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활동만 했을 뿐인데... 사교육 없이 전국 수석 차지한 3인방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교생실습>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교생실습을 모교 세영여고로 나가게 된 '은경'은 학창 시절 추억 깃든 교정을 보며 감회에 젖는다. 여기에서 선생님으로서 첫발을 내디딜 기대에 잔뜩 부푼다. 고교 은사의 학급에 배정되니 더욱 뿌듯하기만 하다. 하지만 학교는 옛날과는 뭔가 좀 분위기가 다르다. 교장 선생님은 있는 듯 없는 듯 제발 문제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실습 치르고 가라 하고, 학생들은 인터넷 강의와 학원 수업에 골몰할 뿐, 교권은 안중에도 없다. 은경의 포부가 무색할 지경이다.

그래도 기죽지 않는 꿋꿋한 은경 앞에 수상한 무리가 출현한다. 각각 언어-수리-외국어 영역에서 모의고사 전국 1위를 놓치지 않는 학교의 자랑이다. 그런데 모범생이라기엔 분위기가 기묘하다. 그들은 흑마술 동아리 '쿠로이소라(검은 하늘)'의 '아오이', '리코', '하루카'다. 21세기에 흑마술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동아리의 비밀을 캐던 은경은 어쩌다 보니 3인방과 함께 방과 후 '죽음의 모의고사'에 참전하게 된다.

외길 걷는 감독의 신작

 <교생실습> 스틸
<교생실습> 스틸㈜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코로나 팬데믹이 기승을 부리던 때, 영화 제작이 멈춰 곤란에 처한 창작자들을 돕기 위한 영화진흥위원회의 단편 제작 지원사업이 2020 ~ 2021년 2년간 열렸다. 매년 300편의 다양한 단편영화가 제작되었다. 대부분 단발성으로 묻혔지만, 몇 편은 이후 주목받을 신작으로 확장되거나 다음 작업의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그중 <빨간마스크 KF94>는 대중적 감각과 함께 공포영화에 한정되지 않는 재기 발랄함으로 화제가 된다.

일본 도시 전설 속 귀신 '빨간마스크'가 한국에서 맞이한 대역병이란 풍자적 설정의 작품은 이후 국내 장르 영화의 본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단편상을 수상하며 여러 영화제에서 인기를 얻는다. 영화를 연출한 김민하 감독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코미디와 공포 요소의 절묘한 균형감이 돋보인 새로운 장르 영화 창작자로 기대를 얻는다. 세태를 풍자하면서도 사회비판의 과도함을 절제하고, 공포물의 불편한 자극적 요소를 억제하는 건 쉽지 않은 면모다.

단편의 가능성은 감독에게 장편 연출 기회를 제공한다. 2024년 선보인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은 대개 시각적 선정성과 자극 효과를 위한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게 고작이던 젊은 여성 캐릭터를 주역으로 내세우고, 한국 사회 교육 현실을 적절히 배경으로 구사한 준수한 저예산 장르 영화로 완성된다. 단골이 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감독상 & 장편상 2관왕에 오르며 개봉한다.

감독의 한 우물 파기는 계속된다. 차기작에서도 고등학교와 입시 문제를 주된 화두로 삼고, 전작과 일관된 '톤 & 매너'를 계승해 설정이나 인물이 연결되지 않음에도 마치 시리즈 형태로 다가온 2025년 신작 <교생실습>은 또다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작품상과 배우상에 오르며 김민하 감독을 단번에 장르영화 기대주로 등극시킨다. 자의식 강한 신진 작가라면 오히려 꺼릴 'B급 장르' 영화에 애착과 자부심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다.

