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어린아이처럼 뛴 86세 거장

2026 제18회 서울 재즈 페스티벌... 존 바티스트, 허비 행콕, 자넬 모네 등 내한

하나만 잘해도 박수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를 넘어 수많은 종류의 재능을 아무렇지 않은 듯 뽐내는 이들이 있다. 올해 서울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도 그런 이름들이 가득 했다.

지난 5월 22일부터 24일에 걸쳐, 2026 제18회 서울 재즈 페스티벌(이하 서재페)이 올림픽공원 일대에서 열렸다.

자넬 모네, 스타일과 메시지를 모두 장악하다

 2026 제18회 서울 재즈 페스티벌의 첫째날(5월 22일) 무대에 오른 자넬 모네.
2026 제18회 서울 재즈 페스티벌의 첫째날(5월 22일) 무대에 오른 자넬 모네.프라이빗커브

22일의 헤드라이너(간판 공연자)는 자넬 모네였다.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 후보에 올랐던 팝스타이자, <나이브스 아웃 : 글래스 어니언즈>, <문라이트>, <히든 피겨스> 등 굵직한 영화에 여럿 출연한 할리우드 스타이기도 하다. 이번 서울 재즈 페스티벌을 통해 첫 내한을 펼쳤다.

자넬 모네는 첫 곡 '플롯(Float)'을 부르면서 위풍당당하게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자넬 모네는 절륜한 노래 솜씨로 관객의 귀를 압도했다. 무려 다섯 번이나 옷을 갈아 입으면서 환호성을 키웠다. '핑크(Pynk)'를 부를 때는 데이비드 보위를 연상케 하는 굴곡진 바지 역시 눈길을 끌었다. 자넬 모네는 무대를 다채로운 방식으로 활용했다 관중석 밑으로 내려가서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직접 관객 몇 명을 선정해 무대에서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자넬 모네는 데뷔 초 프린스(Prince)의 지지를 받았으며, 프린스가 추구하던 미니애폴리스 사운드를 가장 잘 계승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자넬 모네 역시 프린스의 영향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프린스의 명곡 '레츠 고 크레이지(Let's Go Crazy)'를 부르며 그 계보를 재차 확실히 한다. 전광판의 영상 역시 프린스를 상징하는 보라색으로 바뀌었다.

화려함은 물론, 메시지 또한 갖춘 공연이었다. 맹렬한 랩을 들려주는 '쟝고 제인(Django Jane)'에서는 페미니스트의 자아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공연 중 "나는 흑인 여성인 것이 자랑스럽다"며 모든 종류의 인종 차별에 맞서자는 메시지를 전했고, 'LGBTQ 커뮤니티를 직접적으로 거명하며 소수자에 대한 연대 역시 주문했다. 쟈넬 모네는 기존에 예정했던 90분을 훌쩍 넘겨 총 110분 동안 공연을 펼쳤다.

행복으로 무장한 마에스트로, 존 바티스트

 2026 제18회 서울 재즈 페스티벌의 둘째날(5월 23일) 무대에 오른 존 바티스트
2026 제18회 서울 재즈 페스티벌의 둘째날(5월 23일) 무대에 오른 존 바티스트본인 촬영

23일의 헤드라이너로 나선 미국 뉴올리언스 출신 음악가 존 바티스트의 기세 역시 못지 않았다. 존 바티스트는 2022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 수상자이자, 픽사 영화 <소울>의 음악 감독을 맡아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를 거머쥐었다. 또한 뉴진스, 방탄소년단 뷔와의 협업으로도 국내 팬들에게 익숙하다.

