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하이라이트
JTBC
황동만의 시나리오를 읽은 변은아는 말한다. 주인공에게 파워가 없다고. 쓴 사람 본인에게 그런 게 없으니까 그렇다고.
이기리(배명진)는 비웃는다. "못나면 인간적이야? 잘나면 인간적이지 않고? 황동만이 인간적이래? 나는 비인간적일래."
이들이 말하는 "파워"는 단순한 카리스마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밀리지 않고, 살아남고, 끝내 인정받는 힘이다. 반대로 "인간적"이라는 말은 자꾸 흔들리고 상처받고 실패하는 사람에게 붙는 패배의 언어처럼 취급된다.
이 장면은 묘하게 오래 남는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는 오래전부터 인간보다 쓸모를 먼저 평가해 왔기 때문이다. 얼마나 쓸모 있는가, 얼마나 인정받는가, 얼마나 끝까지 살아남는가. 사람들은 "좋은 사람"보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를 먼저 강요받는다.
문제는 그 기준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실패 자체보다, 끝내 뒤처진 채 남아 있는 존재를 더 불편해한다.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과 열등감, 어정쩡한 패배의 흔적을 오래 바라보는 일을 견디지 못한다. 누군가를 이해하기보다 "불쾌한 존재"로 낙인찍고 함께 비웃는 방식.
박경세가 말한 "국민을 열받게 하는 인간을 처리하는 사회"는 그래서 단순한 SF적 상상이라기보다, 이미 우리가 익숙하게 서로를 대하는 방식처럼 보인다.
그래서 황동만은 특히 더 불편한 존재다. 그는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실패한 채 끝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8인회 사람들은 한때 모두 황동만과 비슷했다. 똑같이 불안했고, 똑같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하나둘 데뷔하고 자리를 잡으면서 그들은 그 시간을 지나간 과거로 정리했다.
그런데 황동만은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그는 지워버린 과거가 계속 눈앞에 서 있는 것 같은 존재다. 그래서 그를 볼 때마다 불쾌해진다. 그 감정은 단순한 혐오라기보다, 오래 외면해 온 자기 자신의 흔적과 마주하는 불편함에 가깝다.
최동현(최원영)은 황동만에게 말한다. "남 잘 되는 거 배 아파하지 말고 이제 좀 건설적으로 생산적으로 살자, 응?" 그러자 황동만이 되묻는다. "내 인생이 왜 네 마음에 들어야 되는데요?"
이 짧은 문장은 이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반문처럼 들린다. 생산성과 결과로 인간의 가치를 서열화하는 사회 안에서, 아무 성과도 증명하지 못한 사람이 던지는 질문. 내 인생이 왜 누군가의 기준에 합격해야만 의미가 있는가.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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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워치 회사에서 황동만과 변은아는 마침내 서로의 언어를 발견한다. 감정 워치는 두 사람에게 공통된 감정 패턴이 있다고 말한다. 분노와 절망, 슬픔 속에 설명되지 않는 간절함이 섞인 상태. 그런데 변은아는 그 감정을 "자폭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표현하고, 황동만은 한참을 울다가 이렇게 말한다. "도와줘. 도와달라는 거예요."
같은 고통이었지만, 누군가는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싶은 감각으로 버텼고, 누군가는 평생 하지 못한 구조 요청으로 그 감정을 설명한다. 드라마는 그 순간 처음으로 "알 수 없음"이었던 감정에 언어가 생기는 장면을 보여준다.
"모든 스토리는 '나는 존재한다'는 아우성." 황진만(박해준)은 말했다. 그런데 황동만이 끝내 찾아낸 말은 거대한 아우성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구조 신호였다.
도와줘. 태어나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말. 드라마는 그 순간을 통해 묻는다.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랫동안 "도와줘"라는 말을 하지 못했을까.
한국 사회는 유난히 혼자 버티는 것을 미덕처럼 여긴다. 힘든 티를 내지 않는 사람, 민폐 끼치지 않는 사람, 스스로 해결하는 사람이 성숙한 인간처럼 취급된다. 도움을 요청하는 순간 약한 사람이 되고, 무너졌다고 말하는 순간 탈락한 사람처럼 취급되는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자기 고통을 숨기는 데 익숙해졌다.
그 결과는 점점 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관계는 끊어지고, 혼자 사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정작 누구에게도 자기 상태를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고독사, 관계 단절, 반복되는 자살 뉴스는 이제 낯선 사건이 아니다. 위험한 것은 단지 가난이나 실패만이 아니다. 아무에게도 "도와줘"라고 말하지 못한 채 오래 버티는 상태 자체다.
서로의 "알 수 없음"을 들어주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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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혔을 때 돌파하세요." 드라마 속 철도 건널목 차단봉에는 반복적으로 이런 문구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말하는 돌파는 성공이 아니다. 데뷔도, 인정도, 검색되는 이름도 아니다.
황동만의 돌파는 "나는 괴물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고, 변은아의 돌파는 "나는 버려진 존재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처음 들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돌파는 혼자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로의 고통 안에서 서로의 언어를 발견했다. "자폭"을 "도와줘"로 번역해 주는 사람.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들어주는 사람.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무가치함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가치함의 끝까지 함께 내려가 본 사람들이 서로에게 어떤 말을 건넬 수 있는지 보여주는 드라마다.
아우성이 되지 못한 존재들은 대개 시끄럽고, 이상하고, 껄쩍지근하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그들을 지운다. 그 순간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때, 어떤 존재는 겨우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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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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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줘"라는 말을 평생 해본 적 없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