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치게 부러웠다'... 홍상수가 부럽다고 말한 그 사람은 누구?

[김성호의 씨네만세 1362] 홍상수 전작전 <탑>

홍상수는 한국 영화계의 거인이다. 독립영화가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30여 년 동안 어느 창작자보다 성실하게 작업해 30편이 훌쩍 넘는 작품을 발표했다. 감독 개인의 사생활이 영화만큼, 어쩌면 그보다도 더 유명해졌다지만, 그로부터 작품세계가 훼손되거나 소진되는 대신 굳어지고 투명해진 것이 놀랍기까지 하다. 개인인 작가의 삶이 작품과 맞물려 더 나은 영화로 이어지는 과정은 제 삶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돌아보는 예술가가 아니라면 감당하기 어려운 길이다.

<탑>은 홍상수의 28번째 장편영화다. 제 삶을 한 걸음 떨어져 돌아보려 한 홍 감독 자신의 시선이 구조에서부터 엿보인다. '탑'이란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는 좁고 높은 건물이 장소적 배경이다. 영화적 형식을 건축적 구조와 연동해 풀어가는 과정이 비선형적 전개를 즐겨 채택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특히 잘 어우러진다. 1층으로부터 2층, 3층, 4층, 옥상으로 차례로 오르며 전개되는 구성이 영화 속 시간의 흐름과 얽혀서 독자적인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을 일으킨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홍 감독 필모그래피에서도 흥미로운 지점이라 말한다. 그건 감독 본인이 투사된 듯 보이는 영화감독 병수(권해효 분)가 다른 영화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캐릭터인 딸(박미소 분)과 함께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렇고, 그 딸의 입을 통해 저 자신에 대한 신랄한 평가를 말하도록 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며, 그럼에도 딸이 바라보는 세계 바깥에 또한 감독의 삶이 존재한단 걸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여러모로 이제껏 그의 영화가 다루지 않던 새로운 지점을 무대 위에 올렸고, 좀처럼 직면하기가 쉽지 않은 일을 제 영화 안에 품어 내려 한 결과다. 누구나 자연스레 떠올릴 밖에 없는 영화와 감독의 사생활 간의 관계를 발전적으로 끌어안은 시도다.

탑 스틸컷
스틸컷한국영상자료원

건축과 영화가 기묘하게 맞닿는다

병수와 딸 정수가 인테리어 디자인을 업으로 하는 여자 해옥(이혜영 분)의 건물을 찾는다. 정수가 인테리어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듣고 특별히 마련한 자리다. 병수는 꽤 잘 나가는 감독인 모양으로 최근엔 해외 영화제에서 제법 큰 상까지 받은 모양이다. 해옥은 병수에 대한 호감을 감추지 않고 그 성과를 추켜세우기에 여념 없다. 병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예술가들이 자주 그러했듯이 제 작품에 대한 관심을 능숙하게 흘려 넘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선형적, 또 서사적이지 않다. 선으로 그은 듯이 뒤에서 앞으로 쭈욱 나아가거나, 중요한 사건과 결과를 좇아 나아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의 영화는 창작자가 만든 극의 형태를 갖지만, 사건에 집중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상호작용 가운데 드러나는 '진실' 혹은 '감독이 진실이라 믿는 것'을 포착하는 데 힘쓴다. 때문에 사건에 집중하는 이들에겐 '술자리에서 여자를 어떻게 해보려는 남자'의 이야기처럼 보이는 것이 다른 이에겐 '권력', '자존', '비겁', '사랑', '진실'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는 것일 테다. 나는 둘 모두가 일견 타당하다 여긴다.

<탑>도 그와 같은 특징을 내보인다. 딸을 부탁하러 만든 자리에서 드러나는 엇갈린 욕구들, 아빠가 자리를 비운 새 그 진면목을 성토하려는 욕구를 참지 못하는 딸, 또 잠시 담배 한 대 태우러 내려온 그녀에게 건물주에 대한 뒷담화를 하는 직원의 모습까지가 카메라에 그대로 붙들리고 만다. 그래서 그와 같은 일들이 무엇을 빚어내는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고, 또 어쩌면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 일은 일대로 진행되고, 그 순간의 말과 오간 감정들은 또 그대로 남는다.

탑 스틸컷
스틸컷한국영상자료원

층을 타고 오르며 전개되는 이야기

좀 시간이 흐른 걸까. 이번엔 정수를 빼고 병수와 해옥이 마주 앉았다. 자리는 2층 오붓한 식당으로 옮겼는데, 사장 선희(송선미 분)가 함께 자리했다. 두 여자가 병수에 대한 호감을 감추지 않는다. 병수의 눈엔 선희가 유독 드는 모양이다. 이혼한 선희와 별거상태인 병수의 이해관계까지 맞아드니 결혼생활이 지겨운 해옥은 여러모로 불리하기만 하다. 이 미묘한 감정들의 일어나고 수그러들며 요동치는 모습을 포착하는 사이로, 영화는 실력은 있지만 투자가 번번이 좌절되고 있는 병수의 한탄을 잡아낸다. 병수는 말 그대로 돈 안 되는, 그러나 진짜 예술인 영화를 찍는 감독의 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이 꼭 그러하듯, 영화란 돈 많이 드는 예술이다. 투자를 받는 일은 예술가에게 고단하고 피로한 일이다. 실상 예술은 알지 못하면서 어디서 공부를 잔뜩 하고 학위만 받은 이들이 심사하는 자리에 앉아서는 예술가의 작품에 간섭을 한다. 이건 이래서 고치고 저건 저래서 빼야 하고 온통 돈만 말한다. 예술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래서 작품은 이도저도 안 되는 것이 되기 십상이다. 누구도 진짜 예술에는 관심이 없다.

