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 봅니다. 그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기자말] |
SBS 드라마 <멋진 신세계> 예고편을 보았을 때 속으로 '또?'라고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주인공이 타임슬립을 하거나, 다른 이와 영혼이 뒤바뀌는 설정을 지닌 드라마들이 흔해졌기 때문이다. <멋진 신세계> 역시 타임슬립과 타인의 몸에 들어간 영혼이라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별다른 기대 없이 시청한 <멋진 신세계>를 어느새 정주행 하고 있었다. 주인공 단심(임지연)의 매력에 빠져들어서다. 조선 시대의 영혼을 가지고 현대에 온 단심이 일상의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시원해졌고, 단심의 조선시대 말투는 들을수록 귀에 착착 감기며 따라해 보고 싶어졌다.
<멋진 신세계>를 특별하게 만드는 단심의 매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 심리학적 이유를 찾아봤다.
조선시대에서 온 단심
▲'신서리'의 몸으로 살게 된 단심.
SBS
단심은 조선시대 왕의 첩인 희빈이었다. 역사 속에 '희대의 악녀'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안종(장승조)과 대군 이현(허남준)의 세력 다툼에 이용되다 사약을 받은 인물로 그려진다. 사약을 받던 날, 끝까지 죽기를 거부하던 단심은 무속의 힘을 빌려 300년 뒤 대한민국의 무명 배우 '신서리'의 몸에서 다시 태어난다.
단심이 처음 눈을 뜬 곳은 바로 사극 세트장. 자신이 살던 조선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배경에서 두 번째 생을 시작한 단심은 자신이 300년 후 신서리가 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단심은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금세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 어쩔 줄 몰라 하거나 절망하기보다 자신이 다시 살게 되었음을 수용한 후, 단심은 신서리의 세계를 하나씩 파악해 간다.
그런데 그 방법이 참 매력적이다. 단심은 '신서리' 흉내를 내거나 자신의 정체를 숨기며 애써 현대에 녹아들려고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현대인들과 비슷하게 행동할까' 고민하기보다는, 자신의 방식대로 표현한다. 말투와 어휘도 조선시대 그대로 사용한다. 더 신기한 건 단심의 이런 언행이 분명 '튀는데도' 다른 인물들 사이에 완전히 녹아든다는 점이다. 회가 거듭될수록 단심과 다른 인물들의 대화는 자연스러워 보이고, 300년 전 방식으로 이해하는 현대의 문물들도 일상과 잘 어우러진다.
단심은 '주체성 자기관'을 지닌 인물로 보인다. '자기관'은 문화 심리학 분야에서 연구되는 개념으로 자신이 속한 문화 안에서 개인이 자신을 인식하는 시선을 뜻한다. 자기관은 집단주의 문화권과 개인주의 문화권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연구됐는데, 일본의 학자 이누야마 요시우키는 한국과 일본 같은 집단주의 문화권에서의 자기관을 주로 연구한 학자다.
이누마야는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에 따라 자기관을 '주체성 자기'와 '대상성 자기'로 나누었다. '주체성 자기'는 자신을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주도하고 싶고, 가르치고 싶어' 하는 관계성을 지닌다. 반면, '대상성 자기'는 자신을 사회 속에서 영향 받는 존재로 인식하는 측면이 강하다. 때문에 '배우고 싶고, 따라 하고 싶어 하는' 관계성을 지닌다.
나답게 행동하는 단심
▲단심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현대에서의 삶을 살아간다.SBS
낯선 현대에 와서도 주눅이 들지 않고 주어진 환경 안에서 '나답게' 행동하는 단심은 '주체성 자기'를 잘 드러내는 캐릭터다. 동시에 단심은 자신의 상황이 힘든데도 다른 존재를 따뜻하게 대한다. 힘들게 살아온 서리의 삶을 눈치챈 후에는 "네 꿈을 내가 대신 이뤄주길 바라는 것이냐"라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고, 서리의 할머니를 돕는다(4회). 또 자신을 따르는 길 잃은 강아지에게도 정을 주며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도 한다(4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나답게 행동하면서 동시에 다른 존재에 대한 공감과 측은지심을 잃지 않는 단심이 나는 무척 매력적이었다.
아마도 단심은 이런 '주체성' 때문에 조선시대에 '요녀'로 여겨졌을 것이다. 단심은 노비로 팔려 가고, 궁에서 가장 낮은 궁녀로 일하며 신참례(괴롭힘)를 겪을 때도 기죽지 않고 나답게 버텨낸다. 6회 과거 장면에서 단심은 금주령이 내려진 궁에서 술을 몰래 마시다 대군에게 들키자 "소인 울화증이 심해 술로 약을 삼는 것입니다. 화병으로 죽는 것보다 마시고 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라고 답한다.
이렇게 스스로 사는 방법을 찾아내면서 단심은 '희빈'의 자리까지 오른다. 단심의 이런 면들은 조선시대를 지배하던 전통적인 가부장 문화에서의 여성상과는 많이 다르다. 이 때문에 단심은 '요녀'라 불리며, 당시 지배 세력의 권력 다툼에 이용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현대의 단심은 이런 주체성 덕분에 주변 인물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인물이 된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기업사냥꾼 세계(허남준)는 솔직하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단심에 빠져든다. 사실 세계가 사람에 대해 불신하는 건 어린 시절 문도(장승조)와의 관계에서 비롯됐다.
문도는 온갖 착한 일을 하면서 어른들에게 칭찬받지만, 세계를 괴롭혀 왔다. 그와 함께 자라는 동안 세계는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됐을 것이다. 늘 누군가의 '저의'를 생각하기에 마음을 열지 못하는 그에게 단심의 주체적이고 솔직 담백한 모습은 타인과 진심으로 만나고픈 그의 마음을 자극했을 것이다.
다른 인물들도 점차 단심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드라마 초반 단심을 '이상하게' 바라보던 손 실장(윤병희)과 광남(김민석)을 비롯한 고시원 사람들은 단심의 독특한 언행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이는 스스로에 대한 존중은 타인의 존중까지 끌어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어떻게 얻어낸 목숨인데 내 다시 함 잘 살아 보리라."
단심은 '멋진 신세계'에 와서는 종종 이렇게 다짐한다. 아마도 단심의 '주체성'을 잘 보여주는 말일 테다. 어느 환경에 있든, 나는 나답게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우리는 해본 적이 있을까?
단심은 현대 사회에서 주체성을 발휘해 타인으로부터 존중받지만, 실상 현실의 우리들은 스스로를 주체로 대하기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더 신경을 쓰면서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개인은 환경에 영향받는 '대상성'의 속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환경에 영향을 주는 '주체성'도 있다. 개인이기에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적어 보이지만,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은 조금씩 변화한다. 단심이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듯 말이다.
그러므로 '주체성 자기'를 한 번쯤 일깨워보면 어떨까. <멋진 신세계> 속 단심처럼 '주체성'을 발휘할 때 우리 각자의 주관적인 세상은 보다 '멋진 신세계'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참고문헌 : 이누미야 요시유키 외 <주체성-대상성-자율성 자기 척도의 개발> (한국 심리학회지 : 사회 및 성격, 2007. vol21, no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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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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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없이 봤다가 정주행... <멋진 신세계> 단심의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