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이 기르는 전업주부 아빠, 이렇게 당혹스러울 수가!

[김성호의 씨네만세 1355] <반칙왕 몽키>

당혹스런 영화 한 편이 도착했다. 박홍열과 황다은, 두 감독이 공동으로 연출한 장편 다큐멘터리 <반칙왕 몽키>다. 합계출산율 0.8, 인구구조 붕괴로 인한 산업과 국방, 또 연금고갈과 노인부양의 위기가 공동체에 닥쳐올 게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여 보란 듯 4명의 아이를 낳아 기르는 애국자의 삶을 다룬 다큐라 해도 좋을까.

감독은 영화소개를 다음과 같이 적어두었다. '저출산 시대에 사남매는 반칙'이라고. '맞벌이도 모자랄 판에 외벌이는 반칙'이라고 말이다. '가부장제 남성 생계부양자 사회에서 전업주부 아빠는 반칙'이고, '사교육 왕국에서 돈 안드는 사적인 교육은 반칙'이란다. '다둥이 자녀 양육도 벅찬데 마을 아이들까지 돌보는 것도 반칙'인데, 하나하나 이 반칙들을 모두 모아 행하는 주인공 몽키 문현준과 아내 조안나 가족의 삶이 영화 안에 담겼다. 남자가 전업주부를 하는 게 아주 없는 일이 아닌 이 시대에도, 네 아이를 기르며 마을 공동체 안에서 대안적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모두 행하는 이를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감독은 이를 반칙이라고 말하는데, 규칙처럼 자리 잡은 이 시대 보편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있단 점에서는 아주 틀린 말이 아닐 테다.

박홍열과 황다은, 두 감독의 영화를 본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2022년 부천노동영화제서 마주한 전작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가 담은 인상적 고민의 지점들을 또 한 번 발견할 수 있기를 고대하며 영화 시사회를 신청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서울 마포구 성산동 일대에 자리한 공동체 성미산마을 교육의 현황을 엿볼 수 있으리란 기대 또한 있었다.

반칙왕 몽키 스틸컷
반칙왕 몽키스틸컷스튜디오 그레인풀

출연자가 직접 찍은 릴스도 영화일 수 있을까

<반칙왕 몽키>는 당혹스럽다. 그저 다루는 내용이나 인물 얘기가 아니다. 영화가 감독인 두 연출자가 촬영한 영상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주인공인 몽키가 제 인스타 계정에 올리기 위해 찍은 릴스영상을 삽입하고 있는 때문이다. 등장인물이 직접 찍은 릴스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 사이사이 감독의 촬영분이 덧대어졌다 느껴지는 순간도 여럿이다. 한 편의 영화란 감독이 구상하고 촬영하여 얻은 바를 편집해 관객 앞에 펼치는 작업이 아닌가. 그런데 작품 안엔 영화가 될 것을 전혀 기대하지 않고 찍은 릴스가 뭉텅이로 자리하니, 이것이 영화인가 릴스의 연속인가 당혹하게 된다.

'반칙'이란 이름으로 묶일 수 있는 제 요소를 여덟 개의 장으로 나누어 병렬적으로 연결했다. 앞서 영화소개에 적었듯, 4명의 아이들, 외벌이, 전업주부 아빠, 사교육을 배제한 사적 교육 등 특징적 요소들이 각 장의 작은 주제가 된다. 한 장 한 장이 넘어갈 때마다 관객은 몽키의 가족에 대해, 또 그를 둘러싼 삶의 반경에 대한 이해를 넓혀간다. 영화가 마치 여덟 편의 브이로그 기반 개인방송채널 영상을 이어보는 듯 느껴지는 건 이 영화의 구성이 애초에 그렇게 짜인 때문이겠다.

반칙이 승부수라면, 성패는 반칙이 얼마나 유효한가에 달렸을 테다. 다둥이 가족의 일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꼭 그런 모양이다. 외벌이를 하는 엄마의 이야기는 후반부 약간 등장하긴 하지만 그 일터를 비추거나 직장 동료를 등장시키지는 않는 탓으로 객관성을 얻지 못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책임지는 몽키에게 대단한 철학이며 사상이 자리한 것인지도 영화만 보고서는 알 수 없다. 그가 다만 아이들과 놀아주며 아내와 대화하고, 주변을 대하는 방식만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다만 근거가 턱없이 부족해 보는 이로선 그저 짐작만을 할 뿐이다.

반칙왕 몽키 스틸컷
반칙왕 몽키스틸컷스튜디오 그레인풀

성미산 마을공동체와 전업주부 아버지

직접 나무와 나무 사이 끈을 매어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기구를 마련해준다거나, 비용은 얼마 들이지 않고서 재료를 구해 놀 수 있는 꺼리들을 만들어가는 그의 수고가 대단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제법 있다. 일하는 아빠, 여성인 엄마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전업주부 아빠로서 해내는 모습이 새롭게 다가올 때도 없지 않다. 벽화를 그리는 노동자에게 페인트를 얻고, 동네 도서관에서 버린 장식물을 주워 아이들과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드는 모습 또한 담겼다. 이와 같은 장면을 통해 누군가는 너무 쉽게 물건을 만들고 버리는 자본주의의 부정적 단면을 목격할 수도 있는 일이다.

