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넬 메시를 예로 들어보겠다. 축구선수 메시의 전성기 경기를 단 한 번만 봤다면 알 것이다. 그는 특별하다. 압도적이다. 재능이 있다. 세상 모두에게 다 나름의 재능이 있다고, 재능이란 일부일 뿐이라고, 노력이 재능을 따라잡고 심지어 뛰어넘을 수가 있다고, 그런 말이 반 푼어치의 위안에 불과하단 걸 알 수가 있겠다.
당시 메시의 경기력은 가장 적대적인 안티팬조차 두려워 떨게 할 만큼의, 또 지지자를 축구경기장에선 기대한 적 없을 황홀경에 빠지게 할 만큼 힘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펠레와 마라도나, 베켄바워며 미셸 플라티니 같은 전대의 영웅들을 훌쩍 뛰어넘어 GOAT(Greatest Of All Time·역대 최고)라 불리는 사나이가 됐다.
자 그 메시가 23살쯤에 은퇴를 발표했다 치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로 불리던 에릭 칸토나가 갑자기 영화배우가 되겠다며 충격적 은퇴 선언을 했을 때도 내리막에 접어든 서른 줄이었다. 그런데 메시가 아직 정점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 20대 초반에 은퇴를 발표했다면,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그가 가진 역량을, 그가 도달한 경지를, 이룰 수 있고 이뤄 마땅한 위업을 모조리 잃은 듯한 느낌을 맛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물론 선택은, 그 선택이 자리하는 인생은 오롯이 메시 자신의 것이지만, 아깝다고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다. 나 또한 두고두고 메시의 이른 은퇴가 아깝고 또 아깝다고 말하고 다녔을 터다. 지난 시대 마이클 조던의 첫 은퇴를 본 이들이 그러했듯이.
보는 내내 카메라 뒤 홍상수가 보인다
▲소설가의 영화스틸컷
한국영상자료원
홍상수 감독의 27번째 장편 <소설가의 영화>에도 그런 순간이 있다. 영화 속 배우 길수(김민희 분)는 꽤 오래 연기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한때는 꽤 큰 영화에 자주 출연하던 잘 나가는 배우였던 모양인데, 어느 순간부터 활동이 끊기고 어디서도 보기 어렵게 되어버린 듯하다.
우연히 공원에서 마주친 영화감독 박모(권해효 분)가 근황을 묻자 그녀는 독립영화도 조금 하고 이것저것 하면서 쉬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그녀에게 박 감독은 그녀를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고, 재능이 있기에 그렇다고, 아깝다고 말한다.
함께 있던 소설가 준희(이혜영 분)가 대체 뭐가 그리 아깝냐고 말한다. 당신들이 뭔데 이 사람 보고 아깝다 마다하느냐고. 본인이 안 하겠다는데 왜 재능을 썩히니 뭐니 하면서 함부로 재단하냐고. 본인의 선택이고 존중하면 그뿐 아니냐고. 그렇고 그런 말들을 거세게 쏟아내는 것이다. 우연히 박 감독 부부와 어느 전망대에서 마주쳐 공원까지 함께 왔던 준희는 앞선 장면들에서도 박 감독이 마치 돈만 좇는 상업영화 감독이라는 듯 무시하며 달갑지 않게 대했던 터다.
많은 이들이 <소설가의 영화>가 홍상수 감독 본인의 삶과 작가관이 노골적으로 투영된 작품이라 말한다. 더불어 애인이자 반려자인 김민희에게 바치는 연서이기도 하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영화엔 그리 이해할 수 있는 장면들이 꽤나 등장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장면일 테다. 더는 상업영화 판에서 연기 활동을 하지 않고 작은 독립영화에나 간간이 출연하는 길수에 대해 '아깝다'고 말하는 사람, 한 명의 팬이자 동료 감독으로 말하는 그를 주인공인 소설가 준희는 너무나 가혹하게 대한다.
<소설가의 영화>는 준희가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다. 박 감독과의 협업으로 제 작품을 영화화하려는 시도가 한때 있었으나, '대빵'인 투자자들의 거부로 무산됐던 이력이 있는 그녀다. 이제 와 직접 영화를 한 편 찍어보겠다는 그녀는 찍고 싶은 무언가가 제 마음 안에 분명히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를 언어로써 설명할 수는 없다는 듯 말한다.
출연할 배우가 먼저 정해져야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계획으로부터 시작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어떤 일을 하고 그로부터 빚어지는 무언가를 카메라로 캡처하듯 포착해 내는 것이 제가 찍고 싶은 영화라고 말한다.
대단한, 영화적인 서사 같은 건 그녀의 영화에선 필요하지 않다. 모든 것이, 무엇이든 영화가 될 수 있다. 좋은 배우가 있고, 그 삶을 진실한 카메라로 잡아챌 수만 있다면. 듣다 보면 그건 그대로 홍상수의 영화관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홍상수가 관객 그리고 대중에게 하고픈 말
▲소설가의 영화스틸컷
한국영상자료원
영화 안에서 소설가는 홍상수 자신이고 배우 길수는 김민희라면,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 관객은 누구일까. 그를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여럿이다. 길수의 재능이 아깝다고 그녀를 기다리는 이가 많다고 말하는 박 감독이 대중일 수 있겠다.
