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독립(indipendence)자 붙은 것들이 있다. 대한독립만세 할 때 그 독립이 아니다. 독립영화, 인디음악, 독립출판 같은 것들.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독립서점이다. 한국만 해도 1000곳에 육박하는 독립서점이 영업 중이다.
인구수 5160만 명을 조금 넘긴 한국(2026년 2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기준)에서 1000개 남짓 독립서점이 있으니(2025 동네서점 트렌드 보고서 기준) 10만명 당 1.96개가 있는 꼴이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서점의 시: 대만 독립서점 이야기>에 따르면, 대만 수도 타이베이엔 세계에서 2번째로 서점이 많은 도시로 꼽힐 만큼 많은 서점이 있다.
사실 한국 통계청 실태조사는 매년 책 읽는 인구가 감소하고 연간 독서량이며 책 구매 횟수가 떨어진다고 경고등을 울려 댄다. 국민 10명 중 6명은 연간 단 1권도 읽지 않고, 대학교까지 졸업해 과제로라도 읽을 의무가 없게 된 30대 이후 성인은 독서량이 더욱 현격히 떨어진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독립서점은 꾸준히 생기고 있다. 대체 그 비결이 무얼까.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의 틈바구니에 존재하는 독립서점만의 독자적 가치와 매력이 존재하지 않고서야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영화로부터 기대하는 것 역시 바로 이 부분이다.
▲서점의 시: 대만 독립서점 이야기스틸컷
전주국제영화제
대만 작은 서점들 훑어보기
<서점의 시: 대만 독립서점 이야기>는 27회 전주국제영화제 '시네마천국' 섹션 출품작이다. 이 섹션은 전주국제영화제가 관객 친화적인 작품을 모아 상영하는 섹션으로, 각별히 현실에 기반한 극영화며 다큐멘터리를 주로 상영한다고 알려져 있다. 올해는 이 섹션에 모두 다섯 편의 다큐가 초청됐는데, 개중 동양의 이야기는 이 영화가 유일하다.
영화는 대만의 독립서점 15곳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감독은 2010년대 베를린국제영화제와 도쿄국제영화제에서 극영화로 존재감을 알린 허우츠젠으로, 이번 영화는 2015년 발표한 단편 <책방의 풍경>으로부터 확장된 작업의 일부다. 8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도 이 단편이 소개됐다. 그는 독립서점의 매력과 지향점을 모든 것이 획일화되어 가는 21세기의 풍경과 대조해 풀어낸다.
영화는 2013년부터 2024년까지 이뤄진 대규모 프로젝트의 일환이란 걸 알리며 출발한다. 10여 년간 허우츠젠이 방문해 촬영한 서점만 120여 곳, 그 가운데서 15곳을 추려 각각의 개성과 가치를 담는다. 병렬적으로 배치된 작업은 각기 다른 15편의 단편을 보는 양 한 서점 소개가 끝나면 다른 서점으로 옮겨가길 거듭한다. 각 장이 시작하기 전, 검은 화면 위에 감독이 직접 적었을 중간제목이 들어간다. 문학적 역량이 뛰어나진 않아도 나름대로 시적 정취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읽어낼 수 있다.
▲서점의 시: 대만 독립서점 이야기스틸컷
전주국제영화제
시적 정취로 표현한 서점이란 공간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포에트리스 프롬 더 북스토어 Poetries from the Bookstores'로, 서점으로부터 오는 시적 정취를 담아낸다. 시가 복수형으로 셈해지지 않는 영어단어지만 복수형의 's'를 더하고, 부제 '썸웨어 아이 빌롱스 Somewhere I Belongs'를 '내가 속한 어딘가'가 아닌 '대만 독립서점 이야기'로 고쳐달았다.
다만 원제에서 '서점'이라 한 걸 '독립서점'이라 바꿔 단 데서 올해 유달리 원제를 많이 고친 전주국제영화제의 태도가 엿보인다. 영화 속에서 스스로 독립서점이 아니라 말하는 서점주의 대사가 인상적으로 등장하는데도 '독립서점'의 정체성을 덧씌우는 제목이다. 이와 관련해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개막작 '레이트 페임 Late Fame'을 영화와 어울리지도 않는 '나의 사적인 예술가'로 바꾼 영화제의 선택이 또 한 번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영화 속엔 다양한 서점이 등장한다. 독립서점 좀 다녀본 이라면 익숙하게 느낄 만한 곳도 여럿이다. 특정 주제에 전문성이 있는 서점들이 꽤 된다. 주변의 자연, 동네 지리며 역사, 페미니즘, 만화며 고서, 디자인 등등이다. 젊고 세련된 층을 타깃 삼은 가게들이 갖는 서점의 외양이란 한국과 얼마 다르지 않다. 고양이를 풀어두고, 무지개 깃발을 내걸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소수자와 연대한다고 표방하는 곳을 보고 있자면 비슷한 한국 독립서점 여럿이 떠오른다.