홍상수 감독의 지난 작품들 가운데서도 이에 대한 비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보다 전격적이고 적나라한 비판이 자세를 고쳐 앉게 한다. 공적기관이든 기업투자든 제작지원을 받으려는 감독들의 고충이 이와 얼마 다르지 않다. 나 또한 여러 현업자들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숱하게 들어왔다. 작가론 무능한 시시한 이들이 멍청한 잣대로 예술을 그르치게 한다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 그러나 누구도 이처럼 제 작품에서 대놓고 그를 비판한 걸 본 적 없다. 나는 또한 놀라고 만다. 이 또한 그저 어느 식사자리일 뿐이다. 그저 식사가 시작되고 끝났을 뿐인데, 영화는 분명 가볍지 않은 많은 이야기를 해내고 있다. 홍상수 영화다운 일이다.

탑 스틸컷
스틸컷한국영상자료원

변하는 관계, 달라진 생각... 그리고

다음은 3층이다. 2층에서 묘한 주고받음이 있었던 두 사람이 이제는 같이 사는 모양이다. 해옥의 건물에서 병수와 선희는 동거인이다. 병수는 작품을 오래 쉰 모양, 아니, 그저 쉰 것만이 아니라 잠정적으로 은퇴한 것과 같은 모습이다. 대놓고 더 찍지 않겠다는 발표까지 한 모양인데, 해외 영화제에서 간간이 회고전이랄까 그런 행사를 열고 초대장은 보내오는 듯하다.

선희의 식당은 장사가 잘 되지 않는 듯하다. 손님이 없어 적자인데 건물주는 월세를 올린다고 해 여간 쪼들리는 상황이 아니다. 아예 '다른 건물로 옮겨야겠다' 말하면서도 못내 인테리어를 위해 들인 돈이 아깝다. 건물주 해옥을 은근히 비난하는 말들을 듣자니 앞서 함께 자리한 그녀의 캐릭터가 생각나 뒷담화를 듣는 듯한 감상까지 일어난다.

영화는 병수와 선희의 묘한 관계 또한 내비친다. 둘은 서로를 아끼는 사이가 되어 있지만, 또 잘 맞지는 않는 구석이 상존한다. 몸이 좋지 않은 병수가 채식을 선택하면서 차이는 식습관에서 두드러져 보인다. 올리브오일을 쓴 참치캔을 어렵사리 구해온 선희에게서, 오로지 샐러드만 먹느라 상에 고기를 올리지 못하는 불편이 화제에 오르는 테이블에서 관객은 둘 사이 새어나는 불협화음을 감지한다. 점점 쪼들려 가는 살림살이, 선희의 표까지는 나오지 않는 외국 영화제의 초청조건을 지나쳐서 병수가 좋아하지 않는 친구를 선희가 만나러 나가는 상황에 이르면 한 살림을 차린 두 사람의 관계가 좋은 점보다는 좋지 않은 점이 더 많은 게 아닌가 하는 물음이 떠오를 밖에 없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혼자 사는 게 맞는 사람'이라는 병수의 자조를 마지막으로 영화는 관객에게 의도치 않은 웃음을 선사한다. 병수와 선희의 관계로부터 저의 삶을 돌아보지 않을 관객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니.

홍상수 전작전 포스터
홍상수 전작전포스터한국영상자료원

걸어 오르는 인생, 그 끝에서 마주한 건

<탑>은 딸과 건물주인 해옥을 시작으로 2층과 3층의 선희, 그리고 마지막 4층과 옥탑에서의 지영(조윤희 분)과 관계 맺는 병수의 이야기가 된다. 'Walk up', 풀이하면 '걸어 오르다'가 되는 영제가 말해주듯이 영화는 병수가 탑과 같은 건물을 오르며 맞는 이야기이고, 시간을 건너 자연스레 맞는 남자와 감독의 삶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활발히 창작하는 예술가이자, 현실의 장벽에 부닥쳐 좌절하는 작가이기도 하고, 은퇴하고 고립된 삶을 살아가다가 아내의 챙김을 받으며 재기를 꿈꾸는 늙은이가 되기도 한다.

동시에 그에겐 언제나 여자가 있고, 마음 가는 여자와 마음 가지 않는 여자, 또 저를 챙기는 여자와 속박하는 여자, 오해하는 여자와 이해하는 여자들과 끊이지 않는 관계를 갖는다. 그들 모두가 병수에게 관심을 갖는단 건 피로한 일인 동시에 즐거운 일이기도 한데, 이 모두를 홍상수의 자기인식으로 보게끔 한다는 건 영화가 스스로를 더욱 폭넓게 이해하게끔 이끄는 확장의 장치로 성공적으로 기능한다.

영화 가운데 새벽 같이 일어나 그림을 그리고 점심을 먹던 나이든 화가의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병수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등장한다. 그 화가의 얼굴에서 의미 있는 일에 생을 쏟아 부은 예술가 특유의 보람된 표정이 떠올랐다고, 사무치게 그 표정이 부러웠다 역설하는 병수다. 오롯이 가치 있는 일에만 삶을 쏟겠다는 작가적 각오가 이처럼 영화 가운데 드러나니, 이는 그대로 인생의 탑을 오르며 마주한 감독 홍상수의 인생론이 아닌가. 감독의 삶이 그대로 영화가 되고, 영화가 또한 그 삶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예다. 내가 홍상수의 영화를 즐기는 이유가 또한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홍상수전작전 한국영상자료원 홍상수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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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