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비기닝> 공연 사진
수컴퍼니
인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서로의 조건을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인 만남의 방식이 된 듯하다. 데이팅 앱의 매칭 시스템은 기업의 면접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로맨틱한 사랑 역시 자신의 잘난 점을 어필해야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로라와 대니가 서로에게 다가가는 방식은 이와 상반된다. 둘은 각자의 결핍을 고백하고 허물을 드러낸다. 작은 에이전시를 경영하는 로라는 런던에 자가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고 있지만, 내면은 공허한 '빈 껍데기'라고 고백한다. 로라는 자신의 내면을 채워줄 새로운 연인을 갈망하고 있는 상태로, 대니에게 적극 구애한다.
대니가 로라의 구애에 부담을 느끼는 까닭은 자신에게 더 큰 결핍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대니는 자신의 잘못으로 이혼을 경험한 남성이다. 그 이전에는 부부 관계를 '껍데기'라고 느낄 정도로 단절되고 얄팍한 관계를 경험했다. 때문에 과거의 자신을 자책하며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는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번듯한 직장과 안정적인 소득도 없다. 로라와 대비되는 점이다.
대니의 과거는 초연 당시 감춰졌다. 두 인물의 정서적 교감을 밀도있게 조명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번 재연에서는 원작에 담겨있던 대니의 과거 이야기를 충실히 드러냈다. 덕분에 상대방에게 관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회피하는 대니의 태도가 서사적 설득력을 갖추게 됐다.
장점을 어필하며 쌓아올린 감정은 상대의 허물을 발견하는 순간 무너지기 쉽다. 반면 허물이 드러나는 와중에도 유지된 감정은 더 나은 시작을 가능케 한다. 로라와 대니는 바로 이 점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시작은 느릴지언정 여타 로맨틱한 관계의 시작보다 훨씬 탄탄하다. 그렇게 '화려한 싱글' 커리어우먼과 아픔을 간직한 중년 남성의 인연은 탄탄하게 시작된다.
<비기닝>은 자본주의의 한복판에서 자본주의적 합리성과 상반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만남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국내 초연의 흥행을 이끈 이종혁과 유선이 다시 한번 대니와 로라를 연기한다. 여기에 6년 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하는 배우 이천희, 초연 당시 아쉽게 참여하지 못한 이윤지가 힘을 보탠다. 공연은 6월 21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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