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스틸
라이트하우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의 황량한 풍경을 고스란히 재현한 <유레카> 속 세계는 동정이라곤 찾기 힘들다. 우리가 아는 일본, 대부분이 조밀한 인구 밀집지대와 산간으로 이어진 풍경과 사뭇 다른 광활하고 낯선 이 영화 속 배경은 자연스레 '웨스턴', 즉 서부극의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잘못 본 게 아니라 서부극에 매료된 감독이 철저하게 의도적으로 연출한 결과다.
아마 서부영화 역사상 가장 기념비적 작품으로 기억될, 존 포드 감독의 1956년 <수색자>가 <유레카>를 논할 때 첫 번째 호명될 작업이다. 씩씩하고 멋진 영웅이 무법자를 무찌르는 히어로 설정과 동떨어진, 몇 년 전 실종된 가족을 찾고자 위험천만한 황무지로 들어선 중년 카우보이의 여정을 담은 정서가 본 작품에 배경과 설정만 바꿔 출렁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공유하는 셋의 행보는 같지 않다. 누군가는 어둠에 속박된 동안 일어난 일을 책임져야 한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저주를 끊기 위해선 반드시 경유해야 할 과정이다. 누군가는 어둠의 영역을 홀로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도 탈출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봤다. 누군가 자기 연민에만 집착한다는 걸 깨닫는다.
현실을 외면하며 괜찮은 척해봐도, 시간이 정지된 듯 그들만의 왕국 안에 스스로를 가둬봐도 악몽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구도 2년 전 그 공터에서 탈출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다시 거기로 돌아가 자신들을 옭아맨 공포와 억압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응시해야 한다. 단순히 바람 쐬는 여행이 아니라 절박한 탈주이자 제 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필사의 도전인 셈이다. 그들의 로드무비는 평화로운 여행이 아니라 고해를 동반한 순례길이다.
많은 시련과 상처를 추가하면서도 그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집'이란 과연 무엇일까? 주인공들이 놓치고 만, 혹은 경험할 기회조차 없었던 집이 희생 끝에 주어진다. 자신이 온전히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가족, 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와 돌봄, 늑대인간처럼 인간과 괴물의 경계를 넘나드는 타락에서 탈출하기... '집'의 의미는 제각각이지만, 각자 절박하게 바라던 것임은 분명하다. 그걸 파악하는 순간 '유레카'의 의미도 자연스레 정해질 테다.
21세기 영화는 점점 문학적 서사만으로 독해할 수 없는 경지로 도약한다. 2000년 탄생한 <유레카>는 그 진화의 첨단에 선 작업이다. 사반세기 지나 재회한 작품은 장대한 분량에 겁을 먹어도 (극중 인물들처럼) 두려움을 극복하고 대면하는 순간, '시네마'란 무엇인가 깨닫게 해준다. 즉, 미사여구로 포장해봐야 직접 목격하지 않는다면 림보에 머물 뿐.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모든 의문이 해결될 테니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운 작품과 만나기를 두려워 말자.
<작품정보>
유레카
Eureka
ユリイカ
2000 일본 드라마, 로드무비
2026.05.27. 개봉 217분 15세 관람가
감독/각본 아오야마 신지
출연 야쿠쇼 코지, 미야자키 아오이, 미야자키 마사루
수입/배급 스튜디오 라이트하우스
2000 53회 칸영화제 경쟁, 국제비평가연맹상 & 에큐메니컬상
▲<유레카> 포스터라이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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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