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엄마, 세상 떠난 아빠... 말 잃은 남매의 여행 첫 목적지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유레카>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적한 동네를 경유하던 마을버스가 무장 괴한에게 납치된다. 인질극을 벌이던 범인은 별다른 요구 조건도 없이 대치를 거듭하던 중 사살된다. 6명의 희생자를 낸 충격 사건에서 운전사 '마코토', '나오키'와 '코즈에' 남매만이 살아남았다. 목숨은 간신히 건졌지만, 생존자 세 사람의 삶은 순탄하지 못하다.

2년여 시간이 흘렀다. 마코토는 오랫동안 바깥을 떠돌며 방황하다 고향으로 돌아온다. 일용직으로 일하던 그는 버스 승객이던 남매가 사건 이후 학교도 그만두고 부모도 잃은 채 집에서 고립된 삶을 산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아이들의 집으로 가 함께 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평화는 쉽게 오지 않는다. 마코토는 새출발을 위해 여행을 제안한다.

유일하게 공감할 수 있는 이들

 <유레카> 스틸
<유레카> 스틸라이트하우스

마코토는 살아도 산 게 아니다. 자신이 몰던 버스에서 승객이 죽임을 당했고, 본인 역시 목숨이 촌각에 처했던 기억 때문에 악몽에 시달린다. 견디지 못해 홀연히 사라지고 한참이 지나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와 보니 아내는 떠났고 가장인 형은 그를 불편하게 여긴다. 물론 친구 시게오처럼 돕는 이도 있지만, 피해자를 연민하기보단 꺼림칙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태반이다.

나오키와 코즈에 남매 신세는 더 가련하다. 황색 언론은 생존자에게 가십거리 찾기에만 골몰하며 무리한 취재를 일삼는다. 스트레스에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빠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고아가 된 남매에겐 보상금을 노린 친척들 성화까지 닥친다. 남매는 학교도 가지 않고 외부인과 접촉을 차단한 채 야생의 아이들처럼 고립을 택한다. 주민들 모두 남매의 처지를 알아도 개입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마코토가 돌아온 직후 조용하던 동네에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는 버스 납치 사건 수사 담당이다. 그는 사건의 참상을 너무 잘 알기에 피해자가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한 채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납치범의 영향 아래 있다고 믿는다. 가족조차 자신을 경계하니 마코토는 설 자리가 없다. 어쩌면 자신과 같은 지옥을 맛본 아이들만이 구원일지 모른다.

시대의 기운을 고스란히 눌러 담은 카메라

 <유레카> 스틸
<유레카> 스틸라이트하우스

몇 년간 실어증을 겪으며 누구와도 접촉을 거부하던 남매는 마코토를 받아들인다. 보호자가 된 양 아이들과 생활하는 그 앞에 낯선 청년이 나타난다. 친척들이 보낸 사촌 '아키히코'다. 넷은 기묘한 동거를 이어가지만, 거듭된 살인사건 여파로 다시 곤경에 빠진다. 더는 이렇게 단테의 '신곡' 속 연옥 같은 지경에 계속 살 수 없다고 결단한 마코토는 낡은 버스를 구매한 후 캠핑카로 개조한다. 넷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이제 기묘한 '로드무비'가 시작된다. 하필 마코토가 정한 출발지는 그들의 운명이 엮이게 된 운명의 장소, 인질극이 벌어지던 공터 주차장이다. 여기를 극복하지 않으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결단인 것. 몇 년 만에 집을 떠나 바깥으로 나온 남매도, 마코토와 아키히코도 그런대로 여행의 흥취에 젖은 듯해 보인다. 하지만 치유하지 못한 상처를 간직한 이들의 여정이 순탄할 리 없다. 또 다른 고통이 밀려오지만, 이를 감당해야 다음의 삶이 시작된다.

2000년 공개된 영화는 '세기말' 일본이 처한 사회 분위기 및 음울한 정서와 떼어 놓고 볼 수 없다. 당시 일본은 1990년대 '버블' 붕괴로 장기 침체에 빠진 상태였고, 밀레니엄을 앞두고 각국이 겪던 혼란에 휩싸였던 상태다. 옴진리교 테러 같은 충격적인 사건은 사회를 뒤흔들었고, 번영을 구가하며 얻은 자신감은 휘발된 채 경제성장 뒤안길에 은폐된 상태이던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던 시절이다. 영화는 그 시절 어둠을 감추지 않는다.

물론 당대 사회 묘사만으로 <유레카>가 특별히 호명될 이유는 없다. 이 작품은 20세기 말 일본 사회의 정서를 집대성하면서도 억지 희망도, 무작정 추락하지 않는다. 대신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가 외쳤듯) '죽지는 말라'는 호소를 놓지 않으려 한다. 3시간 37분이라는 상영시간 내내 지독하게 현실에 바탕을 둔 채 간격을 유지하는 관찰 카메라가 주인공들을 응시한다. 여기엔 과잉된 신파도, 필요 이상의 건조함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서부극의 질감

 <유레카> 스틸
<유레카> 스틸라이트하우스

아오야마 신지 감독은 각자의 상처로 신음하는 인물들을 현미경으로 자연 풍경 관찰하듯 그려낸다. 연민도 동정도 섣부른 대상화도 허용하지 않는다. 관찰자의 감정 역시 적극적으로 반영할 생각이 없다. 멀찌감치 떨어져 마치 인간 세계에 별 관심이 없는 '신'적 존재가 무심히 들여다보듯 카메라는 원거리에서 개미처럼 작은 형상이라 관객이 화면에서 간신히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만 인물들의 동선과 궤적을 선보일 따름이다.

