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독립영화협회가 협회원 투표로 뽑은 2025년 올해의 독립영화인은 정윤석 감독이었다. 저널리즘을 표방한 주류 매체가 충실히 다루지 않는 한국사회 공동체의 갈등양상을 기록하는 건 십수 년에 걸친 그 필모그래피의 한 축을 이루었다.
제주 강정마을, 국가보안법, 세월호 침몰참사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태원 참사 등 그가 다룬 문제들이 하나하나 한국 현대사의 주요한 흐름을 이루었다. 그가 12월 3일 내란획책과 윤석열 당시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로부터 촉발된 서부지법 폭동 가운데 법원 안으로 돌입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헌법기관이 공격받는 현장에서 카메라를 든 이가 기록하지 않는 건 책임의 방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법은 끝내 그를 외면했다. 대법원은 국민 알권리를 위한 언론과 개인의 작품활동을 구분해야 한다며 건조물침입죄를 물어 벌금 200만 원을 선고한 2심 법원의 결정이 타당하다고 확인했다. 법이 정 감독과 마찬가지로 법원 청사 내에 진입한 JTBC 기자의 법적 책임은 묻지 않은 것과 대비되는 결론이다. 정 감독은 당시 법원에 돌입한 폭도들과 마찬가지로 범법자가 됐다. 둘 다 카메라를 들고 폭도의 폭력을 기록했음에도 법원은 언론사의 저널리즘과 독립영화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달리 바라봤다. 예술, 또 다큐는 저널리즘의 책무를 질 수 없다는 것일까. 십수 년에 걸친 정 감독의 작품세계는 저널리즘에 이르지 못한 걸까.
많은 이들이 정윤석 감독의 구명을 위해 노력했다. 정 감독을 변호한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지금껏 무죄탄원에 연명한 시민이 3만여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국제다큐멘터리협회(IDA), 유럽감독조합 등 국제단체도 이름을 올렸다. 기록하고 전하려는 정 감독의 작업이 공익을 위한다는 합의가 그에게 답지한 관심과 응원, 지지 아래 깔려 있었다. 정윤석의 저널리즘, 그리고 예술이 그에 부응할 것인가 하는 관심도 함께 커진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세상은 그렇게 끝난다.스틸컷
전주국제영화제
어떤 영화를 내놨을까
정윤석의 신작 <세상은 그렇게 끝난다.>가 27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섹션 화제작으로 주목받은 건 예고된 일이다. 전작들이 거둔 성취, 또 12.3 내란사태를 다뤘단 의미를 넘어 기소와 재판에 따른 화제성이 영향을 미쳤단 건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겠다. 무엇이 달라 언론은 면책되고 다큐는 기소되었단 말인가. 영화 안에 그 답이, 적어도 법원의 판단에 수긍하거나 반박할 근거가 담겼을 테다.
23분의 단편 다큐다. 2024년 12월 3일 계엄령 선포부터 국회의 계엄 해제, 다시 용산의 저항과 구속영장 발부, 서부지법 폭동에 이르는 사건들이 시계초침소리와 함께 긴박하게 흘러간다. 한국 현대사에 기록될 사건이다. 내란획책부터 극우의 준동, 반헌법적 저항까지가 그러하고, 국회와 국민이 평화적 수단으로 계엄을 해제하고 대통령을 탄핵해 파면토록 한 일 또한 그러하다. 영화는 상식이어야 마땅한 이들 굵직한 사건을 정리해 빨리보기 식으로 정리한다. 여느 언론이며 같은 소재를 여러 다큐가 해낸 일을 이 영화 또한 같이한다.
주목할 건 차이겠다. 그저 사실의 전달이라면 반드시 다큐, 또 영화일 이유는 없다. 심지어는 더 충실하고 효과적인 전달을 이미 방송과 신문매체, 언론들이 하고 있는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세상은 그렇게 끝난다.>는 두 가지 승부수를 가졌다. 하나는 앞서 적은 바와 같이 정 감독이 서부지법 폭동 현장 가운데서 직접 그를 기록했단 점이겠고, 다른 하나는 언론과 다른 다큐와 예술의 위치에서 사회적 사건을 다룬단 점이겠다. 둘 모두에서 특별함을 이루고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가가 곧 영화의 가치가 될 테다.
▲세상은 그렇게 끝난다.스틸컷
전주국제영화제
독창적 시선과 해석
여러 다큐 창작자의 인터뷰를 수록한 책 <다큐멘터리, 현장을 말한다> 가운데 아래와 같은 대목이 있다.
