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다는 이유로 핍박받은 조선시대 궁녀, 실제는 이랬다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SBS <멋진 신세계>

SBS 사극 <멋진 신세계>에 등장하는 조선시대 후궁 강단심(임지연 분)은 궁에서 사약을 받고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순간에 대한민국의 동일 장소로 타임슬립한다. 그런 뒤 재벌 자제인 차세계(허남준 분)를 도로상에서 우연히 만나 인연을 쌓아간다.

이 드라마는 강희빈(희빈 강씨)으로 불리는 강단심이 어린 궁녀 시절부터 핍박을 받았다고 서술한다. 지난 9일 제2회에서 어린 강단심은 선배 궁녀들로부터 "천것 주제에 비자나 할 것이지"라며 공격을 받는다. 궁녀들은 그를 왕따시키며 쌀통인 뒤주에 가둬 놓는다.

 본문에 인용된 드라마 장면
본문에 인용된 드라마 장면SBS

비자(婢子)는 일종의 비정규직 궁녀였다. 검정 제복을 착용한 비자는 궁 안팎의 서신 전달을 담당했다. 그래서 글월비자로도 불렸다. 일종의 궁중 집배원이었던 셈이다.

비자의 모습은 혜경궁 홍씨의 어린 시절 추억에도 각인됐다. 영조 임금 때인 1743년에 사도세자의 배우자 선발을 위한 재간택(제2차 심사)이 열렸다. 여기에 응시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소녀 홍씨 앞에 비자가 등장했다.

최종 단계인 삼간택을 앞둔 이 시점에 홍씨는 세자빈으로 사실상 내정돼 있었다. 이 때문에 긴장되고 떨렸던 그의 앞에 비자가 불현듯 나타났다. 홍씨를 따라 그 집에 가서 서신을 전달할 목적이었다. 훗날 홍씨는 회고록인 <한중록>에서 "길에서 글월비자가 검은 옷차림으로 서 있으니 또한 비할 데 없이 놀랐다"라며 이때 일을 떠올렸다. 낯선 궁궐 사람들이 자기를 둘러싸니 긴장감이 배가됐던 것이다.

<멋진 신세계>의 궁녀들은 '강단심은 천민이므로 비자 일이나 해야 한다'고 조롱했다. 이 궁녀들은 강단심을 궁녀로 만든 김 상궁을 거명하면서 "김 상궁 마마님 뇌물 받은 거 아니야?"라고 말한다. 부정행위가 없었다면 천민이 어떻게 궁녀가 됐겠느냐는 생각에서 한 말일 터.

'공노비냐 아니냐'의 문제

하지만, 이런 대화는 역사적 현실에 비추어봤을때는 비현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시의 법률을 살펴보자.

조선시대의 법적 신분은 양인(良人)과 노비뿐이었다. 노비는 법적 의미의 천민이었다. 국가에 속한 공노비(관노비)와 개인에게 속한 사노비가 천민이었다. 궁녀의 자격과 관련해 논의되는 '천민이냐 아니냐'라는 문제는 '공노비냐 아니냐'의 문제였던 것이다.

노비가 아닌데도 남들이 기피하는 직업을 가졌다 하여 천민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었다. 승려·수군·뱃사공 등이 이에 해당했다. 이들을 지칭하는 역사용어가 '신분은 양인인데 직역은 천민'이라는 의미의 신량역천(身良役賤)이다. 이런 신량역천들은 신분상의 양인이기 때문에 법적인 천민은 아니었다.

위 드라마 장면은 강단심을 뺀 나머지 궁녀들은 천민이 아닌 양인이었음을 전제로 한다. 양인들이 궁녀의 주류를 형성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전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역사학자 김용숙은 1964년 논문인 '이조 후기 나인생활 연구'에서 궁녀의 출신 성분과 관련해 "양반과 평민의 중간 위치로 중인계급에서 뽑는다"고 기술했다. 궁녀들은 천민과 거리가 멀다는 인식을 담은 언급이었다.

그런데 김용숙은 1987년에 발표한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라는 저서에서 23년 전 견해를 정반대로 뒤집었다. 이 책에서 그는 "궁녀는 원래 비종(婢種)에서 뽑는 것이었지만, 왕왕 그것이 지켜지지 않은 예도 있었던 것 같다"고 기술했다. 궁녀는 여성 노비의 부류 중에서 선발하는 게 원칙이었다는 쪽으로 견해를 수정했던 것이다.

<경국대전>의 후속 법전들도 이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1746년의 <속대전>과 1865년의 <대전회통>은 궁녀 선발에 관한 기존 관행을 다음과 같이 성문 규정으로 명문화했다.

"궁녀는 오로지 각 관청의 하전(下典)에서만 선발한다."

하전은 관청에 배속된 공노비를 지칭했다. 위 규정은 '궁녀는 공노비 중에서만 선발한다'는 대원칙을 천명한 뒤, 주석 파트에서 '양인이나 사노비를 궁녀로 만들면 곤장 60대와 도형(징역) 1년형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곤장 60대를 제대로 맞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사실상 힘들었다. 이 정도 각오를 해야만 양인이나 사노비를 궁녀로 만들 수 있었다.

궁녀는 공노비 중에서만 뽑혔다. 천민이 궁녀가 되는 것이 조선시대 상식이었다. 물론 궁녀를 공노비 중에서만 선발한다는 원칙이 항상 철저히 지켜진 것은 아니다. 조선 건국 직후나 조선 멸망 직전에는 국가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두 시기에는 양인이 궁녀가 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정치적 목적으로 자기 쪽 여성을 궁녀로 들이거나 양인 여성이 생계 문제를 해결하고자 궁에 들어가는 일이 국초와 국말에는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런 여성들은 천민 출신인 척 해야 했다.

오늘날의 법률은 국민 대표자들이 만들지만, 왕조시대의 법률은 군주가 만들었다. 그래서 그 시대 법률은 백성들에 대한 군주의 경고나 약속이라는 의미를 띠었다. 궁녀를 공노비 중에서 선출한다는 법전 규정은 경고보다는 약속에 더 가까웠다. 이는 일반 양인이나 사노비 중에서는 궁녀를 뽑지 않겠다는 선언의 의미였다.

군인 및 내시와 더불어 궁녀는 군주의 수족처럼 활용됐다. 그래서 왕권강화를 견제하는 사대부나 귀족들은 군주가 궁녀·군인·내시를 증원하는 것을 견제했다. 이런 인력이 많아지면 왕권도 강해지고 정부의 비용 집행과 조세 징수도 늘어났다. 이 때문에 왕실은 궁녀를 늘리려 하고 사대부들은 '아니 되옵니다'라며 반대하는 상황이 오백년 내내 이어졌다.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한글 창제 때문에 세종대왕을 존경하지만, 한문을 애용한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다른 이유로 그를 존경했다. 음력으로 효종 4년 7월 2일자(양력 1653.8.24.) <효종실록>에 따르면, 정1품 관료인 이경여는 궁녀를 100명 이상 충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0년 전의 세종을 칭송했다. 그 정도로 비용 절감과 왕권 자제에 신경을 썼다는 이유로 세종을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이렇게 사대부들이 궁녀 충원을 견제했고 이것이 정치적 갈등의 원인이 됐기 때문에, 왕실 입장에서는 '궁녀는 공노비 중에서만 뽑겠다'는 약속을 법전에 명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시 드라마로 돌아오자. 앞서 언급한 사료 및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동료 궁녀들이 강단심의 천민 신분을 들먹이며 핍박하는 <멋진 신세계>의 장면은 역사적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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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