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관람한 뮤지컬 <렘피카>는 '타마라 드 렘피카'가 자신의 이름을 선언하며 시작했다. 화가로서 남편의 성인 '렘피카'로 서명했던 렘피카의 이름을 현대의 무대는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노년의 렘피카는 테데우스와의 결혼식 전으로 돌아가 예정된 행복을 노래한다. 그러나 혁명의 격동 속에 그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귀족인 남편 테데우스가 혁명군에 의해 잡혀가자 타마라는 모든 것을 내걸고 그를 구출한다. 이후 렘피카 부부는 파리로 떠나게 된다. <렘피카>의 이야기는 이 지점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번 <렘피카> 공연은 아시아 초연으로, 개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김선영, 박혜나, 정선아가 타마라 역할로 출연하고 차지연, 린아, 손승연이 그 상대역이 되어 호흡을 맞춘다. 넘버도 굉장히 독특하게 구성됐다. 팝과 록, 알앤비 등의 요소가 넘버에 결합돼 전통 뮤지컬 넘버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낯설 수는 있지만 인물의 상황과 감정은 더욱 생생하게, 혁명과 전쟁 등 당시 상황은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뮤지컬 <렘피카> 프로필 사진뮤지컬 <렘피카>에 참여하는 타마라 드 렘피카 역의 김선영, 박혜나, 정선아 배우와 라파엘라 역할의 차지연, 린아, 손승연 배우의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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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라는 청록, 라파엘라는 분홍…색에 얽힌 인물들
뮤지컬을 보다 보면 색상에 주목하게 된다. 의상과 무대의 색은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결혼식 장면에서는 앙상블이 검은색과 노란색이 섞인 하인복을 맞춰 입으며 타마라의 부유함을 표현하는데, 뒤이어 진행되는 장면에서는 회색 빛깔의 어두운 군복을 갖춰 입고 암담한 상황을 나타낸다.
<렘피카>에서 색은 중요한 요소다. 색은 관객에게 가장 먼저 시각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의상뿐 아니라 곡선과 직선이 강조된 무대와 중간중간 타마라의 그림이 걸리는 마름모꼴 액자는 무대를 한층 다채롭게 꾸민다. 에펠탑 모형의 조형물도 관객을 순식간에 파리로 끌어당긴다.
포스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청록색이 타마라를 대표한다. 러시아 혁명 이후 사라졌던 청록색은 라파엘라와 시간을 보낸 후 가운을 걸치면서 재등장한다. 이후 수지의 클럽에서 비밀스레 밀회를 나눌 때 안감에서 드러나다가 화가 생활의 정점이라고 불리는 만국박람회에서 다시 등장한다.
타마라뿐 아니라 라파엘라 역시 분홍색 의상을 주로 입는다. 라파엘라 이전에 타마라의 모델이었던 키제트도 마찬가지다. 수지의 살롱에서 앙상블은 블랙에 가까운 의상으로 자신들을 감춘다. 이런 색들의 향연은 실제 타마라 드 렘피카의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인물의 특성과 상황을 강조함과 동시에 선명한 경계를 보여준다.
▲뮤지컬 <렘피카> 포토존서울 강남구 코엑스 아티움 로비에 위치한 렘피카 콘셉트로 꾸며진 포토존.한별
"바꿀 수 있는 건 네모난 캔버스"
타마라가 주목한 것은 파리의 신여성들이다. <렘피카>는 이런 타마라의 의지를 강조한다. 기존 여성 예술가들을 그린 여성극들과 다른 점은 단순히 화가의 삶을 보여준다기보다 그가 화가로서 원했던, 지키고자 했던 대상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라파엘라, 본인의 클럽을 차리고 박해받던 이들을 위한 은신처를 제공한 수지, 유대인인 남편을 기꺼이 사랑하는 남작부인 등 격동의 시기를 버텨낸 여성들을 그리는 타마라를 통해, <렘피카>는 그 시대의 여자들에 대해 말한다.
동시에 <렘피카>는 타마라를 넘볼 수 없는 완전한 사람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는 때론 부족하고 여느 사람들처럼 이기적이다. 그의 욕심으로 인해 사랑했던 라파엘라와 헤어지게 되거나 남편과 갈등을 겪기도 한다. 그는 그런 가운데서 그림이라는 도구로 자신의 가치를 지킨다. <렘피카> 타마라와 라파엘라의 관계를 보여주며 그들을 대조시키며 다양성을 강조한다. 다양한 여성 인물들을 통해 타마라가 지키고자 한 것을 알려준다.
타마라는 그림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을 얻었을 때 본인을 인정하게 됐다. 자신의 이름을 선언하며 시작한 뮤지컬은 자신을 인정하며 끝을 낸다. 자신의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해내는 것, 그것이 <렘피카>가 말하는 타마라의 의지다.
타마라는 라파엘라를 그린 그림으로 그에게 영원을 선사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은 타마라의 그림을 통해 라파엘라의, 여성의 아름다움을 마주할 것이다. 그런 타마라를 계승한 후대의 예술가들은 이처럼 무대와 노래, 연기를 통해 <렘피카>를 완성했다. <램피카>는 오는 6월 21일까지 코엑스아티움 우리은행홀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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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로 도망친 화가는 왜 이 여성들에게 빠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