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늘 선을 넘지"'... 정체성 뚜렷했던 전주영화제 이모저모

[27회 전주국제영화제 결산] 좌석점유율 한계치... 한국독립영화 주제의식 등 약화는 우려

 지난 8일 전주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열린 27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폐막작 <남태령>의 김현지 감독이 출연진들과 함께 인사하고 있다
지난 8일 전주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열린 27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폐막작 <남태령>의 김현지 감독이 출연진들과 함께 인사하고 있다전주영화제 제공
 지난 8일 전주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열린 27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 공연.
지난 8일 전주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열린 27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 공연.성하훈

탄핵의 광장에 나섰던 내향인 깃발 기수에 대한 마음을 담은 감독, 대구와 진주 등지에서 온 다큐멘터리 출연진,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두른 여성과 전봉준 투쟁단 옷을 입은 농민의 레드카펫, 그리고 윤석열 퇴진을 외치며 남태령에서 불려졌던 노래의 축하공연 등.

지난 8일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에서 열린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식은 영화제의 정체성이 도드라진 순간이었다. 영화의 해방구로서 '우리는 늘 선을 넘지'라는 슬로건이 폐막식을 장식했다. 윤석열 탄핵과 내란 청산을 외치던 광장의 목소리가 폐막 공연과 페막작 <남태령>으로 구현되며 영화제의 끝을 장식했기 때문이었다. 관객들은 특별한 축하공연과 폐막작 감독·출연진의 인사에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남태령> 김현지 감독은 "내란은 저를 비롯한 수많은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절망과 무력을 안겼다"며 "X(구 트위터)의 엄청난 해학에서 큰 위로를 받았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차이를 받아들이는 경험과 함께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격차 갈등이 해소되었던 자리"라고 영화에 대해 설명했다.

"전용관 개관하면 관객 더 늘어날 것"

지난 4월 29일 개막한 전주국제영화제가 열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8일 모든 행사를 마무리했다. 전체 관객은 6만9490명으로 지난해 7만 관객에는 살짝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좌석점유율 82.3%, 전체 610회 상영 중 3분의 2 이상인 443회 매진에서 볼 수 있듯 고사동 영화의 거리는 관객들로 가득했다. 전주국제영화제가 동원할 수 있는 최다 관객이 7만이라는 점에서 지난해와 버금가는 관객 수를 유지했다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5월 1일 노동절이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이어진 연휴 덕분에 관객이 몰렸다. 하지만 영화제 후반부에 관객들이 줄지 않았는데 이는 전체적인 프로그램의 수준이 질적으로 높아지면서 흥행으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성욱 집행위원장은 8일 오후 폐막식을 앞두고 열린 결산 기자회견에서 "극장의 규모로 봤을 때 점유율이 한계치에 왔다"며 "올해 하반기 전주 독립영화의 집이 완공돼서 상영관이 생기면 수치적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27회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중 영화의 거리에 몰린 인파
27회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중 영화의 거리에 몰린 인파전주영화제 제공

한국계 배우 그레타 리가 주연으로 출연한 켄트 존스 감독 <나의 사적인 예술가>로 막을 올린 전주영화제는 다양한 국내외 독립예술영화들이 선보였다. 12.3 내란을 소재로 한 작품들도 적지 않았다.

후지필름코리아상 수상작인 문정현 감독의 <비대면의 시간>은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를 다루면서 내란에 맞선 시민들을 등장시켰다. J비전상 수상작인 김종관 감독의 <졸업앨범: 선생님을 기다렸다>는 1980년 전두환의 광주학살에 분노해 행동했던 전주 신흥고 학생들의 시위와 40년이 지난 현재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담아냈다. 단편경쟁에 상영됐던 <피켓 디자인하실 분?>이나 코리아시네마 단편에서 상영된 <디어 팬> 등은 12.3 내란 발생 후 거리시위를 준비하고 참여한 과정을 담았다.

지난해 윤석열의 탄핵 선고를 앞둔 시점에서 '다시 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내란 특별전을 준비했었는데, 올해는 한 단계 더 나아간 모습을 보였다. 내란 관련 작품들이 잇달아 완성되고 있는 가운데 전주영화제의 특유의 색깔을 유지하게 위해 애쓴 프로그래머의 노력이 작품 곳곳에 스며 있었다.

거장 감독 방문, 골목상영 관객은 크게 늘어

 영국의 거장 마이크 피기스감독 마스터클래스
영국의 거장 마이크 피기스감독 마스터클래스전주영화제 제공

대만 차이밍량 감독과 영국의 거장 마이크 피기스 감독 등 거장들의 방문도 시네필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두 감독의 마스터클래스는 전석 매진을 기록할 정도였다. 2024년 전주에서 거리 이벤트를 열기도 했던 차이밍량 감독은 전주영화제와의 협업을 통해 '행자' 시리즈 차기작을 전주에서 촬영할 계획이다.

'홍콩귀환: 시네마+아방가르드' 특별전에는 한국 실험영화의 선구자 한옥희 감독 등이 참석해 좌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관객 중에는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실험영화 전시회를 둘러보고 왔다는 분도 있었다. 상영이 끝난 후 한옥희 감독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긴 줄이 형성되는 이례적 모습도 보였다.

