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훈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간 이유"해진은 절친한 이윤을 제외하면 남에게 속얘기를 잘 안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처음 보는 어린 급사 세훈이에게 '히카루와 우리 결혼할 사이'라는 말까지 건네며 스스럼없이 다가가잖아요? 해진이 처음부터 세훈이라는 사람 자체에게 어떤 본능적인 편안함과 호감을 느꼈다는 거죠. 그 묘한 유대감이 깔려 있었기에, 히카루라는 존재에게도 더 깊이 빠져들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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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훈은 히카루의 정체가 사실은 자신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지만, 해진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히카루의 편지가 오지 않자 괴로워하는 그를 옆에서 더는 지켜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세훈의 선택은 히카루의 '완성'이었다. '글 쓰는 자아'였던 히카루는 이제 더욱 과감하고 분명하게 세훈으로부터 분리된다. 물리적인 육체가 없을 뿐, 히카루라는 존재는 이 세계에 독립적으로 발을 디디게 된다. 세훈은 그게 해진을 위한 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히카루는 세훈의 통제를 벗어나 해진의 목숨을 갉아 먹는다.
<생의 반려>의 완성. 마치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처럼, 두 사람의 사랑을 영원히 기록할 작품. 폐병이 들어 고작 몇 년밖에 살지 못할 해진에게, <생의 반려>는 사랑의 증표이자 삶의 증거이다. 그러니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깎아내서라도, 생을 불태워 문장의 재료로 삼는다. 병원도 가지 않고, 약도 먹지 않고, 칠인회를 나와 어두운 독방에서 해진은 스스로를 불사른다. 세훈은 해진이 예정된 죽음으로 더욱 빠르게 달려가는 것을 지켜볼 수가 없다. 이건 세훈이 원했던 게 아니다. 아니, 사실은 세훈이 원했던 욕망 중 하나였지만, 그가 감히 꺼내지 못하고 감춰두었던 욕망이 폭주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히카루의 존재가 세훈보다 더 커진 거죠. 어느 순간 사람을 잠식하고 지배하고 있잖아요. 세훈도 히카루가 너무 커져 버려서 어떻게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거예요. 외로웠던 세훈에게 히카루는 자신을 위로하고 응원해주는 존재였을 텐데 말이죠. 세훈처럼 히카루도 해진을 존경하고 사랑했을 것 같아요. 다만, 그 사랑의 방향이 다른 거죠. '해진이 죽기 전에 나랑 같이 한 작품이라도 써야 해'라는 마음이요. 히카루도 사실은 너무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존재이고, 그것 때문에 해진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거고, 해진도 그걸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냉정하게 얘기하면, 비록 해진은 히카루에게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당해서 칠인회도 나온 거지만, 동시에 히카루가 해진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이기도 해요. 주변 모든 사람이 일단 병원 치료를 먼저 받고, 그다음에 건강해지면 글을 쓰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해진은 아니에요. 이 사람한테는 글을 남기는 게 최우선이에요. 히카루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냥 치료받고, 그 덕에 조금 더 살았겠지만 결국에는 죽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윤이 말했던 것처럼, 저는 오히려 히카루 때문에 해진이 좀 더 산 것 같거든요. 그 글을 쓰고 있다는 감각이, 살아 있는 세포들을 움직이게 해줬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걸 지켜보는 세훈은 너무 괴롭다. 처음에는 정체가 밝혀질 위기에도 끝까지 자신이 히카루라는 것을 숨겼던 세훈은, 사랑하는 김해진 선생님이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세훈은 결국 자기 안의 빛을, 악몽을, 히카루를 죽인다. 그리고 해진에게 히카루가 자신이었음을 고백한다. 용서를 구하며, 더 이상 히카루에게 집착하지 말고 해진이 자신의 안위를 돌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하지만 해진에게서 돌아온 반응은 본인이 예상했던 것과 너무도 달랐다.
"해진도 세훈이 히카루일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어요. '뮤즈' 장면 때 제가 세훈을 계속 보거든요? 장면 흐름상 제가 아무것도 모른 척하기에는 좀 이상하죠. 다른 칠인회 선생님들에게 세훈이 갑자기 예의 없게 행동하고, 소리 지르고, 편지를 뺏으려고 하고, 너무 이상하게 행동하잖아요. '쟤가 왜 저래? 쟤가 저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는데, 뭐가 쟤를 저렇게 화나게 할까?' 하면서 계속 보게 되는 거죠.
그렇게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던 상태가 이어졌겠죠. 그리고 믿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어쩌면 상관없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세훈이 자신이 히카루라는 것을 고백하는 그 순간의 마음은 '차라리 거짓말하지, 그냥 말하지 말지'에 가깝죠. 그런데 그 화는, 세훈에 대한 분노라기보다는, '이제 다 끝이구나' 하는 느낌이죠. 내가 잡고 있던 실낱같은 지푸라기가 툭 끊어진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어느 순간 해진의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지고, 한 글자 쓰기도 힘들고, 눈도 잘 안 보이는 상황이잖아요. 그때 이 관계마저 끊어지는 거예요.
