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말라는 데 왜 가냐"는 비난, 활동가의 존재 이유를 묻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1352] BBC <이어즈&이어즈>

세상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빨라지며 미쳐가는데 우린 멈추지도, 생각하지도, 배우지도 않고 다가올 재앙으로 질주하기만 해요. 이 다음은 뭘까요? 어디로 향하는 걸까요? 멈추는 날이 오긴 할까요? -이디스 라이언스

그러니까 가지 말라는 데 왜 가는 거지? 어차피 나라에서 힘을 써서 구해줄 줄 알고 그러는 거잖아. 민폐야 민폐.

어느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다. 해외에서 벌어지는, 특히 자국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사안에 관여했다 문제를 겪은 시민을 향한 비판은 국가를 건너 대개 같은 모습을 띤다. 어째서 법을 어겨가며 해외에서 문제를 일으키느냐는 것, 그게 대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영국 활동가 이디스 라이언스에게 쏟아지는 비판이 꼭 그러하다.

이어즈&이어즈 스틸컷
이어즈&이어즈스틸컷BBC

가지 말라는 데 가서 사고치는 사람?

2019년 제작된 BBC 명작 드라마 <이어즈&이어즈>는 근미래, 그러니까 아마도 우리가 사는 2026년 즈음의 오늘과 가까운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영국에 사는 라이언스 일가로, 여느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다. 이디스 라이언스(제시카 하인스 분) 또한 이 가정의 일원이다. 드라마 초반 그녀가 뉴스를 통해 제 가족에들에게 근황을 알리는 장면이 있다. 끊임없이 영유권 분쟁이 일어나는 남중국해에 중국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놓은 훙사다오란 인공섬이 있고, 이곳에서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는 때였다. 이곳에 미국이 핵미사일을 발사했고, 마침 활동가들이 탄 배가 그 근처까지 나가있다가 피폭됐다는 해외뉴스였다. 그런데, 우리 딸이, 내 동생이, 우리 누나가 저 배에 타고 있는 것이다. 어느 누가 기절초풍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디스 라이언스는 아마도 '급진적'이란 평이 붙을 법한 사회활동가다. 난민이다 소수자다 빈민이다, 늘 온갖 문제로 바빠 좀처럼 집을 돌보지 못했다. 그녀가 베트남으로 갔다가 훙사다오로 향하는 활동가들의 배에 오른 것도 그래서일 테다. 가족은 그 근황을 알지 못했다. 때는 전쟁의 가망이 높아지던 시기였다. 미중 간 무역분쟁이 그저 무역 문제로만 끝나지 않을 듯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퇴임을 코앞에 두고, 미국이 먼저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의 영유권 분쟁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촉즉발의 위기는 인공섬에 대한 예기치 못한 핵공격으로 번졌다. 라이언스가의 딸이 그 핵공격에 피폭됐다.

이디스 라이언스는 영국 활동가 신분으로 국제 뉴스에 출연해 이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2차대전 끝 무렵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있었던 핵폭격과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비참한 죽음을 상기시킨 그녀는 무역전쟁을 진짜 전쟁으로 바꾸고 핵무기를 사람에게 사용한 미국에게 제재가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서구 사회가 모른 척 제 삶을 이어가는 일이 다시 반복돼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어즈&이어즈 스틸컷
이어즈&이어즈스틸컷BBC

더 똑똑할 필요도, 탁월할 이유도 없다

"정말 그럴(죽을) 줄 알았지" 이디스의 엄마
"이디스는 아무 것도 몰라" 이디스의 오빠
"대가는 내가 치른다고" 이디스의 새언니
"너희 고모는 멍청이야" 이디스의 오빠

<이어즈&이어즈>가 이 활동가를 다루는 자세가 놀랍다. 드라마는 그녀와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각자 집에서 TV로 뉴스를 보며 그녀에 대해 말하도록 한다. 제 집을 돌보지 않고 나간 그녀가 혼자서는 바꿀 수 없는 세상일에 개입하는 것을, 제 목숨까지 위태롭게 해 자식으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걸, 그녀가 비판하는 세상사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다른 시각이 있을 수 있단 걸, 심지어는 그녀가 세상사를 다 알 만큼 똑똑하지도 않다는 것까지 이야기하는 것이다. 왜 그렇지 않을까. 그녀는 틀릴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그녀를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훌륭한 건 그 너머에 있다. 이디스 라이언스는 틀릴 수만 있는 게 아니다. 맞을 수도 있다. 모두가 그녀를 비판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를 지지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녀를 통해 한 번도 관심 가져본 적 없는 문제를 인식하게 된 이도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녀의 조카처럼, 드라마 속 일어서는 많은 이들처럼 말이다.

이 드라마가 그저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 미중 간 분쟁, 국제사회에서 핵무기 사용의 문제만 다루는 건 아니다. 드라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벌어진 전쟁과 우경화되는 정치지형과 민주국가에서 득세하는 극우파, 금융위기, 폭증하는 난민과 인권문제, 장애, 성소수자 등 다양한 문제를 담아낸다.