존 바티스트는 명문 줄리어드 음대에서 재즈학을 전공한 아티스트이지만, 결코 전통의 문법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그랜드 피아노부터 드럼, 기타, 샘플러 등 악기를 자유자재로 바꿔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냈다. 다룰 수 있는 악기만큼이나 들려주는 음악도 다채로웠다. 자신의 음악적 뿌리라 할 수 있는 재즈는 물론 컨트리, 레게, 힙합 등 온갖 장르를 유영했다.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명곡에 재즈와 블루스를 접목하기도 했다. 존 바티스트는 능수능란하게 9인조 밴드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이자, 춤을 추고 떼창을 지휘하는, 팝스타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존 바티스트는 마지막 노래 '프리덤(FREEDOM)'을 부르다가, 9명의 밴드 전원을 데리고 무대 밑으로 내려가 관객들을 만났다. '피리부는 사나이'를 연상시키는 그의 행진은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돗자리 존에 있던 관객들 역시 존 바티스트를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다. 재즈의 가장 큰 기치 중 하나인 '자유'의 현신과 같은 모습이었다.

존 바티스트는 공연 내내 웃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인종 차별이나 기후 위기처럼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노래하지만,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다. 자신의 음악을 '소셜 뮤직(사회적인 음악)'이라고 부르면서, 음악으로 모두가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견지한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동요 '텔레비전'을 멜로디카로 연주한 깜짝 팬서비스 역시 한국 관객과 그래미 수상자를 연결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얼굴"

 2026 제18회 서울 재즈 페스티벌의 셋째날(5월 24일) 무대에 오른 허비 행콕
2026 제18회 서울 재즈 페스티벌의 셋째날(5월 24일) 무대에 오른 허비 행콕프라이빗커브

어린 아이처럼 펄쩍 뛴 86세 거장, 허비 행콕

한편 24일 무대에는 86세의 재즈 거장 허비 행콕이 무대에 올라 자신의 70여년 음악 인생을 총정리한 명공연을 펼쳤다. 허비 행콕은 재즈와 전자 음악, 펑크를 결합하며 오늘날 대중음악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명곡 '워터멜론 맨(Watermelon Man'으로 공연의 문을 연 허비 행콕은 피아노와 신시사이저를 오가며, 젊은 연주자들과 90분 동안 상호작용을 거듭했다. 변칙적인 리듬, 섬세한 음의 나열에 관객들도 긴장감을 놓칠 수 없었다.

모두가 기대했던, 밴드 헤드 헌터즈(Head Hunters)와 함께 만든 불후의 재즈 명곡 '카멜레온(Chameleon)'이 대미를 장식했다. 백전 노장이 들려주는 키타(기타처럼 어깨에 멜 수 있는 형태의 신시사이저) 연주에 젊은 관객들은 뜨겁게 환호했다. 허비 행콕 역시 이 환호에 어린 아이처럼 뛰면서 즐거워했다. "86세라는 나이를 생각하면 이번 내한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음악 팬들의 예상이 많았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외에도 3일 동안 거장 아투로 산도발, 트롬본 쇼티, 코리 헨리 & 더 펑크 어파슬스, 메데스키 마틴 앤 우즈 등 쟁쟁한 재즈 뮤지션들이 서재페 무대에 올랐다.

물론 지난 수년간 서재페가 거둬온 흥행에는 비재즈/대중음악 뮤지션들의 역할도 크다. 아이슬란드의 포크 록 밴드 오브 몬스터즈 엔 멘, 뉴질랜드의 밴드 레져, 알앤비 보컬리스트 제네비브 등은 이번 서재페를 통해 첫 내한 공연을 펼쳤다. 새로운 전성기를 맞은 힙합 그룹 에픽하이는 케이스포돔(올림픽 체조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실리카겔, 혁오, 한로로 등 오늘날을 대표하는 밴드 뮤지션은 물론, 세븐틴 도겸 승관, NCT 해찬 태용 등 케이팝 뮤지션의 존재는 오늘날 페스티벌의 트렌드 역시 잘 보여주었다. 음악의 역사를 만들어 온 전설, 그리고 음악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새 전설들이 한곳에 모인, 꿈같은 5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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