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뉴욕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특별 세션이 있었다. 텔레비전의 본격적인 등장과 함께 자본을 동원한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대중문화를 휩쓸던 시절, 그러한 흐름에 저항하며 대안적 움직임을 만들어낸 예술가들도 엄연히 존재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 잭 스미스, 캐롤리 슈니먼이 소개된 바 있다.
이 영화제가 '우리는 늘 선을 넘지'라는 슬로건을 통해 선을 넘고 경계를 무시하며 영화라는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것을 핵심적인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전주에서 대안적, 저항적 움직임을 포착하려는 시도는 매우 중요한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처음 상영되는지라, 영화제의 역할을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문성경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전주리뷰>에서 "단순히 훌륭한 복원 영화가 아니라 당대 변혁을 불러일으킨 영화를 큐레이팅했다"고 말하며 판 자체를 깨부수는 생각의 변화를 담아내고자 했음을 특별전 기획의도에서 밝혔다. 이 글에서는 세 명 중 캐롤리 슈니먼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생동하고 뒤엉키는 신체들
▲'뉴욕 언더그라운드 - 더 매버릭스 캐롤리 슈니먼' 연작 '미트 조이' 중.
전주국제영화제
<뉴욕 언더그라운드 - 더 매버릭스 캐롤리 슈니먼>은 미국을 대표하는 비주얼 아티스트 캐롤리 슈니먼(Carolee Schneemann, 1939~2019)의 단편 작품 6개를 묶은 상영작이다. 이 작품들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시청각적으로 상당히 보기가 어려운 영상들의 모음 한복판에서, 가장 시각적이고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키워드는 '몸'이 아닐 수 없다.
이 연작에서는 '몸'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7분짜리 단편 '베트남-부스러기(Viet-Flakes, 1965)'는 청각적으로 유쾌하지 않은 사운드가 분절적으로 계속 등장하다가 끊기고를 반복된다. 슈니먼이 직접 잡지와 신문에서 수집한 베트남전의 다양한 이미지들을 몽타주의 형식으로 겹쳐놓으면서, 베트남(전)의 이미지와 사운드 '부스러기'가 화면에 난무한다. 2년 뒤에 제작된 '스노우(Snow, 1967)'는 베트남-부스러기의 장면들이 화면에 인용됨과 동시에 퍼포먼스가 중첩된다.
'미트 조이(Meat Joy, 1964)'나 '보디 콜라주(Body Collage, 1967)'는 몸 그 자체인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에서 슈니먼 역시 몸을 매개로 삼는 퍼포머의 일원이 된다. '미트 조이'는 엉키고 얽히는 몸들의 생동감을 보여주면서 그 순간만큼은 생선과 닭과 별반 다르지 않는 '고기(Meat)'로서의 인간 신체를 전면에 내세운다. '보디 콜라주'는 슈니먼 혼자서 몸에 종이를 덮고 종이를 찢어대는 움직임 그 자체의 운동성을 담아내고 있다.
한편 '퓨즈(Fuses, 1967)'는 성행위가 직접 등장한다. 심지어 슈니먼 본인이다. 이것 역시 자신의 몸을 퍼포먼스의 일부로 등장시키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슈니먼의 작업세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플럼 라인(plumb line, 1971)'은 관계의 끝맺음이 불러오는 슬픔과 분노를 베트남전에 대한 분노를 교차하여 보여준다.
▲'뉴욕 언더그라운드 - 더 매버릭스 캐롤리 슈니먼' 연작 '베트남-부스러기' 중.
전주국제영화제
사람의 존재를 거칠게 두 상태로 나눈다면 '살아있음'과 '죽음'일 것이다. 사람을 살아있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욕망이며, 욕망이 가장 원초적으로 드러나는 장치는 몸이다. 반대로 죽음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현대 사회의 요소는 전쟁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부유하면서 생동하는 신체들이 마구 뒤엉키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낸 슈니먼의 시도는, '삶' 그 자체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뒤엉키는 몸들이 만들어내는 원초적 자유로움에 주목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움직임 그 자체이기도 하면서 섹슈얼함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미지 부스러기와 퍼포먼스의 향연을 통해 '몸'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 몸은 전쟁 한복판에서 신음하는 민중의 얼굴일 수도 있고, 총을 든 군인의 모습일 수도 있으며, 생선과 닭을 온 몸에 부벼대는 퍼포먼스를 하는 중인 한 무리의 남녀일 수도 있다. 심지어 실제로 섹스를 하는 중인 남녀의 몸일 수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몸'은 죽음과 대비되는, 죽음 앞에서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건 침대 위에서 욕망으로 뒤엉켜 있건 '생동하는 신체'로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러운 전쟁 한복판의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
▲뉴욕 언더그라운드 - 더 매버릭스 캐롤리 슈니먼' 연작 '퓨즈' 중전주국제영화제
슈니먼이 해당 연작들을 작업했던 1960년대 중반의 미국 사회는 1955년 발발한 베트남 전쟁이 10년 차에 돌입했던 시기였다. 이른바 '더러운 전쟁(The Dirty War)'이라고 불릴 만큼 명분도 부족한데 장기화되기만 하고, 민간인 학살과 고엽제 사용 등 비인도적인 살상이 거듭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각종 반전 운동과 인권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로 기록되고 있다.
슈니먼의 예술은 이러한 더러운 전쟁 한복판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이미지에 영향을 받았다. 특히 한 인터뷰에서 슈니먼은 "충격적이고 끔찍한 정보를 담은 이미지들 때문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면서 "이미지의 이면에 숨겨진 정치에 개입하는 행위"가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다. 앞서 살펴본 슈니먼 연작들에서 드러나듯, 그는 "실재하는 몸(actual body)"이 작품의 "필수적인 재료(integral material)"로 기능하길 원했다. 그렇게 전쟁이 미국 사회를 뒤흔들어 놓고 있을 때, 전쟁의 이미지 중 가장 직관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몸'을 전면에 내세워 전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을 수행한 것이다.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음악과 이미지들이 휘날리고 있다. "재미로 볼 수는 없는"(김효정 프로그래머) 이 부스러기들을 직면하는 것은 "고통의 이미지에 직접적으로 연루"시키는 일이다. 언제든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세계에 발을 딛고 있는 우리에게 슈니먼의 작업이 60년이 지나 지금 와 닿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종말을 앞두고 있을지 모를 상황에서, 우리는 단순히 관람자이자 구경꾼으로만 남을 수 있는가. 한국 관객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그의 작품이 2026년 전주에서 상영된다는 것만큼 의미심장한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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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닭과 뒤엉킨 인간, 전주영화제가 공개한 특별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