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정신의 독립인 거 같다. 자유스러움. 한마디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신이라고 본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자기 방식대로, 자기 정신을 굽히지 않고, 자기 스타일대로 해 나가는 것, 거기에서 무한한 독립영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앞으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정신에 의해서 독립영화는 계속 변화 발전해나갈 것이다." - 변재성, <탈북 소년들 중국에 가다> 연출, 23p
대저 독립영화란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독립영화란 말을 즐겨 쓰고는 하지만, 실제 그 뜻을 정확히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 누군가는 그저 작은 영화가 독립영화라 하고, 다른 이는 상업영화판에서 만들지 않는 영화를 독립영화라 말한다. 또 어떤 이는 독립영화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정신이며 철학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모두가 서로 다른 층위의 문제를 겨냥하고 있어 독립영화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할수록 더 복잡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 법령은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예술영화 인정에 관한 업무 규정'을 통해 그 정의를 다음과 같이 명시해두고 있다. ▲ 상업영화가 다루지 않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쟁점과 인물을 깊이 있게 다룬 영화 ▲ 편견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표현으로 차별화된 경험을 전달하는 영화 ▲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고 대안적 의제를 제기하는 영화다. 요컨대 다루는 주제에서, 표현과 형식에서, 내용과 메시지에서 차별을 꾀하고 새로움을 도모하는 작품이 독립영화란 뜻이겠다. 일선 창작자와 이들의 작업을 보조하는 국가기관은 주제부터 내용과 형식에 있어 다름을 꾀하는 작품을 독립영화라 합의하고 있는 것이다.
▲독립영화 4호책 표지
한국독립영화협회
1980년 5월을 다룬 영화들
이달 2일 저녁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실에서 '<독립영화> 다시읽기' 네 번째 모임을 가졌다. 협회 창립 뒤 주요사업으로 시작한 이래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는 잡지 <독립영화>를 통해 잡지는 물론, 오늘에 이르는 독립영화계의 역사를 깊이 이해하려는 작업이다. 20여 년 전 독립영화계 사정을 기억하는 비평가와 내일을 열어갈 창작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화를 나누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어제의 문제의식과 해법을, 또 그로부터 열어온 오늘의 현실을 새롭게 감각한다.
2000년 5월 발간된 4호다. 지난 3호에선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독립영화계를 뜨겁게 달군 류승완 감독의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면, 4호는 5월을 맞아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지난 시대의 작품을 소개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5월의 광주를 한국 독립영화가 일찍부터 다루었다는 점은 다시금 짚어볼 만하다. 1987년 작 <칸트씨의 발표회>, 홍성담이 1995년 내놓은 단편 애니메이션 <천인>, 장산곶매가 제작해 1989년 발표한 장편 <오! 꿈의 나라>까지가 독자적 비평으로 소개된다. 잡지가 함께 소개하진 않고 있으나 1980년 광주를 다룬 한국 최초 장편 <황무지>와 같은 작품 또한 언급해둘 필요가 있겠다. <황무지>는 <칸트씨의 발표회>를 연출한 김태영 감독의 후속작이다.
특히 주목할 건 1980년대에 이와 같은 작품이 제작됐다는 점이겠다. 주지하다시피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골자로 한 개헌이 이뤄진다. 그로부터 비롯된 대선에서 야권 분열을 틈 타 노태우가 당선돼 신군부는 그 생명을 이어간다. 신군부가 진행한 언론통폐합의 여파 아래 기성 방송과 신문은 여전히 비판적 기사를 얼마 생산하지 못하였다. 1990년 삼당합당이 있기도 전이었다.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이 신군부 일파가 중심이 된 민주정의당, 정계에 복귀한 김종필에 박정희 정권 실세들까지 합류한 신민주공화당과 한 지붕 안에 들어간 게 삼당합당이니 아직 민주화의 새벽이 왔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때다. 바로 이 시기 한국 독립영화의 진영에서 위와 같은 작품들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가장 먼저 만들어진 <칸트씨의 발표회>는 황석영의 소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뼈대로 삼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엮어낸 30분짜리 단편영화다. 오랜 독재의 끝에 들어선 신군부와 그에 맞서는 시민사회의 민주화운동이 세계적 관심을 받던 상황에서 당시로선 드물게 해외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됐다.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국제영화제와 토리노영화제, 하와이국제영화제와 싱가포르국제영화제 등이 이 영화를 공식 초청했다.
