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에서 신인 드래프트 동기는 선수 시절 내내 비교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같은 해 비슷한 상위픽으로 입단한 동기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울산 현대모비스 박무빈(25, 184.4cm) 역시 그런 시간을 지나고 있다.
2023 KBL 신인드래프트 전체 2순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박무빈은 고려대 시절부터 아마추어 최고의 가드 유망주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뛰어난 운동능력과 공격 본능, 적극적인 돌파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두루 돋보였다.
하지만 프로 무대는 냉정했다. 1순위 문정현은 수원 KT의 핵심 포워드로 자리 잡았고, 3순위 유기상은 창원 LG의 주축 슈터로 성장했다. 둘다 국가대표 단골 멤버로 자주 이름이 오르내렸고 이번 대표팀에도 합류한 상태다.
반면 박무빈은 기대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다. 가능성은 분명했지만 경기 운영과 안정감, 리딩 능력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소속팀 현대모비스 역시 오랜 기간 확실한 주전 포인트가드를 찾지 못하며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실패한 2순위 픽'이라는 혹평까지 터져나왔다.
전환점은 양동근 감독 체제에서 찾아왔다.
현대모비스의 레전드 포인트가드로 평가받는 양동근 감독은 부임 이후 가장 먼저 가드진 육성에 공을 들였다. 특히 박무빈과 서명진에게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다. 양 감독은 전지훈련부터 두 선수에게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하며 기본기와 경기 운영 능력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뿐 아니라 포인트가드가 가져야 할 경기 이해도와 책임감까지 강조했다.양 감독은 선수 시절 특유의 성실함과 철저한 준비성으로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가드가 됐다. 그런 지도자가 박무빈에게 지속적으로 기회를 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박무빈 역시 이를 받아들였다. 그는 "농구를 새로 배우는 과정"이라고 표현하며 양 감독 밑에서 성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단순히 공격적인 가드가 아니라 경기를 조율하고 동료를 살리는 진짜 포인트가드로 변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우석·신민석 공백 속 증명한 존재감
지난 시즌 현대모비스는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 시즌을 치렀다. 주축 자원인 이우석과 신민석이 상무에서 군 복무를 이어가며 전력 공백이 발생했다. 공격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던 선수들이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가드진의 부담이 커졌다. 경기 운영을 책임질 선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박무빈은 가장 많은 기회를 얻은 선수 중 하나였다.
양 감독은 시즌 초부터 박무빈에게 꾸준한 신뢰를 보냈다. 현대모비스는 리그 개막 전까지만 해도 하위권 후보로 평가받았지만 양 감독은 결과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박무빈을 중심으로 한 가드 육성을 시즌 운영의 핵심 과제로 삼았다.
그 결과는 기록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박무빈은 지난 시즌 정규리그 48경기에 출전해 평균 29분 46초를 소화하며 9.35득점, 6어시스트(3위), 3.65리바운드, 0.9스틸을 기록했다. 직전 시즌과 비교해 큰 차이로 도약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특히 평균 29분 46초라는 출전 시간은 양동근 감독의 신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대모비스 공격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고, 경기 흐름을 조율하는 사령탑으로 성장했다. 어린 가드에게 이 정도의 역할이 주어진다는 것은 팀이 그를 미래의 핵심 자원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평균 6어시스트는 더욱 눈길을 끈다. 이는 박무빈이 단순한 공격형 가드에서 플레이메이커로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상대 수비를 흔든 뒤 동료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장면이 많아졌고, 경기 운영에서도 한층 안정감을 보였다. 시즌 초반과 비교해 후반기로 갈수록 경기 조율 능력이 향상됐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평균 3.65리바운드 역시 포인트가드로서는 적지 않은 수치다. 리바운드를 잡은 뒤 직접 속공을 전개하며 공격 템포를 끌어올렸다. 현대모비스가 빠른 농구를 구사하는 과정에서 박무빈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평균 0.9스틸 또한 적극적인 수비 에너지와 활동량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변화는 플레이 스타일이었다.
과거 박무빈은 돌파와 득점에 강점을 가진 공격형 가드였다. 하지만 양 감독 체제에서는 동료를 살리는 플레이메이커로 변신했다. 특히 지난해 11월 4일 서울 삼성전에서 기록한 14어시스트는 박무빈의 성장을 상징하는 경기였다.
그는 이날 경기에서 득점보다 경기 조율에 집중하며 현대모비스 공격을 완벽하게 이끌었다. 개인 한 경기 최다 어시스트 기록을 세운 그는 팀 승리의 중심에 섰고, 양 감독 체제에서 어떤 선수로 성장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물론 기복은 여전히 존재했다. 시즌 중반 잠시 부진에 빠지며 출전 명단에서 제외되는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양 감독은 비난보다 기다림을 선택했다. 결과보다 성장 가능성을 바라봤고, 박무빈에게 재정비할 시간을 줬다. 단기적인 성과보다 장기적인 발전에 초점을 맞춘 선택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성장… 현대모비스의 미래를 책임질 시간
냉정하게 말하면 박무빈은 아직 기대치를 완전히 충족한 선수는 아니다.
아마추어 시절 보여준 압도적인 재능과 프로 입단 당시 평가를 고려하면 여전히 더 보여줘야 할 것이 많다. 경기 운영에서의 안정감, 외곽슛 성공률, 클러치 상황에서의 판단력 등 보완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박무빈은 지금 분명히 성장하고 있다.
과거에는 잠재력만 이야기되던 선수였다면 이제는 실제 경기에서 팀을 운영하는 주전 포인트가드가 됐다. 국가대표 문정현과 유기상에 비해 주목도는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포인트가드는 원래 성장 속도가 느린 포지션이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경기 흐름을 읽고 팀을 이끄는 법을 배워야 한다. 때문에 지금의 성장 과정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양 감독 역시 박무빈을 단순한 유망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여러 차례 박무빈과 서명진을 언급하며 "더 이상 어린 선수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질책이 아니라 팀의 중심으로 성장하라는 주문에 가깝다.
실제로 현대모비스의 미래 구상에서도 박무빈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이우석과 신민석이 복귀하면 팀 전력은 더욱 강해진다. 공격 옵션이 늘어나는 만큼 포인트가드의 경기 운영 능력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박무빈이 지금의 성장세를 유지한다면 현대모비스는 오랜 고민이었던 주전 포인트가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자신과 함께 빅3로 꼽히던 동기 둘은 이미 국가대표로 자리 잡았다. 박무빈은 아직 그 단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은 그가 단순한 유망주가 아니라 실제 전력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양 감독의 신뢰와 꾸준한 출전 기회, 그리고 본인의 변화 의지가 맞물리면서 박무빈은 조금씩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직 완성형은 아니다. 그러나 현대모비스가 기다려온 미래가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시즌 기록한 커리어하이 성적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가능성으로만 평가받던 선수가 실제 주전 포인트가드로 성장해 가고 있다는 증거다.
다음 시즌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박무빈은 이제 성장의 결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 도전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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