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개인화된 콘텐츠의 시대다. 유튜브와 SNS는 밀착형 알고리즘으로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동시에 형성해 나가며, 심지어 영화와 드라마조차도 다원화된 OTT가 저마다 다른 작품을 추천한다. 모두가 공동으로 보고 이야기하는 현상(phenomenon)으로서의 미디어가 부재한 시대에, 그 역할에 가장 근접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3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미국 드라마 <유포리아>일 것이다.
지난 4월 버라이어티에 의하면 <유포리아>는 공개 3일 만에 850만 시청자를 확보했다. 아마존 프라임의 <더 보이즈>, 디즈니플러스의 <데어데빌: 본 어게인>등 쟁쟁한 경쟁작들을 제치고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낸 것이다. 마약에 중독된 10대 소녀 '루(젠데이아 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2026년에도 전미를 하나로 만들 수 있었을까? 답은 <유포리아>가 품고 있는 시대성에 있다.
선정성과 현실성 사이에서
▲드라마 <유포리아> 스틸컷
HBOmax
<유포리아>의 흥행 추진력은 언제나 선정성을 기반으로 했다. 십대들의 사랑과 섹스는 물론 마약과 총기 폭력까지, 본작은 기존 미디어가 다루지 않았거나 다루었더라도 미진했던 부분을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여기에다 감독 샘 레빈슨이 여성 출연진을 가혹한 촬영 환경에 노출했던 것마저 제대로 된 문제 제기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가십화되면서 드라마에 대한 관심도를 상승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러한 선정성은 세 번째 시즌에서 한층 더 거침없어졌다. 직전 시즌까지만 해도 설정상 미성년자였던 캐릭터들이 전부 성인이 된 모습으로 등장하면서 이전에는 다루지 못했던 소재들이 족족 등장한다. 주인공 루는 마약중독을 이겨내지 못한 채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스트립클럽 '실버 슬리퍼'에서 포주가 되며, 전작에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얻어내나 싶던 '캐시(시드니 스위니 분)'는 경제적 사정으로 성적 콘텐츠를 사고파는 SNS '온리팬즈'의 회원이 되기까지 한다. 주연 중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했던 '줄 수(헌터 샤퍼 분)' 역시 특정인과의 주기적 만남을 조건으로 돈을 받는 '슈가 베이비'로 전락한다.
이러한 스토리 방향성은 언뜻 샘 레빈슨 감독의 '상상력 부족'으로 보이기도 한다. 다채로운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유포리아>의 여성 캐릭터들이 대부분 성매매 업계에 빠져들었다는 설정은 일견 지나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성을 비판하는 목적이라기에는 레빈슨 감독 특유의 관능적인 연출이 성매매를 미화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유포리아> 시즌 3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 선정적이어서만이 아니다. 레빈슨 감독의 연출 취향과 별개로, 작품의 서사 구조는 주인공들을 매음과 범죄의 소굴로 이끄는 것이 자유의지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학기당 5만 달러(한화 약 7천3백만 원) 를 웃도는 대학 등록금과 폭발적인 물가, 그리고 전무한 계층 상승의 기회 속에서 '아메리칸드림'은 파괴되고 경제적으로 취약한 여성·청년은 극단적인 방법 없이는 벗어날 수 없는 빈곤의 대물림에 빠져들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적격하듯, <유포리아> 시즌 3 2화의 제목은 '아메리카 마이 드림'이다. 본작의 과열된 선정성 이면에는 미국의 현실에 기반한 비판적 논조 역시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 미국 청년들은 '자기부정' 중
▲드라마 <유포리아> 스틸컷HBOmax
작품 내적으로 들어가면, <유포리아> 시즌3의 정체성은 '자기부정'임이 여실히 드러난다. 주인공 루는 마약과 포주 일에 발을 깊이 들였지만 거듭 기독교를 통한 구원을 찾는다. 동성애자인 자신을 현대 개신교가 받아 주지 않음을 알면서도 성경을 외려 노력하는 루의 모습은 일종의 자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외에도 트랜스젠더 캐릭터인 줄스는 영화 업계에서 일할 기회를 얻자 '무엇이든 마음껏 만들라'는 말을 믿고 진심을 다한 작품을 만들어 내지만, 성소수자로서의 개인사가 진하게 담겨 있던 작품은 곧바로 퇴짜를 맞고 줄스 본인은 일자리를 잃는다. 이전 시즌에서 폭력과 마초이즘의 대명사였던 '네이트(제이콥 엘로디 분)' 역시 파산 직전인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사채업자에게 자비를 요구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모든 인물이 걷는 여정이 '개인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외치는 중인 것이다.
이러한 주제를 강화하려는 듯, <유포리아>는 완전한 스타일 변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시즌 2까지 상징적인 구심점 역할을 했던 얇은 폰트는 두껍고 넓은 글자체로 바뀌었고, 낭만과 비애를 담았던 '라브린스(labrinth)'의 사운드트랙 대신 영화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의 묵직하고 삭막한 음악이 배경에 깔린다. 몽환적이던 이전 시즌까지의 미학을 완전히 '자기부정'한 <유포리아>의 변신은 그 자체로 하나의 경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살아남기 위해 개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어야만 하는 곳이 미국이라면, 이러한 국가의 미래가 과연 희망찰 수 있을까? 살기 위해 발버둥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 가는 본작 인물들의 여정이 이런 질문에 간접적인 답변을 남긴다.
이처럼, <유포리아> 시즌 3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으로 모두의 이목을 끄는 듯 보이나, 그 이면에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담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시대정신을 담아낸 각본과, 그 어떤 숏폼 콘텐츠도 아직은 따라가지 못한 극한의 영상미. 이 두 가지 요소가 한대 맞물렸기에 방방곡곡으로 흩어졌던 '미디어 유목민'들이 다시 <유포리아> 앞에 모이게 된 것이 아닐까. 본작은 쿠팡플레이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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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 픽션 신봉자. 이야기가 가지는 힘을 믿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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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에 중독된 10대 소녀는 어떻게 미국을 사로잡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