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아시안 팝 페스티벌에서 아오바 이치코의 공연 중에는 모든 종류의 촬영과 녹음이 제한되었다.
본인 촬영
모든 순간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복제되어 돌아다니는 시대, 음악 팬들 역시 공연을 볼 때 모든 순간을 기록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이기 쉽다. 그러나 이따금 모든 종류의 촬영과 녹음을 제한하는 공연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지난 5월 31일, 인천 파라다이스 시티 일대에서 열린 '아시안 팝 페스티벌(이하 아팝페)' 무대에 제이팝 뮤지션 아오바 이치코가 올랐다. 라인업이 공개된 이후 가장 많은 음악 팬들의 관심을 모았던 이름이다. 아오바 이치코의 공연을 앞두고, 그녀의 무대가 펼쳐지는 시티 스테이지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아티스트의 요청에 따라, '아오바 이치코'의 무대는 휴대폰/전문 장비를 포함한 일체의 촬영 및 녹음이 금지됩니다."
'시티스테이지에 입장하자, 아오바 이치코는 따스한 색감의 조명과 함께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아오바 이치코는 특유의 미니멀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데에 집중했다. 화려한 주법의 클래식 기타, 혹은 피아노. 단 한 대의 악기만 있으면 충분했다. 시규어 로스의 보컬 욘시(Yonsi)가 그렇듯, 공간 전체를 감싸안는 듯한 보컬이 아름다웠다. 아오바 이치코는 직접 입으로 새가 지저귀는 소리, 바람 소리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러한 소리의 향연은 관객을 태초의 영혼으로 만드는 듯 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많은 음악 팬들은 "이 공연은 촬영을 금지하는 것이 신의 한 수"라며 입을 모았다.
이외에도 올해 아팝페에서는 흥미로운 순간들이 많이 펼쳐졌다. 짱유와 제이플로우가 결성한 그룹 힙노시스 테라피는 끊임없이 모쉬핏을 유도했다. 래퍼 짱유의 놀라운 스태미너는 물론, 제이플로우가 빚어내는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는 쉬지 않고 관객들을 맹렬한 분위기로 몰아갔다. 스스로를 '사회부적응 골방외톨이'라고 자조하던 슈게이징 원맨 밴드 '파란노을'은 수천 명이 모인 페스티벌 무대에서 과감하게 자신의 얼굴을 공개했다.
199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된 인디록 밴드 디어후프(Deerhoof)의 공연 역시 음악 팬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전광판에 '디어후프'라고 적힌 한국말 그래픽과 함께 무대에 오른 모습이었다. 매스 록의 변칙적인 리듬이 일본인 보컬 사토미 마츠자키의 동화적인 보컬과 어우러졌다. 전날 출연한 쿠루리와 더불어 시모키타자와계를 대표하는 일본의 베테랑 밴드 서니 데이 서비스의 밝은 음악은 화창한 날씨와 잘 어울렸다.
▲2026 아시안 팝 페스티벌
파라다이스문화재단
한국 인디의 역사를 처음 썼던 베테랑들의 공연도 빛났다. 브로콜리 너마저와 김민규(델리 스파이스, 스위트피)의 명곡들이 잔디 광장의 관객들을 하나로 묶었다. 얼터너티브와 하드 록, 블루스 등을 섞어 그들만의 역사를 썼던 밴드 '노이즈가든'의 복귀 공연 역시 반가웠다. 윤병주의 절륜한 기타 연주는 물론, 2016년 세상을 떠난 보컬 박건을 추모하는 시간을 모두 볼수 있었다. 대만 대표 밴드 선셋 롤러코스터는 야외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특유의 나른한 그루브를 한껏 뽐냈다. 가장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낸 순간은 단연 혁오와 함께 불렀던 노래 '영 맨(Young Man)'을 부를 때였다. 실내 스테이지의 피날레를 장식한 크라잉넛은 마지막 곡 '다 죽자'를 부르며 지친 관객들이 마지막 에너지를 다 쏟아내도록 독려했다.
▲2026 아시안 팝 페스티벌에서 펼쳐진 디어후프(Deerhoof)의 공연본인 촬영
2024년 아시안 팝 페스티벌이 탄생했을 때, 이 조합은 당시 이 페스티벌을 찾은 음악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파라다이스 문화 재단과 APF 컴퍼니가 주최하는 페스티벌인만큼, 파라다이스 시티 호텔의 쾌적한 인프라를 그대로 누릴 수 있다. 공연을 보다가, 시원한 식당가와 화장실로 몸을 피할 수 있고, 고급스러운 실내 공연장인 루빅, 그리고 한국에서 손꼽히는 수준의 클럽인 '크로마'도 만끽할 수 있다. 이만큼 쾌적한 페스티벌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에 없었다.
그럼에도 핵심은 음악이다. 도저히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다채로운 음악들이 '아시안 팝'이라는 이름 아래 모일 수 있다는 것이 아시안 팝 페스티벌의 강점이다. 올해로 3회를 맞은 아시안 팝 페스티벌은 일찌감치 그 다음 계획을 확정했다. 오는 2027년 5월 29일과 30일, 파라다이스 시티 일대에서 제4회 아시안 팝 페스티벌이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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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서 펼쳐진 페스티벌, 이런 쾌적함은 어디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