전형적인 흑백 화면과 다른 색감, '세피아 톤' 건조한 이미지는 쓸쓸함과 함께 건조한 기운이 가득 깃든 황량함으로 보는 이의 감성을 하강시킨다. 평범한 북규슈 시골 동네와 남매가 기거하는 단독주택, 캠핑카 여행 중 목격하는 경유지와 몇 군데 명소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정서다. 영화 내내 롱-테이크 기법을 구사한 외부 풍경은 공들인 미장센과 결합해 마치 그날 이후 세계에서 유배된 듯한 존재들의 내적 심경으로 변환한다.

영화는 기본 줄거리와 인물 설정만으론 파악할 수 없는 시각적 체험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화면 속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비극의 피해자들을 방치하지만, 실은 언제든 깨어질 위기에 놓인 위태롭고 얇은 껍데기로 둘러싸인 시공간이다. 사람들은 늘 불안하고 두렵다. 희생자를 돌보고 치유하기보다는, 자신들에게도 그런 재앙이 떨어지지 않기만 바랄 뿐, 혹은 금전 보상금이나 유산을 노리며 탐욕을 감추는 데 급급하다. 세상은 조용하지만 냉혹하다.

지역 사회에 다시금 불길한 기운을 퍼뜨리는 연쇄 살인은 선정적 묘사와는 거리가 멀지만, 단지 징후와 암시만으로 섬뜩한 기운을 화면 가득 퍼뜨린다. 사람들은 모두를 의심하며, 가련한 피해자에게 화살을 돌린다. 일종의 '낙인'이다. 끔찍한 일을 겪었으니 극복할 수 없다는 단정은 그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몰라라 한다. 이런 지경인데 뭘 위해 계속 살아야 할까? 혹은 타인을 해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실존주의 드라마

 <유레카> 스틸
<유레카> 스틸라이트하우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의 황량한 풍경을 고스란히 재현한 <유레카> 속 세계는 동정이라곤 찾기 힘들다. 우리가 아는 일본, 대부분이 조밀한 인구 밀집지대와 산간으로 이어진 풍경과 사뭇 다른 광활하고 낯선 이 영화 속 배경은 자연스레 '웨스턴', 즉 서부극의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잘못 본 게 아니라 서부극에 매료된 감독이 철저하게 의도적으로 연출한 결과다.

아마 서부영화 역사상 가장 기념비적 작품으로 기억될, 존 포드 감독의 1956년 <수색자>가 <유레카>를 논할 때 첫 번째 호명될 작업이다. 씩씩하고 멋진 영웅이 무법자를 무찌르는 히어로 설정과 동떨어진, 몇 년 전 실종된 가족을 찾고자 위험천만한 황무지로 들어선 중년 카우보이의 여정을 담은 정서가 본 작품에 배경과 설정만 바꿔 출렁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공유하는 셋의 행보는 같지 않다. 누군가는 어둠에 속박된 동안 일어난 일을 책임져야 한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저주를 끊기 위해선 반드시 경유해야 할 과정이다. 누군가는 어둠의 영역을 홀로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도 탈출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봤다. 누군가 자기 연민에만 집착한다는 걸 깨닫는다.

현실을 외면하며 괜찮은 척해봐도, 시간이 정지된 듯 그들만의 왕국 안에 스스로를 가둬봐도 악몽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구도 2년 전 그 공터에서 탈출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다시 거기로 돌아가 자신들을 옭아맨 공포와 억압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응시해야 한다. 단순히 바람 쐬는 여행이 아니라 절박한 탈주이자 제 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필사의 도전인 셈이다. 그들의 로드무비는 평화로운 여행이 아니라 고해를 동반한 순례길이다.

많은 시련과 상처를 추가하면서도 그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집'이란 과연 무엇일까? 주인공들이 놓치고 만, 혹은 경험할 기회조차 없었던 집이 희생 끝에 주어진다. 자신이 온전히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가족, 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와 돌봄, 늑대인간처럼 인간과 괴물의 경계를 넘나드는 타락에서 탈출하기... '집'의 의미는 제각각이지만, 각자 절박하게 바라던 것임은 분명하다. 그걸 파악하는 순간 '유레카'의 의미도 자연스레 정해질 테다.

21세기 영화는 점점 문학적 서사만으로 독해할 수 없는 경지로 도약한다. 2000년 탄생한 <유레카>는 그 진화의 첨단에 선 작업이다. 사반세기 지나 재회한 작품은 장대한 분량에 겁을 먹어도 (극중 인물들처럼) 두려움을 극복하고 대면하는 순간, '시네마'란 무엇인가 깨닫게 해준다. 즉, 미사여구로 포장해봐야 직접 목격하지 않는다면 림보에 머물 뿐.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모든 의문이 해결될 테니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운 작품과 만나기를 두려워 말자.

<작품정보>

유레카
Eureka
ユリイカ
2000 일본 드라마, 로드무비
2026.05.27. 개봉 217분 15세 관람가
감독/각본 아오야마 신지
출연 야쿠쇼 코지, 미야자키 아오이, 미야자키 마사루
수입/배급 스튜디오 라이트하우스

2000 53회 칸영화제 경쟁, 국제비평가연맹상 & 에큐메니컬상

 <유레카> 포스터
<유레카> 포스터라이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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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