.
[작품 정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Buena Vista Social Club
1999 미국 다큐멘터리
2026.6.12. CGV 특별상영 105분 전체관람가
감독 빔 벤더스
참여 뮤지션 라이 쿠더, 요아킴 쿠더, 이브라힘 페레르, 후안 데 마르코스 곤살레스,
루벤 곤살레스, 엘리아데스 오초아, 오마라 포르투온도, 콤파이 세군도
수입/배급 ㈜에무필름즈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