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트로덕션'이라 했을까... 한국어 좋아하던 홍상수가 낯선 제목 단 이유는?

[김성호의 씨네만세 1357] 홍상수 전작전 <인트로덕션>

영단어 'Introduction'엔 몇 가지 뜻이 있다. 가장 흔한 건 역시 소개겠다. 내가 오늘 만난 누구에게 내 친구를 소개할 때와 같이, 사람을 소개한다 말할 때 이 단어를 쓴다. 공식 면접자리를 뜻하는 인터뷰(Interview)와 구분해 보다 자유로운 절차와 형식, 상황에서의 만남을 인트로덕션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무언가의) 안으로'를 뜻하는 Intro와 '넣는다'는 의미의 duc의 만남이니만큼 여기서의 '소개'는 집단과 관계의 바깥에서 안으로 들여 놓는 행위로부터 유래했을 테다.

다른 뜻도 있다. 기본은 원형대로 바깥에서 안으로의 진입이다. 흔히들 책과 영화, 음악 등에 있어 '인트로'라고 말하는 게 이 단어의 축약형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영화나 문학, 연극의 도입부거나 서곡이나 서시, 서장으로 따로 만들어진 작품에 대하여서 인트로라고 말한다. 역시 바깥에 있는 관객이며 독자를 작품 안으로 이끄는 역할을 이 인트로들이 담당한다.

이밖에도 한국에 목화솜이 전래됐다거나, 해외서 유행하던 콜드브루 추출법을 한국 카페들이 도입했다 할 때의 전래며 도입 등의 뜻도 갖는다. 내가 아는 한 이 세 가지 용례가 아닌 경우는 일상에서 채 1할을 차지하지 않을 테다.

인트로덕션 스틸컷
인트로덕션스틸컷한국영상자료원

한국말 선호하던 감독의 외래어 사용, 이유는?

홍상수 감독의 25번째 장편영화 <인트로덕션>은 그의 영화에선 이례적으로 외래어인 '인트로덕션'을 제목으로 삼았다. 일전에 '씨네만세'서 다루었던 2011년 작 <리스트>와 함께 외래어가 그대로 제목이 된 유이한 사례인데, 명확하게 작중 인물의 희망사항 목록이 작성되며 시작하는 <리스트>의 '리스트'와 달리 <인트로덕션> 속 '인트로덕션'이 무언가를 궁금해하게 만든다. 소개일까 아니면 도입일까 말이다. 우리말로 딱 떨어지는 제목을 달지 않은 이유가 아마도 여기에 있을 테다. 그저 제목 하나를 외래어로 달았을 뿐인데 관객은 생각하게 된다. 홍상수의 영화들이 주로 문장형 제목으로 흔히 예비하는 효과를 이번엔 이로써 달성한다.

홍상수 감독에게 베를린영화제 두 번째 은곰상을 안긴 영화다. 전작 <도망친 여자>를 통해 감독상을 받았던 그가 1년 만에 각본상을 거머쥐었다. 이듬해엔 다시 <소설가의 영화>로, 2024년엔 <여행자의 필요>로 심사위원대상까지 두 번 차지해 베를린이 주목하는 한국 거장 자리를 공고히 했다. 여기에 김민희가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까지 치자면 베를린 최고상인 황금곰상만 받지 못했을 뿐 홍상수 감독 영화에 주어진 은곰상(각 부문 상)만 다섯에 이른다.

흑백화면으로 찍은 영화다. 흑백영화시대엔 흑백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지만 요즈음엔 반대다. 첫 칼라영화인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인공이 환상의 세계로 넘어갈 때 흑백이던 화면이 칼라로 전환된 건 당시만 해도 관객들이 칼라보단 흑백영상을 더 현실적으로 느낀 때문이다. 칼라화면이 낯설고 흑백이 더 익숙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선 흑백화면이 영화적이다. 감독이 특별히 색조를 배제한 흑백화면을 선택한 이유겠다. 왜 배제했을까, 그로부터 얻어지는 효과는 무엇일까를 고심하게 된다. 요컨대 총천연의 색깔들을 배제할 때에야 비로소 부각되는 요소가 있다는 뜻이겠다.

인트로덕션 스틸컷
인트로덕션스틸컷한국영상자료원

분절되고 반복되는 이야기, 부각되는 것들이 있다

<인트로덕션>은 모두 세 개 장으로 나뉜다. 첫째는 어느 한의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오랜만에 한의사인 아버지(김영호 분)의 부름으로 한의원을 찾은 아들(신석호 분)이 진료가 길어지며 대기실에서 꾸벅꾸벅 존다. 한참을 기다리는데 아버지는 다른 일들이 우선이다. 아들에겐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동안 아들을 챙기는 이가 있다. 접수대에 앉은 직원(예지원 분)이다. 아들이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서 챙겨준 격의 없는 사이로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가 영화 가운데 따스한 감상을 일으킨다.

두 번째 장은 독일 어느 도시에서 이뤄진다. 어머니(서영화 분)가 딸(박미소 분)을 데리고 찾은 독일이다. 알고 지내는 친구(김민희 분)의 집에 딸을 묵도록 하기 위해 소개하는 자리에 동행한 그녀다. 패션디자인을 공부한다는 딸에게 엄마는 왜인지 날이 서 있다. 딸에겐 큰 언니 쯤이 될 제 손아래 친구를 소개해주면서도 좀처럼 그녀에게 다정한 말 한 마디 해주지 않는다. 도리어 그 친구가 언니의 딸에게 편안하고 다정하게 곁을 내어주는 듯하다.