다큐멘터리감독은 사실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좋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은 소재가 아닙니다. 그보다 소재를 얼마나 깊이 있고 독창적으로 해석하느냐가 좋은 다큐멘터리 스토리텔링의 조건입니다. 따라서 좋은 다큐멘터리 스토리텔러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얘기가 왜 다큐멘터리로서 가치가 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단순히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소재를 찾아다니는 건 시간 낭비입니다. -171p 김민철 PD
다큐 감독이란 단순한 사실의 전달자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 독자적인 관념과 사상, 해석을 통해 소재가 아닌 작품으로 관객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다른 많은 분야와 마찬가지로 다큐에도 정답이란 없겠으나 정답을 찾으려 고투한 이의 꽤나 설득력 있는 이야기라 여긴다. <세상은 그렇게 끝난다.>도 그와 같은 도전을 감행한다. 중요한 건 유효하냐 그렇지 못하냐, 탁월한가 그렇지 않은 가다.
▲세상은 그렇게 끝난다.스틸컷
전주국제영화제
내란과 폭동, 탄핵까지... 이 영화의 시선은?
'본 영화는 유죄의 기록'이란 문장으로 시작하는 영화다. 이는 중의적으로 읽히는데, 윤석열의 파면과 내란죄 재판에 대한 것이 하나고 영화 공개를 전후해 유죄판결이 확정된 감독 자신에 대한 것이 다른 하나다. 법원 청사에 진입한 이들의 난동, 또 판사를 찾아 위해를 가하려는 이들의 폭언과 폭력이 일부나마 적나라하게 담겼다. 이에 대해 '세상은 그렇게 끝난다'는 감독의 해설이 언급되는데, 실제로는 '끝날 수 있다' 정도겠으나, 매우 가까웠고 어쩌면 현실이 될 수 있었을 내란의 가능성을 떠올리자면 영화의 판단이 아주 틀렸다곤 못 하겠다.
영화는 시종 째각대는 초침소리, 화면 가운데 떠오르는 선명하고 자극적인 문구들, 또 오른쪽과 왼쪽을 오가는 사운드효과를 활용해 관객의 의식에 다가선다. 자연스러운 몰입을 방해하는 효과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사고하게 하는 것이다. 여러 효과 중 특별히 언급할 만한 것이 몇 있다. 그중 하나는 왼쪽과 오른쪽을 오가는 사운드다.
영화를 볼 때 윤석열의 포고령 낭독은 오른쪽 스피커로만 들리고, 우원식 국회의장의 계엄 해제 선언은 왼쪽 스피커로만 나오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노골적으로 우파와 좌파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장치는 바람직한가. 영화는 다른 쪽 귀엔 들리지 않는, 한쪽 귀에만 호소하는 걸 드러내고 싶어 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사운드로 단순히 활용하고 넘어갈 뿐 세밀하게 효과를 덧쌓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전주국제영화제포스터전주국제영화제
법정에 선 감독을 지지하지만, 영화는 글쎄...
감독은 예수를 배신한 유다가 자살에 이르는 이야기, 또 시인 T.S.엘리엇도 자막을 통해 강렬하게 언급한다. 그러나 둘 다 일련의 사태와 직접적으로 대응하지 않아 당혹스럽다. 한 사회 전반을 흔드는 역사적 사건을 기독교와 문학의 상징으로 모호하게 빗대는 작업이 비유의 통상적 효과인 이해의 제고보다는 종교와 문학의 영역으로 담론을 좁히는 부작용을 일으킨다.
위와 같은 시도를 제하고 독자적 안목이나 해석이 드러나는 순간을 찾아보기 어렵다. 도리어 사건을 이어 붙이기에 급급한 순간이 잦다. 작가적 시각이 부재한 탓으로 <세상은 그렇게 끝난다.>는 '세상'도 '끝'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미완의 습작처럼, 언론보도보단 충실하지 못하고 예술영상보단 창의적이지 못하게 느껴질 뿐이다.
차라리 감독 자신이 겪고 있는 재판과 판결, 기소와 수사, 그에 대한 본인의 문제의식을 전하는 편이 더 효과적인 담론으로 이어졌으리란 아쉬움이 남는다.
많은 관심과 지지는 곧 그만한 책임을 일으킨다. 영화에 답지한 성원과 궁금증 또한 마찬가지다. 정윤석 감독과 작품은 과연 그에 부응했는가. 여전히 그를 응원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이 작품이 전주국제영화제가 코리안시네마로 가려 뽑아 소개할 만큼의 가치를 갖추지는 못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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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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