성미산 마을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관계맺음과 이들이 받는 교육이 어떠한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대부분은 몽키가 아이들과 보내는 일상의 단면이 연속될 뿐인데, 이는 각 장 안에 든 여러 영상이 짧은 호흡으로 일상을 노출하는 몽키의 자발적 촬영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겠다. 이를 취사선택해 영화 안에 엮어낸 감독의 선택이 작용했다고는 하지만 주인공 본인이 다른 목적으로 찍은 영상의 이어붙임이 의도한 효과를 발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일상의 노출에 비해 주변인의 성격과 행동의 맥락, 환경 등이 잘 드러나지 않는 건 이 때문이겠다.

때문에 영화는 몇 차례 긴 호흡으로 이뤄지는 진득한 대화를 배치한다. 그중 하나가 교육에 대한 것이다. 성미산 마을 아이들이 보육의 단계까지는 마을학교의 방침을 따라가다가 고학년이 되면 학원에 가고 중학생이 되면 입시의 굴레로 편입하는 상황이 언급된다. 대안을 찾아 온 사람들이 성공적 대안을 발견하거나 목격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이제껏 살며 보았던 대안교육 아래 자란 이들의 갈증은 탁월함을 꿈꾸는 이들일수록 깊었다. 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 즉 탁월한 친구며 스승, 그들과 관계 맺을 수 있는 기회를 공동체 안에선 좀처럼 찾지 못한 때문이었다. 기존 수월성 위주로 설계된 경쟁교육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대안이 되기를 추구한다면 이에 대한 극복 또한 있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반칙왕 몽키 스틸컷
반칙왕 몽키스틸컷스튜디오 그레인풀

해답 없이 흩뿌려진 여덟가지 반칙들

더 높은 성적, 더 좋은 대학의 탁월함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떤 이는 본래적으로 나아지길 꿈꾼다. 어울려 행복하게 지내는 현상의 유지가 아닌, 독자적 꿈을 꾸고 더 순도 높게 그를 이루고자 한다. 교육이 각 아이가 품은 씨앗을 더 잘 개화하도록 돕는 것이라면, 탁월함을 좇는 이에게 마땅한 자극과 도움을 건넬 책임이 있는 것이다. 대안교육이 흔히 마주하는 어려움이 여기에 있기에, 나는 그를 다룬 작품으로부터 해답 또한 구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영화 속 몽키와 그 아내가 식탁에 앉아 나누는 아이들의 장래에 대한 이야기는 그 비중에 비해 얼마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이해하며 나아가는 대화라기보다는 엄마의 불안이 표출되고 그를 다독이며 제 주장을 관철하는 몽키의 말로 끝맺음될 뿐이다. 마을 바깥에 존재하는 세상은 오로지 대입에만 매몰된 입시가 전부일까. 학원과 입시를 넘어 탁월함을 좇으려는, 더 넓은 세상을 향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이들이 또한 얼마든지 있을 텐데 말이다. 이들이 얼마쯤 배제한 듯한 대학교란 공간은 분명 그 발판으로의 역할을 얼마쯤 해낼 수가 있는 특화된 기관이다.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 기성의 틀이 마련해둔 가능성을 스스로 배제하는 것이라면 그는 과연 이로운 대안일까. 이와 같은 의문들을 영화 속 모호한 대화가 거의 해소해주지 못한다.

그저 교육만이 아니다. 여덟 개의 반칙이 저마다 다른 지점에 놓여 있는 탓으로, 영화는 몽키라는 한 인간을 매개로 중구난방 이야기를 이어가게 된다. 그로 인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성미산 마을과 공동체, 그들이 영위하는 삶이라기보다는 몽키라는 한 인간의 개성이 되고 만다. 영화가 삽입한 상당수 몽키발 영상들이 이를 더욱 강화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때문에 그의 매력이 통하는 만큼 관객은 영화를 흥미롭게 볼 수가 있겠다. 내게는 그 반대였지만 말이다.

반칙왕 몽키 포스터
반칙왕 몽키포스터스튜디오 그레인풀

반칙을 말하려면 규칙부터 알려줘야지

박홍열 감독은 시사회에 앞서 평론가들에게 전한 메일을 통해 "이들의 삶을 특별한 사례로 제시하기보다, 오히려 이런 삶을 쉽게 상상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가 '반칙'은 아닌지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며 "작품의 대부분은 주인공 '몽키'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시작한 인스타그램 릴스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편집 과정에서 제가 촬영한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많이 덜어내고, 몽키의 내밀한 기록이 중심이 되도록 구성했"다며 "이 영상들이 극장 스크린에서 어떻게 확장될 수 있을지에 대한 감각을 상상하며 작업했"다고 섦명한다.

릴스를 적극 차용한 선택이 이와 같은 영화가 흔치 않단 점에서 낯설고 새로운 시도로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감독이 주관을 갖고 인물과 사건을 해석해 보이려는 노력과 의지의 부재 또한 드러난다. 릴스 또한 광의의 영화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영화는 몽키가 감독하고 출연한 저 자신의 노출이다. 감독은 몽키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시작했다고 말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영화 가운데 몽키가 저를 선택적으로 노출하는 선택과 의지, 시선이 혼입되고 만다. 몽키가 스스로를 바라보고 노출하는 시각이 그대로 <반칙왕 몽키> 가운데 덧입혀지는데, 마땅히 있어야 할 주인공을 이해하고 노출케 하는 감독의 독자적 시각의 자리는 그만큼 축소되고 만다. 나는 축소된 그 영역이 이 영화가 가장 지켜 마땅한 땅이었다고 느낀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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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