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는 몇 주 동안 아이를 설득했다. 하지만 결국 아이의 마음을 움직인 건 내 설명이 아니라 외계인의 얼굴 하나였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외계인이 나오는 영화라고 했을 때, 아이의 반응은 단호했다.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몇 달에 걸쳐 원작 소설을 읽는 동안, 아이는 매일 어디까지 읽었는지 물어봤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냐고, 주인공은 어떻게 됐냐고, 제법 진지하게 궁금해 했다. 그런데 막상 영화가 개봉한다고 하니 안 본다고 했다. 소설 이야기는 그렇게 열심히 들어 놓고서.
나는 아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인지 신나게 늘어놓았다. 우주를 혼자 떠돌던 과학자가 외계 생명체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라고, 그게 전혀 무섭지 않고 오히려 따뜻한 이야기라고. 아이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외계인이라는 단어 앞에서 아이의 마음은 이미 굳어 있었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장
소니픽처스코리아
그러다 예고편이 공개됐다.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줬다. 화면 속에 처음 등장한 외계인 로키를 보더니, 아이가 말했다. 귀엽다고. 그 짧은 한마디에 몇 주간의 설득이 다 들어 있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아이가 상상했던 외계인은 아마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무섭고 낯선 것. 자신이 알고 있는 경험의 바깥에 있는 것. 누군가 외계인이라고 말하면, 아직 영상으로 보지 않은 아이는 아이만의 방식으로 그 존재를 그려낸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건 무언가 두려운 형태일 것이다.
그런데 로키는 작고 귀여웠다. 상상과 달랐다. 그래서 아이의 마음이 살짝 열렸다. 근데 내 마음 속엔 여전히 한 가지 걱정이 남아 있었다. 러닝 타임이 2시간 30분이 넘었다. 아이와 그렇게 긴 영화를 함께 극장에서 본 적이 없었다. 아이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오래 앉아 있어야 한다고. 아이는 괜찮다고만 했다. 그 짧은 대답이 오히려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괜찮다고 해 놓고 중간에 지루해 하면,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면, 나가고 싶다고 하면. 그런 일이 있으면 영화를 제대로 보기 힘들어진다.
극장 안에 들어가기 전에도 몇 가지를 당부했다. 옆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하지 말고 속삭여야 한다고, 화장실은 언제든 가도 된다고. 이런저런 가이드를 늘어놓는 나를 아이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그렇다. 긴장과 설렘이 함께 온다.
대부분의 영화는 혼자 봐왔다. 혼자 보면 온전히 이야기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와 볼 때는 다르다. 영화를 보면서도 자꾸 옆을 보게 된다. 아이가 이 장면을 이해했을지, 이 감정을 따라가고 있을지. 가끔은 짧게 속삭이며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나는 영화와 아이 사이 어딘가 앉아 있게 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E.T.>를 처음 봤을 때를 생각했다. 외계인이라는 존재가 두렵지 않고, 오히려 그리운 것이 될 수 있다는 걸 그 영화가 보여줬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도 비슷한 영화였다. 낯선 존재와 언어도 없이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 그 이해가 어쩌면 지구에서도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영화가 아이에게도 그런 감각을 남겨주길 바랐다.
▲영화 <이티> 장면유니버설 픽쳐스
영화가 시작됐고, 2시간 반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영화 상영 중간,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손을 모으고 집중하며 보는 아이의 얼굴을 봤다. 아이는 그만큼 영화에 몰입해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화장실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팝콘도 어느 순간부터 손에 들지 않았다. 스크린만 바라보고 있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조용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극장을 나오면서 아이가 물었다.
"속편은 언제 나와?"
그레이스 박사가 지구로 돌아갔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로키는 어떻게 됐는지도. 사실 속편은 없다. 원작 소설도 그 이후를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가 그런 질문을 한다는 건,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세계 안에 여전히 머물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속편 걱정보다 그 사실이 더 좋았다.
아이를 설득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관심 없다고 하던 얼굴. 외계인이 무서울 거라고 생각하던 아이. 그리고 로키를 처음 보고 귀엽다고 했던 그 순간. 2시간 반 내내 자리를 지킨 아이의 작은 어깨. 영화가 끝나도 일어나지 못하던 눈빛. 그리고 속편을 묻던 목소리. 그 모든 게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에겐 그 전부가 하나의 여행이었다. 아이에게는 그냥 한 편의 영화였겠지만. 아이를 재운 밤, 노트북을 열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로키를 검색했다. 여러 피규어들이 나왔다. 그 중 하나를 골라 주문을 눌렀다. 배송은 며칠 뒤였다. 택배가 도착하는 날, 아이가 포장을 뜯는 순간을 상상했다. 아마 소리를 지를 것이다. 아마 곧장 책상 위 어딘가에 올려놓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 피규어를 볼 때마다 이 영화를 떠올릴 것이다.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아빠 미소를 지으며, 노트북을 덮었다. 원작 소설 읽는 내내 궁금해 하다가 막상 영화는 안 본다던 아이. 그리고 로키를 처음 보고 귀엽다고 했던 그 한마디. 어른은 이야기로 설득하려 하고, 아이는 눈으로 마음을 바꾼다. 나는 몇 주를 설득했고, 로키는 한 번의 등장으로 아이를 설득해냈다. 그게 좀 억울하면서도, 사실 제일 맞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아이는 로키를 오래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기억할 것이다. 외계인이 무섭다던 아이가, 처음으로 외계인을 보고 귀엽다고 웃던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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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영화와 시리즈 속 감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단순한 이야기보다, 우리의 삶과 감정을 비추는 거울처럼 바라봅니다.
브런치에 영화 감성 리뷰와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으며,
영화 속 감정을 담은 첫 에세이집 《그럴 때, 나는 그를 떠올렸다》를 출간했습니다.
레빗구미라는 이름으로,
영화가 남긴 감정과 삶의 이야기를 오래 기록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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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도 멈칫, 아이가 2시간 30분 집중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