지역영화 상영도 확장된 모습이었다. 지역영화 지원 예산이 복원되지 않은 가운데 전북지역 감독을 조명하던 기존 흐름에서 더 나아가 각 지역 영화들을 별도로 모아 놨기 때문이다. 이들 작품 중 강원독립영화협회 회원으로 원주에서 활동 중인 고승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 <같은 계절을 보낸다는 건>'이 CGV상'과 배우상 등 2관왕을 차지하며 의미를 더했다.

 지난 5월 3일 전주영화제 골목상영 모습. 좌석이 모자라 바닥에 앉거나 서서 관람하는 관객들이 더 많았다.
지난 5월 3일 전주영화제 골목상영 모습. 좌석이 모자라 바닥에 앉거나 서서 관람하는 관객들이 더 많았다.성하훈

골목상영의 성장도 두드러졌다. 지난해 상영했던 작품이 주로 상영됐는데 골목상영에 참석한 관객은 모두 4175 명으로 집계됐다. 문성경 프로그래머는 "근래들어 해마다 관객들의 열기가 더 높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무적인 사고나 전체적인 운영에 큰 무리가 없던 것도 영화제 흥행에 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사무처의 주요 책임자들이 오랜 시간 전주영화제에서 일한 데다 핵심 스태프들의 영화제 경력이 최소 10년 이상으라 틀이 잡힌 모습이다. 확장된 기념품 판매 공간이나 협찬사 이벤트 공간 역시 오전부터 긴 줄이 생길 만큼 전주의 영화 열기는 뜨거웠다.

매해 한국영화의 주요 이슈가 제기되는 영화제의 흐름도 이어졌다. 개막 이튿날 영화인연대와 영진위의 간담회에서 영화진흥위원회의 무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2024년 전주영화제 포럼을 통해 객단가 문제가 제기된 것을 시작으로 전주가 한국영화의 정책 방향 설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작품 선정 무난했으나 화제성이나 무게감은 낮아진 듯"

 지난 5월 1일 오후 전주영화제 상영관인 고사동 메가박스 앞에서 시민단체가 이스라엘 영화 상영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5월 1일 오후 전주영화제 상영관인 고사동 메가박스 앞에서 시민단체가 이스라엘 영화 상영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성하훈

올해 영화제에서 장단편 50편을 넘게 관람했다는 김상목 영화평론가는 "전체적인 작품 선정은 무난했고 개·폐막작 선정은 시의성 등에서 준수했다"라며 "하지만 예전보다 화제성과 무게감은 저하된 느낌으로 작품별 편차가 컸고 초점이 흐릿한 면이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국제경쟁작품들보다 한국경쟁 작품들보다 나았다. 신작 다큐와 특별기획 등은 좋았으나 한국 극영화는 주목할 만한 작품이 드물다는 인상이었다"며 "한국 독립영화가 동시대 해외 작 품에 비해 주제 의식이나 형식과 실험에서 정체되고 있다는 우려가 들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주가 강점을 가지고 있던 아카데믹한 요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며 "메인카탈로그나 기획전 연계 출판물의 부재는 아쉬웠으며, 이스라엘 영화 선정과 관련해서는 지역사회의 문제제기에 대한 소통의지가 미흡해 보였다"고 덧붙였다.

올해 상영된 이스라엘 영화 <예스!>는 가자지구 침공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으나 시민단체들은 개막 전부터 상영취소를 요구했다. "이스라엘 국영펀드가 제작 과정에서 참여했고, 영화에 나오는 가자지구 공습 장면 등이 철저히 가해자의 시선에서 비극을 영화 소재로 삼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전주영화제 측은 "국제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이스라엘뿐 아닌 프랑스와 독일 등 국제공동제작으로 만들어 졌으며 영화가 이스라엘의 폭력과 그에 따른 참상을 비판하는 데 있다"면서 상영취소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7회 전주국제영화제 수상작(자) 명단

[국제경쟁]
-대상 : <서서히 사라지는 밤> 에세키엘 살리나스, 라미로 손시니 감독
-작품상(NH농협은행 후원) : <크로노바이저> 잭 오언, 케빈 워커 감독
-심사위원특별상 : <방문자> 비타우타스 카트쿠스 감독
-심사위원 특별언급 : <미치유키: 시간의 목소리> 나카오 히로미치 감독

[한국경쟁]
-대상(후지필름코리아 후원) : <흘려보낸 여름> 이선연 감독
-심사위원특별상(맑은소프트 후원) : <회생> 김면우 감독
-농심신라면상 : <공순이> 유소영 감독
-배우상 : 기진우 배우(<잠 못 이루는 밤> 도율 역), 여대현 배우 (<같은 계절을 보낸다는 건> 세훈 역)
-CGV상 : <같은 계절을 보낸다는 건> 고승현 감독

[한국단편경쟁]
-대상(후지필름코리아 후원) : <터치, 툭> 태지원 감독
-감독상(교보생명 후원) : <메밀묵> 김정민 감독
-심사위원특별상(예수병원 후원) : <영업일지> 강민아 감독
-에어로케이상 : <포스트 푸 드롭> 강승호 감독, <고래사냥> 류도현 감독

[특별부문]
-후지필름코리아상 : <비대면의 시간> 문정현 감독
-다큐멘터리상(진모터스 후원) : <회생> 김면우 감독
-넷팩상 : <마비: 시비레> 우치야마 타쿠야 감독
-멕시코국립시네테카 개봉지원상 : <후광> 노영완 감독
-J 비전상(풍년제과 후원) : <졸업앨범: 선생님을 기다렸다> 김종관 감독
전주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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