이윤에게도 '깜깜하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나한테 그 길 하나만 빛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잖아요. 나한테 남은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 펜 줘. 나 이거밖에 없어'가 되는 거예요. 윤도 그 마음을 이해하고 펜을 주는 거죠. '네가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다. 가져가' 하는 식으로요. 그 빛나던 하나의 길이 끊어진 순간, 이제 '나는 죽으러 가야 하는구나. 이제 죽는 것밖에 없구나' 하는 절망인 거죠."
용서하는 게 아니라, 용서를 구하다
도망쳐 나오듯 해진과 헤어진 세훈은 더 이상 펜을 들지 못한다. 그러다가 해진 선생님의 유고집이 발간된다는 소식, 그가 히카루와 함께 썼다는 <생의 반려>가 출간된다는 소식에 '불령선인'으로 갇혀 있는 이윤에게 달려간다. 남루한 세훈을 향해 이윤이 던져주는 말들, 그리고 결국에 세훈의 손에 들린 해진의 마지막 편지. 세훈은 해진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남겼을지 너무나도 두렵지만, 동시에 그 말이 무엇이든 간절하게 확인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전해진 '해진의 편지'에는 "모든 일은 나로부터 비롯되었다"라고 쓰여 있었다. 해진은 세훈을 탓하지 않았다. 그가 탓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그다음 시간이 훅 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해진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안 됐다고 생각해요. '해진의 편지'는 노래도 멜로디도 너무 예쁘고, 뭔가 안아주는 듯한 넘버인데, 실제로는 죽기 직전, 피를 토할 듯한 기침을 쏟아내며 써 내려가는 처절한 유서에 가까워요. 상황적으로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불러야 하는 노래지만, 정서적으로는 이미 죽음을 맞이한 해진이 남은 이들에게 부르는 영적인 에필로그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그래서 해진이 세훈을 용서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세훈에게 용서를 구하는 쪽에 가깝지 않았을까요? '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사과의 마음에 가까워요. '내가 좀 더 어른답게 했다면', '어렴풋하게 너라는 걸 알았는데도 그냥 나를 위해 모른 척하지 않았다면' 하는 미안함과 사과인 거죠. 해진이 좀 더 어른답게 행동했다면, 세훈은 그렇게까지 가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해진이 결국 편지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내가 잘못한 거지'였다고 봐요. 세훈도 결국 사랑받고 싶었던 한 아이니까요."
▲기침하는 노하우?“노래하는 사람한테 기침이 얼마나 쥐약인데요. (웃음) 진짜 폐결핵 환자처럼 피까지 토해내듯 기침해야 하는데, 초반에는 노하우가 없어서 막 기침을 하다가 입이 바짝 말라붙어서 정작 노래를 못 불렀어요. 이제는 2막에서 어느 포인트에 힘을 빼고 기침해야 노래로 매끄럽게 넘어갈 수 있는지, 저만의 방법을 찾아가며 밸런스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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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팬레터>의 마지막, 김해진의 유고집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에 세훈도 자리한다. 세훈이 "내가 죽었을 때"를 부르며 "차마 돌아보지 못했던 나의 봄을 이제야 보낸다"라고 하지만, 그 자리는 '문인' 정세훈이 다시 태어나는 자리이기도 했다. 히카루의 손을 잡은 김해진은 함께 천천히 걸어 나오고, 세훈이 잃어버렸던 봄을 다시 돌려준다. 그토록 찬란하게 사랑했던 빛이자, 미칠 듯이 부정했던 악몽은, 뿌리를 잘못 내린 듯했던 세훈을 단단히 다시 붙잡는다.
"마지막 장면은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봤어요. 세훈이 이윤을 만났을 때, 아무것도 못 하고, 글도 못 쓰고 있잖아요? 히카루라는 존재가 2막부터는 <지킬 앤 하이드>의 하이드처럼, 세훈 안에 존재하면 안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예술 작업을 하며 삶을 살아갈 때 그런 존재가 아예 없어도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같이 사이좋게 공존해야 하는데, 세훈은 그걸 완전히 잘라버린 거죠.
죽은 유령이 나타나서 '너희 둘이 다시 합쳐라' 하고 억지로 이어주는 상황으로 풀고 싶지 않았어요. 히카루는 실제로 어딘가에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언제나 세훈 안에 있던 존재니까요. 사실 히카루 혼자 나가도 되지만, 굳이 해진이 히카루를 데려와서 세훈과 다시 마주하게 한다? 그 둘을 화해시키는 이미지, 이걸 굳이 설명하자면, 세훈의 안에서 해진 선생님의 존재가 히카루를 다시 보내주는 게 아니었을까요? '이제 선생님이 나를 용서하시고 내 안의 히카루를 다시 돌려보내 주셨구나'라고 세훈 스스로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순간, '이제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거죠."