절묘한 균형감

 <교생실습> 스틸
<교생실습> 스틸㈜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신작 <교생실습>은 전작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과 자매처럼 닮았다. 심지어 영문 제목은 속편의 형태로 표기될 정도다. 하지만 전작을 안 봤다고 해서 관람에 아무 진입장벽은 없다. 다만 감독의 스타일이 계승 및 심화하는 과정으로 참고하면 되는 셈. 전작에서 대학 입시를 통과한 학생이 시간이 흘러 교사로 학교에 돌아오는 서사라 보면 될 듯하다. 영화 외부적으로 보자면, 그 몇 년 동안 학교 현장이 더 나빠졌다는 게 진정한 '호러'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기묘한 기분이 든다. 이건 세상 풍파에 시달린 관객이 1시간 반 동안 고민 좀 잊고 즐길 수 있는 대중 오락물이 확실한데, 이를 위한 기반과 토대는 죄다 지독하게 현실의 조각들로 구축되기 때문이다. 너무나 익숙하고 사회적으로 당연시되는 풍경, 한국 사회를 사는 이들이라면 청춘의 '모든 길은 입시로 통한다!'가 실시간 중계되는 기분이다. 모두가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면서도 이대로는 안 되는 데 하고 염려하는 바로 그 교육 문제다.

한데 <교생실습>은 지옥처럼 묘사되는 입시 위주 교육 파행을 우회하지 않으면서도 묘한 유머 감각으로 중화하는 요령이 탁월하다. 대부분 독립영화가 학교 붕괴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극단적으로 끌고 갈 때, 이 영화는 그래도 힘내서 살아보자, 좋은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을 거두지 않는다. 현실 모순이 금방 해결될 순 없으니 좌절과 체념만 할 순 없지 않냐는 태도다.

이런 접근법은 한국 독립영화에선 외려 낯설어 보이지만, 대중영화 법칙에는 철저히 부합한다. 사회의 소외된 이면, 어두운 현실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성찰하는 건 당연히 필요하지만, 과하면 속이 더부룩한 법. 가끔은 그저 속 편하게 영화를 즐기고픈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면서도 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실을 적시하며 상상력을 일깨워줄 수 있다면 족하다. 사회문제 고발까진 닿지 않더라도 고유의 몫과 영역이 존재한단 얘기.

퓨전 믹스

 <교생실습> 스틸
<교생실습> 스틸㈜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다시 영화의 줄거리로 돌아가자. 교생이 된 은경은 꽤 말괄량이 학창 시절을 보낸 듯하다. 여고 시절 담임 교사는 '모범생'과 거리가 멀었지만, 열심히 노력해 괄목상대한 제자로 흐뭇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과 다르다며 열혈 제자에게 안쓰러운 조언을 건넨다. 이미 매년 27조 사교육 시장이 공교육을 점령한 지 오래다. '군사부일체'란 고사성어는 땅에 떨어졌고, 학교의 역할은 'in-서울' 대학 진학 비율로만 평가된다. 교사는 설 자리를 잃었다.

뜬금없는 흑마술 동아리가 교내에 버젓이 활동하며 특혜를 누려도 교장을 비롯한 학내 모두가 아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전국 수석을 차지하는 3인방에 대리만족한다. 이들을 건드리는 건 신성불가침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누구나 쉬쉬하는 비밀이 존재한다. 학교의 역사를 지배하는 어둠의 징후다. 노력해서 얻은 성적이 아니라 영혼을 교환한 대가로 얻는 성적에도 누구 하나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대체 이 요지경은 어떻게 형성된 걸까? 제작진은 기묘한 학설을 내놓는다. 일제강점기 '황국신민교육'의 후신이란 것. 전국 각지에서 태동한 민간 교육기관을 탄압하며 식민지 우민화 목적으로 설계된 공교육체계가 현재까지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진지하게 따지면 숱한 논쟁이 당연하지만, 영화는 뿌리 깊은 반일 정서에 기대어 가볍게 '썰'로 풀어낸다. 대항마로 '사랑의 매'와 '스승의 은혜'가 등장할 땐 피식 실소가 터질 지경이다. 너무 상투적이긴 하다.