그와 같은 대중을 향해 홍상수는 '논 오브 유어 비즈니스, 주제 파악 좀 하라'고 일갈한다. 나는 그것이 가혹하고 무례하며 심지어 틀려먹은 말이라고 여기지만, 또한 그것이 실재하고 사실적인 감상일 수 있단 걸 안다. 홍상수는 여기서 준희의 옳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준희의 생각과 말과 감정을 표현할 뿐이므로.
또 한 장면, 그러니까 길수와 준희가 분식집에 마주 앉아 식사하는 장면이 있다. 두 사람이 한창 즐겁게 대화하는 와중에 식당 통창 너머로 한 여자아이가 등장한다. 아이는 창 너머로 안을, 그중에서도 길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준희는 아이가 길수가 너무 예뻐 바라본다고 말하는데, 정말인지 아닌지는 끝내 확인되지 않는다.
가만히 돌아보면 그 창은 그대로 관객이 영화를 바라보는 것과 닮아 있다. 식당 안에서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진짜, 그러니까 감정과 감상과 관계의 미묘한 변화 따위를 그 바깥에선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바깥에서 안으로 닿는 관심은 또한 그대로 존재한다. 그 무해한 아이, 그것도 여자아이의 궁금증 섞인 시선만큼은 준희와 길수 모두가 귀엽다며 기꺼워한다.
여자아이의 시선과 박 감독의 태도 사이에 감내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것의 경계가 있다고 이 영화는 선을 긋고 있다. 하나는 귀여움이고, 다른 하나는 주제넘음이라고. 어린 여자아이와 늙은 남자 감독의 대비는 그대로 영화 가운데 거듭되는 늙은 예술가 또는 예술 언저리에 있는 호소인들과 젊은 예술 애호가 또는 지망생들의 대비와 맞물린다.
영화는 준희가 노골적으로 이 중 젊은 쪽에 애정을 드러내고 있음을 내보인다. 단어 하나도 잘 생각나지 않는 늙음을 애써 밀어내고자 하는 마음 또한 거듭 드러낸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까워하는 마음을 바깥으로 표출하는 것을 늙음과 그에 따른 무례한 무엇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읽힌다. 과연 그러한 걸까.
갈수록 투명해지는 홍상수의 영화
▲소설가의 영화스틸컷
한국영상자료원
준희는 영화 내내 솔직한 사람이다. 적지 않은 이들이 아주 무례하다거나 적어도 까탈스럽다고 여길 수도 있을 그런 사람이다. 솔직함과 까다로움, 둘 모두가 각자 진실하다. 그녀는 담배 태우기를 좀처럼 참지 못하는 중독자다. 박 감독 같은 부류를 면전에서 비난하려는 마음도 억누르지 못한다.
가만히 보고 있자면 박 감독의 변화한 연출적 자세가 그녀 자신의 지향과 얼마 다르지 않은 듯한데도, 그녀는 박 감독은 그저 늙어서 그런 것이라고 매몰차게 평가절하한다. 또 한때 동경했던 시인(기주봉 분)을 만나서는 그의 늙어버린 모습을 또한 안쓰럽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녀 스스로도 몹시 늙어버렸으면서도, 그래서 소설 하나 제대로 쓸 힘이 없다고 실토하면서도 말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점점 더 투명해지고 진실해지는 듯 느껴진단 건 좋은 일일까. 나는 물론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젊음을 예찬하고 늙음을 밀어내려 하며 주제넘음을 참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들에만 둘러싸여 즐겁게 지내고 싶은 마음을 그저 안주며 퇴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 바깥의 세상은 안 보다 훨씬 넓고 찬란하다고 반박하고 싶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 빚어지는 소소한 이야기와 새롭지도 않은, 물론 진솔하긴 할 테지만, 작고 투명한 삶의 자세가 수시로 지루하게 다가오는 것도 그래서일 테다. "영화란 건 이야기가 있어야 해"하고 소리치던 늙은 시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나는 메시와 마이클 조던과 길수의 은퇴를 아까워한다. 당신이 뭐라 말하든 간에.
다행하다 여기는 이유
▲홍상수 전작전포스터한국영상자료원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은 아마도 그 결말을 애정할 테다. 흑백으로 찍은 영화에 유일하게 색이 들어오는 순간을, 사랑하는 김민희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내려는 티 없는 맑음을, 어쩌면 길수가 세상과 거리를 둔 계기였을 결혼생활까지를 드러내는 순간이 몹시 인상적이다. 구구절절 그 의미며 감흥을 풀어내는 것이 도리어 영화의 감상을 해칠 것이 분명하므로 그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소설가의 영화>는 홍상수가 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철학을 꾸밈없이 드러내려 한 결과물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설득해 내려 하는 의지도, 공감을 사고 이해를 받으려는 기대도 없이 작품과 삶을 대하는 제 생각과 태도, 마음가짐 따위를 있는 그대로 펼쳐낸다. 그래서 영화 속 소설가의 영화가 그러하듯이 '맞는 사람에겐 정말 좋은 영화'란 평을 분명히 받아내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아쉽게도 나는 홍상수의 영화를 그리 대단하게 평가하진 않는 입장이지만, 또 창밖의 아이보다는 주제넘는 박 감독에 가까워 그의 가두리양식장에 받아들여질 리 없는 관객이지만, 그럼에도 홍상수와 같은 작가가 꾸준히 작품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다행하다 여긴다.
그러고 보면 나는 내 방식대로 홍상수의 영화를 매번 심심해하면서도 즐기고 있는 것일지 모를 일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공유하기
갈수록 솔직해지는 홍상수의 영화를 알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