정세훈은 본인이 김해진을 결국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갖고 있고, 그 죄책감 때문에 문장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다시 펜을 쥐게 하는 것은, 잘라냈던 빛과의 화해였다. 그리고 그 화해는 해진으로부터 인정받아야만 가능한 포옹이었다. 김해진이 마지막으로 남겼던 글에서 출발한 사과는, 히카루가 세훈에게 다시 와 닿았을 때에야 비로소 용서가 되어 온전히 도착한다.
빛이 되고 싶었지만 안지 못했고, 악몽을 잘라내고 싶었지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편지의 주인'이 누구더라도 해진은 사랑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들은 사랑의 모든 형태에 탐닉했으며, 사랑이 베풀어 줄 수 있는 모든 희열을 맛보았다. 히카루의 따뜻한 문장이 해진을 살게 했고, 해진의 따뜻한 문장이 다시 세훈을 살게 했다.
나를 살게 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 그리고 돌아올 봄
▲무대가 주는 생명력"제가 <햄릿> 출연할 때 연세가 많으신 선생님들과 연습을 하는데,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기운이 좋아지시고 눈이 빛나시는 걸 봤어요. 남들은 '연세도 있는데 쉬셔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배우는 연기를 못하는 게 더 힘들어요. 무대를 해야 세포가 깨어나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거잖아요. 그래서 해진이 죽어가면서도 글을 계속 쓰려는 이유가 자연스럽게 이해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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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년에 이어 앙코르 공연까지, 뮤지컬 <팬레터>는 2025년 겨울부터 2026년 여름 초입까지 가쁘게 달려왔다. 이미 많은 것이 완성되어 있고, 창작진과 여러 배우들이 차곡차곡 쌓아온 '바이블' 위에 배우 강필석이 뒤늦게 도착했다.
잠시 쉬다가 무대로 돌아온 그에게, <팬레터>는 그 완성된 디테일을 하나하나 이해하고 따라가기에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강필석은 그 하나하나를 자신이 수긍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낭만과 사랑의 정서가 진정으로 본인 것이 되지 않으면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참 어렵고 힘든 작품이었지만, 하고 나니 왜 사랑받는지 알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는 게 그의 솔직한 평가이다.
이전에도 기회가 있었지만 합류하지 못했다. 너무 잘되고 있는 작품에 본인이 합류하는 게 '폐'가 될까 봐 주저하기도 했다. 그런 강필석에게, 결국 오고야 만 뮤지컬 <팬레터>는 뒤늦게 자신에게 도달한 편지 같은 작품이다. 그에게 <팬레터>는 10년 전에 쓰였지만 여전히 세련되고 참 좋은 글이고, 친절하되 유치하지 않다. 섬세하게 쓰인 넘버 하나하나가 드라마와 어우러지면서 더욱 크게 무대를 울리는 작품이다. 그리고 <팬레터>를 하면서 받은 '팬레터'들의 문장이 강필석에게는 다시 없을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강필석이 관객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도 그 따뜻한 하나의 말, 하나의 문장이다.
"따뜻한 말을 주고받았으면 좋겠어요, 서로. 저만 느끼는 건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좀 험해진 것 같거든요. 낭만도 많이 사라졌고요. 그런데 <팬레터>는 편지 하나에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고, 말 한마디가 사람을 바꿀 수도 있다는 이야기잖아요. 물론,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일이 상황을 안 좋게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저는 꼭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않아요. 해진은 히카루라는 존재 때문에, 편지 때문에, 글 때문에 조금 더 살아 있었을 테니까요.
<팬레터>를 하면서 많은 '팬레터'를 받았어요. 제 오랜 팬 분께서 이 작품을 보고 처음으로 팬레터를 써봤다고 전해주셨는데, 그렇게 따뜻하고 힘이 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팬레터>를 보신 관객들도 공연장을 나가실 때 너무 험한 마음보다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 말 한마디가, 그 문장 하나가 또 누군가를 살게 할 수 있을 테니까. 뮤지컬 <팬레터> 앙코르 공연은 이렇게 봄이 끝나는 오는 7일 마무리 된다. 이렇게 나의 봄을 보내고 나면, 언젠가, 또 다른 봄을 안고 <팬레터>는 돌아올 것이다.
▲다음 시즌에도 그가 돌아올까?"아, 저 너무 늦게 <팬레터> 한 것 같아요. 저야 되게 재미있게 했으니까 한두 번 정도 더 하는 게 희망 사항이기는 한데…. 제작사에서 '다음부터는 너무 나이 든 사람 쓰지 말자' 이러면 어떻게 해요? (웃음) 시켜줄까요? 내가 너무 늙으면 안 시켜주지 않을까요? (웃음) 그러니까 <팬레터>도 빨리 돌아와야 해요. 안 그러면 그때는 나도 진짜 김해진처럼 기침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웃음)"라이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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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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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레터'의 주인이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