하지만 <교생실습> 화면을 가득 채운 장치는 대개 일본 도시 전설과 서브컬쳐 문화에서 비롯된다. 귀신을 부르는 숨바꼭질, 저주 인형, 일본 학원물 단골 배경과 소품이 숱하게 등장한다. 일본 대중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겐 우리 전통문화보다 익숙한 코드를 적극 도입해 공감과 재미를 추구하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주인공과 대립하는 악의 존재는 공식 라이벌 일본을 상징하는 어떤 것으로 설정한다. 어디까지 풍자고 어디부터 냉소인지 판단은 관객 몫이다.

한국 학원 공포물의 신세대 계승자

 <교생실습> 스틸
<교생실습> 스틸㈜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영화의 어떤 지점은 관습적, 전형적인 반면, 신랄한 풍자와 냉소주의가 상당하다. 현실의 암울함을 코미디로 가볍게 풀이하지만, 표현 수위가 절제될 뿐 진단은 가볍지만은 않다. 현실 모순의 해법을 제시하지 않아도 문제의 심각성은 충분히 인식하며 끝없이 관객에게 상기시킨다. 그런 이물감이 시종일관 관객을 들었다 놓았다 롤러코스터를 태운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공포물이 대개 갖는 슬픔, 원한의 정서와는 확연히 차별화한다.

일단 기존의 한국 공포물과는 확연히 다르다. 1990년대 이후 주로 여름철을 노려 개봉하는 공포 장르물은 사회적 불안과 끔찍한 현실 역사 배경 탓에 보고 나면 대개 찜찜한 뒷맛을 남기게 마련이다. 토속적 오컬트 영화는 물론, 서구나 일본의 인기 시리즈물을 차용한 작업들도 한국 사회가 녹아드는 순간에 기괴할 만큼 심각하고 무거워진다. 영화적 접근이라기보다 제작진과 관객이 함께 살아가는 현대 한국 현실이 공포를 불러오기 때문일 테다.

그런데 이 영화는 무섭지 않다. 공포물 외형을 갖추긴 했지만, '장르의 법칙'을 써먹다 팽개치길 자유자재로 일삼는다. 불필요한 난도질도, 억지 신파도 찾아보기 힘들다. 마치 극단적 선정성과 과도한 유혈 묘사로 한계에 닿던 '고어' 장르를 비틀어 '스플래터' 장르가 탄생한 것처럼, 한국 학원 공포물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가야 한다는 관념과 정면으로 맞서려는 듯하다. 자의식 과잉을 넘어 딱 평균치의 감각에 충실해지려는 의도다.

영화의 정조는 퍽 다르지만, 어쩌면 감독의 의도는 새로운 형태의 <여고괴담>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지독한 교육 현실에 희생당한 학생들의 다양한 슬픔이 원혼으로 변하며 공포를 유지해 온 시리즈는 이제 수명을 다했다. 김민하 감독의 <학교괴담> 연작은 이미 근본적으로 뒤바꾸기엔 너무 멀리 온 혼돈의 교육 현실을 환기한다. 동시에 기왕 글렀으니 뭐든 재미있게 해보자는 모험가의 태도로 새로운 세대의 감각을 담는다.

사실 공포물은 설명 없이도 사회적 징후를 포착해 관객 무의식에 접근하는 효과가 탁월하다. 영화가 아니라도 공포 장르는 수천 년 전부터 사회 문제를 비판하는 데 일정 기능을 수행해 왔다. 예술 영화와 장르 영화를 기계적으로 구분해 전자는 작가주의, 후자는 상업주의로만 한정하는 게 오히려 낡은 관념이다. 또래 신진 창작자 중 보기 드문 길을 가는 감독의 신작은 무섭지도 않고 피식 웃음만 나오는데 계속 보게 되는 묘한 매력으로 관객을 기다린다.

<작품정보>

교생실습
Teaching Practice: Idiot Girls and School Ghost 2
2025|한국|하이스쿨 호러블리 코미디
2026.05.13. CGV 단독 개봉|94분|12세 관람가
감독 김민하
출연 한선화, 홍예지, 이여름, 이화원, 유선호
제공/배급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제작 ㈜26컴퍼니, ㈜콘텐츠지

 <교생실습> 포스터
<교생실습> 포스터㈜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교생실습 김민하감독 한선화 홍예지 이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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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