책의 미덕 중 하나는 읽는 이의 세계가 넓어지고 이해 또한 깊어진다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 보면 공부란 자연히 주변에 대한 관심과 공감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동물과 채식, 소수자에 대한 문제가 자주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점의 시: 대만 독립서점 이야기스틸컷
전주국제영화제
서점주 개성 따라 색 발하는 서점들
그보다도 관심이 가는 서점은 주인장의 내공이 느껴지는 곳들이다. 주인장의 삶 가운데 쌓아 올린 품과 격이 자연스레 묻어 나는 가게들이 영화 가운데 몇 곳쯤 자리한다. 책이 좋아 점포를 열고 수십 년 같은 자리를 지켜왔다는 어느 가게는 주변의 풍경과 온전히 동화됐다. 문방구인지, 동네 사랑방인지 알지 못하는 이 서점엔 어렵게 구한 귀한 책들이 여럿 자리해 눈 밝은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마케팅은 하지 않는 어느 서점은 누구도 관심 두지 않는 뱃사람들의 기록을 꾸준히 모아왔다. 그로부터 지역의 산업과 지역민들의 삶에 대해 남다른 이해를 갖게 된다. 이 서점과 서점주가 없었다면 사라질 것의 보존된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깊이 애정하여 스스로 그 후속작이 될 만한 책을 집필하고 질병의 원인을 탐구해온 서점주도 인상적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질병의 이야기를 풀어내 온 그의 목표는 노벨 생리학상을 타는 거다. 도무지 실현되기가 쉬지 않아 보이는 그 목표를 당당히 언급하는 모습에서 흔히 마주하기 어려운 기개를 발견한다.
▲전주국제영화제포스터전주국제영화제
읽는 사람들이 오래도록 살아남기를
어떤 서점주는 책을 파는 대신 책 대여를 좋아한다. 많은 이들이 같은 책을 읽고 이해와 감상을 나누니, 그대로 서점은 관계와 지적 고양의 매개로 자리한다. 여러 서점 가운데 가장 활발한 곳은 역시 아이들이 드나드는 곳이다. 아내가 2층에서 학원을 하고 남편은 1층에서 서점을 운영하는데, 반드시 서점을 통해야 학원에 드나들 수 있게 한 것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의도가 적중한 걸까.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책을 읽거나 그 내용을 나누는 광경도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다. 아이들이 미래라는 서점의 철학이 서점 자주 찾는 내 눈엔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우리네 서점들은, 특히 독립서점이라 불리는 아이들을 멀리 두고 가까이하지 않는 광경이 떠오른다. 영화 속 왁자지껄한 아이들을 미래라기보다는 서점의 평온을 해치는 존재로 여기는 편하고 흔한 인식 때문이 아닌지. 지금껏 전국 독립서점 200여 곳쯤 족히 다녀온 입장에서 대만보다도 '독립'성을 더 강하게 표방하는 한국 작은 서점들의 개성의 폭이 훨씬 좁고 겹친단 사실이 아쉽게 다가온다. 독서문화가 더 다채롭고 깊이 자리할 때 매력 넘치는 서점주가 길러지고, 서점 또한 자리하는 것이 아닐지. 그런 생각들이 뒤따른다.
영화가 소개한 서로 다른 여러 서점 가운데 눈에 띄는 문제는 역시 돈이겠다. 대형서점도, 온라인 서점도 아닌 작은 공간에서 주인장이 직접 꾸려가는 이들 서점에선 책으로 충분한 벌이를 해내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여러 모임과 행사를 열지만, 그래도 찾는 이는 많지 않다. 확고한 성향의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장치, 소위 힙해보이는 분위기를 가져오지 않는다면 서점이 흥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유지에 급급하고 확장은 꿈도 꿀 수 없는 이들 서점의 운명이 꼭 시의 정취와 빗대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읽는 이가 사라져도 끝끝내 자리를 지키는 시문학과 같이, 이들 서점 또한 오래도록 살아남길 바라는 감독의 마음이 단순한 촬영과 인터뷰, 편집을 뚫고 은은하게 드러난다. 인구는 한국의 절반이지만 독서량과 책 판매량, 서점 수와 질에서 한국을 능가하는 대만의 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읽는 문화가 아직 굳건히 자리한 그들의 상황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활자매체로 이어지고 통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와 같은 광경으로부터 흐뭇하게 미소 짓게 되는 건 내 선 자리에선 그와 같은 광경을 기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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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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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서 두 번째로 서점 많은 도시는 뭐가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