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쉰두 살, 처음 산 앨범
만 쉰두 살, 나는 생애 처음으로 앨범을 샀다. '개화'였다. 결제를 마치고도 한동안 화면을 들여다봤다. 내가 정말 아이돌 앨범을 산 건가 싶었다. 원래 나는 AKMU(악뮤)를 잘 모르던 사람이었다. 아이돌 음악을 찾아 듣는 취향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찬혁 인터뷰 영상을 반복해서 보기 시작했다. 하나를 보고 나면 또 다른 영상이 이어졌다. 결국 지난 12년 동안 나온 방송들을 거의 다 찾아봤다. 새벽 두세 시까지 영상을 보다 잠든 날도 많았다. 만 쉰두 살의 여성이 청년 뮤지션 영상을 뒤적이는 모습은 조금 우스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그의 말과 노래로 돌아가게 됐다.
▲악뮤 정규앨범 4집 개화악뮤 정규앨범 4집 개화악뮤
내가 반복해서 본 장면
가장 오래 남은 건 최근 악뮤 공식 채널에 업로드 된 'The Past Year'의 한 장면이었다. 무기력에 빠진 이수현이 좀처럼 일상을 회복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이찬혁은 동생과 함께 살며 운동을 하고 밥을 먹고 하루를 같이 보냈다. 특별한 해결책을 말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반복해서 동생 곁에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몇 번이나 다시 돌려봤다. 몇 년 전부터 한국 사회에서는 '번아웃'과 '고립'이 일상어가 됐다. 우울과 정신건강을 말하는 기사는 넘쳐나지만, 누군가의 무너진 시간을 함께 견디는 이야기는 드물다. 사람들은 대부분 '버티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누군가를 기다려주는 법은 배우지 못한다. 그래서였는지, 동생 옆에서 조용히 하루를 반복하는 이찬혁의 모습이 이상할 만큼 크게 다가왔다.
자꾸 사람 쪽으로 걸어가는 노래
'소문의 낙원'을 들을 때마다 휴대폰 화면 속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모두 행복해 보이는데 댓글창에는 "살기 힘들다"는 말이 끝없이 달렸다.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은 몇 번이나 듣다가 멈췄다. 요즘 노래들은 대개 더 강해지는 법, 더 멋있어지는 법을 말한다. 그런데 이 노래는 자꾸 약한 사람 쪽으로 시선이 기울어 있었다.
'햇빛 bless you'를 듣다가 오래전 교회 청년부 시절도 떠올랐다. 누군가를 함부로 미워하지 않으려 했던 시간들. 경쟁보다 위로를 먼저 말하던 순간들.
지금 한국 사회는 너무 빨리 사람을 평가하고, 쉽게 소모한다. 냉소는 세련됨이 되고 혐오는 콘텐츠가 된다. 그런데 악뮤의 음악은 자꾸 사람 쪽으로 걸어간다. 서로를 쉽게 지우는 말들이 넘쳐나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아직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왜 나는 새벽마다 다시 악뮤 노래를 틀게 되었을까. 아마 그 오래된 감각 때문인지 모른다.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무너진 사람 곁에 남아 있으려는 마음. 지금 사람들이 그 음악에 붙들리는 이유도 어쩌면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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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밥 주식회사 대표이사 이자 논픽션 작가.호주아이오와콜롬바대학 겸임교수, (사)대전여민회 전 이사
전 여성부 위민넷 웹피디. 전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전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 여성권익상담센터 실장, (전)대전세종성별영향평가센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