세 번째 장에선 또 다른 어머니(조윤희 분)가 나온다. 앞서 첫 장에서 등장한 아들이 나오니 아마도 앞의 한의사와는 한때 부부사이였던 듯하다. 한의사에게 진찰받던 유명한 연극배우(기주봉 분)가 이번엔 어머니와의 인연으로 아들을 소개받는다. 한의원에서 잠깐 만난 배우에게 영향을 받아 연기를 하게 되었다며, 지금은 별 것도 아닌 일로 그만두려 하는데 조언을 부탁한다는 이야기다. 그로부터 아들과 그 친구(하성국 분)가 참석한 자리에서 꽤 인상적인 이야기가 오가게 되는 것이다.

인트로덕션 스틸컷
인트로덕션스틸컷한국영상자료원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너는 아니?

영화는 각 장의 앞에 숫자(1, 2, 3)을 띄워가며 구분된 단편을 묶어 한 편의 장편을 이룬다. 러닝타임이 고작 66분이니, 옛 기준에선 중편영화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분절된 세 편의 이야기를 연달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반복과 그를 통한 달리 보게 하기는 홍상수 특유의 영화적 기술이니만큼 이 영화에서 중첩되는 인물과 사건, 상황들이 자연스레 드러내는 것이 무언지를 집중해 보아야 할 테다.

영화에선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은 혈연으로든, 과거의 인연으로든 이미 아는 사이다. 부모와 자식, 또 친구와 연인, 혹은 헤어진 옛 애인이다. 그에 얽힌 사연, 구체적 관계를 아는 건 불필요하다는 듯, 홍상수의 영화가 대개 그러하듯이 그 위에 쓰이는 어떤 순간을 기록하듯 보여줄 뿐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놓고 챙기지 않는다(1편)거나, 어머니가 딸을 제 친구에게 소개해주는데 영 살갑지가 못하다(2편)거나, 또 다른 어머니가 제 자식을 지인에게 소개해주면서도 무관심하고 몰이해하다(3편)거나 하는 식이다. 가만히 보다보면 부자, 모녀, 모자의 관계는 그저 가족관계기록부 상에서처럼 가깝지가 않은 듯하다. 진짜로 있어야 할 게 없는 것이다.

그 사이 부각되는 또 다른 관계들이 있다. 공문서 상에선 아무것도 아닌, 아버지 한의원의 직원이 아들과 찐한 애정이 담긴 포옹을 할 때(1편) 관객은 마치 그녀가 이 젊은 남성의 엄마나 큰누나와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지인에게 소개받은 그녀의 딸을 이제 제 집으로 들이기로 한 여성이 도리어 은근한 관심과 애정을 베풀 때(2편) 우리는 이들의 관계가 보다 안온하고 풍요로울 것임을 짐작한다. 그리고 기본적인 사실조차 알지 못하거나 보지 않는 어머니보다 오늘 처음 만난 배우가 더 진실한 다그침을 쏟아낼 때는 어떤가(3편). 보기에 따라서는 주제넘고 꼰대적일 수도 있을 그 자리 뒤에 차가운 바다 안으로 향하는 사내의 모습이 있다. 그런 그를 끌어안아주는 건 독일에서 만난 남자가 좋다고 가차 없이 떠난 연인이 아니라 친구다. 그리고 아픈 몸으로 삶 전체를 비관하게 된 여자를 보듬는 것도 그의 독일인 애인이 아니라 헤어져 아무 관계도 아니게 되어버린 남자이고 말이다(3편).

홍상수 전작전 포스터
홍상수 전작전포스터한국영상자료원

흑백 화면 속에서 더 두드러지는 것

영화 <인트로덕션>은 이 같은 상황의 중첩을 통하여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이야기를 돌아보도록 한다. 대체 뭐가 중한가, 진짜와 가짜라고 믿는 것은 정말로 그러한가. 때로는 장부 위의 기록보다, 공식적이라고 인정하고 인정받는 그깟 것들보다 오가는 마음이 훨씬 더 중한 것이 아닌가. 혹자는 또한 자기변명의 반복이라 할 수 있을 그런 이야기를 홍상수는 꺼리지 않고서 다분히 홍상수 영화란 소리를 들을 영화로써 표현해낸다. 예술과 삶이 그렇게 맞닿아 오늘의 관객에게 가서 닿는다. 베를린영화제가 이 작품에 각본상을 준 건 잘 짜인 구성이 마침내 관객으로 하여금 이러한 생각에 이르도록 할 만큼의 힘을 갖췄다는 판단이었으리라.

그렇다면 서두에 적은 '인트로덕션'은 무슨 뜻일까. 우선은 소개, 사람이 다른 누구에게 제가 아는 사람을 소개해 안으로 들이는 일일 테다. 영화 내내 그러한 상황이 반복되니 말이다. 그러나 영화가 그저 그쯤에서 그치지는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가 제목을 '소개'가 아닌 외래어로 단 것이 여러 뜻이 중첩되어 관객에게 다가서길 바라서이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여긴다.

<인트로덕션> 속 이야기는 홍상수의 영화세계가 전과는 한층 달라졌음을 알린다. 윗세대가 아랫세대를 위무하고, 흑백화면을 취하거나 화질을 고의로 떨어뜨리는 등 전에는 흔히 하지 않던 영화적 작법을 감행하는 시도 등이 그렇다. 어쩌면 홍상수는 <인트로덕션>으로 새로운 영화세계로의 도입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러하다고 여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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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