▲독립영화책 내지
한국독립영화협회
필름·비디오 탈취, 극장폐쇄 명령, 형사고발까지
<오! 꿈의 나라>는 당시 상황에서도 흥행에 성공해 큰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해외에까지 소개됐으나 정부 탄압으로 국내엔 얼마 보여지지 못했던 <칸트씨의 발표회> <황무지> 등과 달리 아예 사전심의를 거치지 않고 무단상영하는 방식을 취해 고발을 당하는 대신 상영을 강행한 것이다. '광주민중항쟁과 반미 투쟁을 소재로 당시 열악한 독립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어 준 작품'이라며 '전국 150개 상영공간에서 총 500회 이상 상영됨으로써 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 낸 것'이라 적은 <독립영화>의 기사가 당시의 성취를 알려준다.
물론 순조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작품이 베를린영화제에 출품이 예정된 가운데, 한국에서 독일문화원과 함께 <칸트씨의 발표회> 상영회를 갖기로 했던 행사가 정부 압력으로 취소됐던 것이다. 장편인 <황무지>에 대한 탄압은 더 노골적이었다. 정식개봉을 앞두고 있던 1989년 당시 시사회 성격으로 광주 시내 소극장에서 상영을 준비하던 중 국군보안사령부가 제작사에 압력을 가해 필름을 압수해간 것이다. 필름을 압수해간 뒤에도 비디오로 떠 놓은 본으로 상영을 할 때마다 당국에서 나와 비디오를 가져가니 사실상 관객과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검열을 우회한 <오! 꿈의 나라>는 정부에 의해 형사고발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영화신고의무와 공연윤리위원회 심의 등을 거치지 않았단 게 이유였다. 정부는 영화를 불법으로 상영하는 극장에 대해서도 극장폐쇄명령을 내리는 등 탄압을 이어갔다. 제작부터 상영에 이르는 전 과정을 사전검열을 피해 불법을 감수하며 진행한 결과였다. 기소와 유죄판결, 헌법소원과 헌법재판소의 위헌제청까지가 모두 끝난 건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6년에 들어서였다. 무려 8년을 법적다툼을 벌여야 했던 것이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다룬 일련의 작품을 신군부가 서슬퍼렇게 버티고 섰던 1980년대 한국 독립영화계가 내놓았단 사실을 주목할 만하다. 한국에서 독립영화란 그저 상업투자의 논리 바깥에 있는 작은 영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민주화의 열망을 표출하던 민중영화, 저항영화가 독립영화의 한 축을 이룬다. 카메라 든 이의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며 예술로써 세상을 변혁하고자 했던 시도들이 한국 독립영화의 역사로 자리매김해 오늘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그를 이해하는 것이 그대로 오늘 독립영화계에 몸담은 후배들의 책임이자 의무가 된다. 앞선 이가 먼저 걸은 발자국이 오늘을 걷는 이의 이정표가 된다는 루쉰의 말이 이와 같은 뜻이겠다.
▲독립영화책 내지한국독립영화협회
'독립영화'의 존재의의를 묻는다면
<독립영화> 4호는 5월의 광주 외에도 주목할 만한 꼭지가 몇 담겨 있다. 오늘에 이르러 한국영화계의 큰 이름이 된 변영주 감독의 이른바 <낮은 목소리> 3부작에 대한 비평이 그중 하나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연작을 발표한 변영주의 작업이 작품 내적으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또 지난 시대의 상처를 지닌 피해자와 마주한 다큐 작가가 가져야 할 자세 등에 대해서 섬세하게 짚으려 한 글이다.
이밖에도 4호엔 이전엔 찾아보기 어렵던 구성, 또 새로운 꼭지들을 발견할 수 있다. 잡지 가장 앞과 끝에 들어간 윤재호의 만평부터, 해외 독립예술영화를 다룬 꼭지들이 대표적이다. 특히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임재철 평론가의 'OUT OF FOCUS'는 잡지 발간 기준으로 2년 전 발표된 우디 앨런의 <해리 해체하기(한국 정식 수입배급명: 해리 파괴하기)>에 대한 품격 있는 비평으로 관심 있는 이는 찾아봐도 좋겠다. <독립영화> 전 권은 지역 도서관을 통해 누구나 온라인 접근이 가능한 디비피아에 무료로 공개돼 있고, 국회도서관이나 한국영상자료원 등 일부 도서관에서도 실물 열람이 가능하다.
소위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이 소구력을 발하던 당시 분위기에 맞춰 해외 영화사이트에서 퍼온 글도 두 편 실렸다. 이 중 미국 독립영화인 리드 파젯의 <미국여권> 제작기가 꽤 신선함을 안긴다. 16mm카메라에 필름까지 40kg이 훌쩍 넘는 무거운 짐을 등에 짊어지고 총탄이 날아오는 전장 12곳을 오가며 82분짜리 다큐를 제작한 20대 미국 청년의 인터뷰가 물 건너 독립영화인의 기상을 알도록 한다. 26년 전 발간된 잡지를 다시 펼쳐 읽고 나누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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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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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빼앗고 극장 폐쇄하고 형사고발까지... 그 시절, 우리가 봐야 했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