어느 것은 에피소드로 다루고, 또 어느 것은 언급하며, 그저 노출할 뿐 말하지는 않는 것도 있다. 사랑과 우정, 가족애와 연대, 또 성장의 이야기를 그리는 통상적 드라마임에도 이 드라마가 수많은 사회문제를 다루는 건 왜일까. 아마도 실재하는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답이 아님을 알아서일 때문일 테다. 우경화와 포퓰리즘, 그 토양이 되는 시민의 무관심과 무지의 범람 앞에서 가만히 있는 게 답이 될 수 없다는 확신이 깔려 있는 듯 보인다. 그리하여 당대 영국에, 또 온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를 담아 생각하고 배우고, 그리하여 재앙으로 질주하길 멈추기를 당부하기로 한 것일 테다.

나는 이 드라마가 오늘의 한국에도 또한 유효하다 믿는다.

이어즈&이어즈 스틸컷
이어즈&이어즈스틸컷BBC

드라마가 세상과 만나는 순간

지난 23일, 스페인 빌바오 공항에서 곤봉을 든 경찰이 활동가 등 자국시민 4명을 체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이 저항하는 활동가와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곤봉을 휘두르는 모습이 찍힌 사진과 영상이 전 세계로 타전돼 큰 충격을 던졌다. 이들은 구호품을 싣고 가자지구로 향하던 '글로벌 수무드 선단(Global Sumud Flotilla)' 프로젝트에 참여한 활동가 및 그 지지자들로, 사건은 석방된 이들이 입국해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직전에 발생했다.

한국인 활동가 김동현과 김아현이 탑승해 국내서도 화제가 된 글로벌 수무드 선단이다. 봉쇄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생필품을 전달하고, 이곳에서 자행되는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됐다.

가자지구로 향하던 선단은 이스라엘에 의해 불법으로 나포됐다. 탑승한 활동가들은 체포돼 구속됐다. 이스라엘은 자국의 정당한 해상 봉쇄라 주장하고 있으나, 이스라엘 영해가 아닌 공해상에서 나포가 진행됐다는 점에서 명백한 불법행위다. 국제사법재판소(ICJ)조차 지난해 이스라엘로 하여금 필수품 반입을 제한하는 게 위법이라며 구호활동을 보장하라 권고했을 정도다. 바스크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유럽 대부분 국가가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귀국한 활동가들을 크게 반기며 보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에 대한 가치판단 이전에 어째서 활동가란 정체불명의 민간인 남녀가 지구 반대편까지 가서 물의를 일으키느냔 시선이 이들에게 쏟아진다. 이디스에게 그러했듯 틀리지만은 않은 얘기다. 적어도 그 비판하는 이에게는 몹시 타당한 비판이정부의 여행자제 권고도 무시해가며 문제가 될 게 분명한 항해에 나서는 게 과연 정당하고 이로운 일인가 하는 비판이겠다.

활동가의 존재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 한국이 터 잡은 현대 국가체제는 세 발로 선 솥과 같다. 세 다리를 이루는 건 민주와 법치, 그리고 다원주의다. 두 발로는 설 수 없는 솥이 세 발이 되어 서로 의지하듯, 셋 모두가 다른 것이 감당할 수 없는 기능을 한다. 민주가 사회의 기틀을 마련하고, 법치가 질서를 세워 안녕을 지킨다면, 다원주의는 민주와 법치로는 이룰 수 없는 지속가능성을 감당한다. 민주와 법치가 사회를 동질한 구성원의 무균실로 이끌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다른 시각과 가능성을 제시하는 일이 다원주의의 핵심가치다. 유전적 다양성이 진화로 이어지고, 균과 미생물이 공존할 때 면역 또한 강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제도가 자연의 질서를 모방한 결과다.

사회의 근본인 헌법 또한 변화한다. 변화하는 세상 앞에 오늘의 질서는 불변의 진리일 수 없다. 수많은 문제와 마주하여 해법을 내는 과정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끈다. 역사가 그를 입증한다. 활동가는 사회의 최전선에서 다른 구성원이 하지 못한 고민을 하는 존재다. 때로는 해외에서까지, 때로는 세계시민의 자세로 감각하고 고민하며 행동한다. 다른 생각과 행동, 말을 하기 위하여 더 탁월하거나 예의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 사회가 두지 않은 곳에 시선을 던지고, 하지 않은 고민을 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공동체를 더 풍요롭게 한다.

한국의 두 활동가가 받는 비난에 앞서 이들이 이 사회에서 갖는 가치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러다보면 대륙 동쪽 끝 고립되어 점점 균일한 집단이 되어가는 듯한 섬나라 한국에서 이들 둘이라도 가진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어즈&이어즈> 속 이디스 라이언스의 존재가 영국에 그러했듯이.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나와 다른 존재가, 그 다름을 드러내는 존재가 있어 얼마나 다행한가를.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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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