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속 마지막 생존자의 가슴 아픈 반전

[안지훈의 뮤지컬 읽기] 뮤지컬 <더 라스트맨>

(* 이 글은 뮤지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지하에 위치한 방공호.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생존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는 바깥세상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좀비 바이러스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렸다고 절망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더 라스트맨>은 '생존자'라고 명명된 캐릭터 한 명이 110분 동안 홀로 무대를 지킨다.

방공호는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 단단한 철문이 좀비의 창궐로부터 생존자를 지켜주는데, 이 철문의 "너비는 900mm, 높이는 2,100mm, 두께는 60mm, 무게는 75kg"이다(넘버 'The Door 1'). 생각해보면 일반적인 현관문 사이즈다. 이 수치는 어렴풋이나마 기억해두는 것이 좋은데, 뮤지컬의 말미에 이르러 같은 음악이 다시 한 번 연주되며 수치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수치가 변하기까지 생존자는 좀비 아포칼립스에서의 처절한 생존기를 펼쳐 보인다. 혹시 모를 또 다른 생존자를 찾기 위해 무전을 시도하고(물론 공허한 외침으로 남는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영상으로 촬영한다.

관객은 크게 두 가지 영역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나는 생존자의 직접적인 서술, 즉 방공호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더 라스트맨>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현관문 바깥의 소리와 무대를 메운 스크린을 통해 전해지는 정보들, 즉 방공호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은 오묘한 부조화를 경험한다. 생존자는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를 전하지만, 방공호 바깥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듯하다. 여기서 관객은 알아차리게 된다. <더 라스트맨>은 사실 좀비 아포칼립스를 다룬 SF나 스릴러가 아니라, 한 청년의 외로움을 다룬 드라마라는 사실을.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청년에게는 사회가 마치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폐허로 느껴질 만큼 잔혹하게 다가왔다. 그는 말 그대로 건조하고 냉담한 사회에서 꾸역꾸역 살아낸 '생존자'다.

 뮤지컬 <더 라스트맨> 공연 사진
뮤지컬 <더 라스트맨> 공연 사진주식회사 네오

외로움을 대하는 사회의 역할

지난 5일 관람한 <더 라스트맨>이 한 청년의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뮤지컬이라는 것을 알고 이전의 음악들을 다시 듣다 보면, 가사의 의미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 "살고 싶다면 달려야 해, 죽기 싫다면 뛰어야 해"라는 노랫말은 좀비로부터 도망치는 생존자의 조언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청년의 고백이다.

좀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혼자가 된 생존자든, 사회로부터 고립된 청년이든, 공통적으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구석에 있는 인형 하나를 집어들고 이름을 붙여주며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에는 외로움이 반영되어 있다. 인형의 이름은 '존버',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버텨야 한다는 뜻을 담은 오늘날 유행어가 그대로 인형의 이름이 되었다. '존버'는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주인공 첫 놀랜드가 조난 상황에서의 고독을 버티기 위해 만들어낸 배구공 친구 '윌슨'과 유사하다(실제로 극중에 윌슨을 암시하는 대사가 나온다).

생존자는 '존버'로부터 용기를 얻고 문밖으로 나갈 기회를 엿본다. 문을 여는 시도도 한다. 하지만 바깥세상으로 발을 내딛지는 못한다. 이때 나는 생각했다. 만약 밖에서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단절과 고립은 나날이 심화된다. 고립된 개인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다시 연결되길 망설이는데, 이때 사회가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드러나는 것만 보기에도 바쁜 시대, 큰 목소리만 듣기에도 벅찬 시대다. 보이지 않고, 목소리가 작은 생존자와 같은 청년들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더 라스트맨>의 생존자는 그와는 반대로 우리 사회가 작동해야 한다고 꼬집는다. 언젠가 생존자는 예쁜 대나무야자 대신 침대맡에서 말라 비틀어진 식물을 관상용으로 책상에 올려놓는다. 파릇한 대나무야자보다 피폐해진 식물에게 더 관심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생존자는 그 식물에게 자신을 투영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이 그 식물에게 관심을 기울였던 것처럼, 사회가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여주길 바랐을 것이다.

 뮤지컬 <더 라스트맨> 공연 사진
뮤지컬 <더 라스트맨> 공연 사진주식회사 네오

언제 어디서나, 지금도 반복되는

다시 단절된 생존자는 문을 더 굳게 닫는다. 문도 더 커지고 무거워진다. 이제 문의 "너비는 900m, 높이는 2,100m, 두께는 60m, 무게는 7,500kg"이다(넘버 'The Door 2'). 이 정도 크기의 문은 생존자가 열지도 못하고, 밖에서도 열기 쉽지 않다. 이건 분명 동시대의 문제다. 뮤지컬 <더 라스트맨>에서 생존자는 공연되는 바로 그 날짜를 이야기하고, 무대를 메운 스크린에는 그날의 실제 뉴스가 송출된다.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 생존자처럼 외로움을 겪는 청년이 있다는, 자명하지만 쉽게 잊혀지는 사실을 자각하게 한다.

국가데이터처의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1인 가구는 전체 가구 중 36.1%(804만 5000가구)를 차지하며 가장 일반적인 가구 유형이 되었다. 이제 고립과 단절, 여기서 비롯되는 외로움은 특정 세대의 것이 아닌 전 세대를 아우르는 현상이 되었다. 이는 비단 한국 사회의 문제만은 아니다. 세계 각국에서 외로움이 강력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장관급 책임자가 외로움을 국가 정책 의제로 다루도록 했다. 그만큼 시급한 사회 현안이라는 방증일 테다.

마침 한국 창작 뮤지컬 <더 라스트맨>이 올해 영국에 진출했다. <벙커 트릴로지> <카포네 트릴로지> 등으로 한국 관객에게도 친숙한 극작가 제로스 컴튼이 <더 라스트맨>을 영국 사회 현실에 맞게 보완했고, 한국 공연을 연출한 김달중이 영국 공연도 총괄한다. 영국 공연은 런던 사우스워크 플레이하우스에서 6월 6일까지 이어지며, 한국 공연은 8월 9일까지 대학로 링크더스페이스에서 관객과 만난다.

 뮤지컬 <더 라스트맨> 공연 사진
뮤지컬 <더 라스트맨> 공연 사진주식회사 네오
공연 뮤지컬 더라스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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