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프트베르크 내한 공연
염동교
밴드의 중핵 플로리안 슈나이더(Florian Schneider)가 2020년에 작고했으나 원년 멤버 랄프 휘터(Ralf Hütter)가 건재하며, 그를 보좌하는 헤닝 슈미츠(Henning Schmitz), 포크 그리펜하겐(Falk Grieffenhagen), 게오그르 봉가르츠(Georg Bongartz) 세 구성원이 전자음악의 대부를 보좌했다. 보컬과 주요 키보드 멜로디는 휘터가, 그 외 외피로 작용하는 음향을 나머지 멤버가 협력하는 방식이었다. 때론 인간처럼, 때론 로봇처럼 적재적소의 움직임으로 음향을 빚는 네 사람은 시시각각 번쩍이는 의상으로 시선을 빼앗았다.
"멀티미디어"라는 투어처럼 시각과 청각 모두 붙잡은 공연이었다. 2026년 차례로 내한한 후배 일렉트로닉 뮤지션 맥스 쿠퍼의 압도적 예술성, 원오트릭스 포인트네버의 재기와 창의 넘치는 영상과 결은 달랐다. 단순명확하면서 핵심을 콕콕 찌르는 이미지가 크라프트베르크의 소리와 닮아있었다.
화면 속 연둣빛 숫자가 쉴 새 없이 쏟아진 도입부 '넘버스(Numbers)'와 < 컴퓨터 월드(Computer World) > 앨범 아트 속 컴퓨터를 띄운 "컴퓨터 월드(Computer World)"처럼 초반부터 오디오 비주얼이 돋보였다. "컴퓨터 월드(Computer World)"는 콜드플레이의 '토크(Talk)"에 샘플링된 덕에 젊은 팬들에게도 익숙한 작품이다. 남한 지도에 좌표를 찍고, 우주선이 롯데 월드타워를 지나 명화 라이브홀에 당도하는 '스페이스랩(Spacelab)'은 한국 관객을 위한 크라프트베르크의 특별한 선물이었다.
자국인 독일을 벗어나 대륙으로 시선을 확대한 '트랜스 유럽 익스프레스(Trans Europe Express)'과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에도 청중은 열광했다. 전자는 기차가 선로에서 미끄러져 갈 때 들려온 효과음, 후자는 경륜 선수의 헐떡임을 재현한 랄프 휘터의 육성이 압도적이었다. 끊이지 않는 친숙한 선율에 "비틀스가 로큰롤에서 그랬던 것처럼 전자음악에선 크라프트베르크가 멜로디를 선취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라프트베르크 내한 공연염동교
피아노 연주 음악 말고도 일본 신스팝의 상아탑을 건설한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의 일원이던 류이치 사카모토. 그는 토킹 헤즈의 데이비드 번, 재팬의 데이비드 실비언 같은 독창적인 영미권 아티스트와 교류한 크라프트베르크와 1980년대부터 음악적 우정을 나눴다. 이후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해서는 "라디오액티비티(Radioactivity)"의 일어 노랫말을 제공했다.
라디오와 방사능에 관한 콘셉트 앨범 < 라디오액티비티(Radioactivity)>와 자타공인 명반 < 아우토반(Autobahn) >에 가려진 앨범이 있다. < 더 맨 머신(The Man-Machine) >(1978)이다. 다른 앨범에 비해 실험성은 덜하나 명곡 '더 모델(The Model)'을 위시해 대중적 매력을 부각한 < 더 맨 머신(The Man-Machine) >의 '더 로봇츠(The Robots)', '네온 라이츠(Neon Lights) 등은 이번 공연 셋리스트에서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앨범의 표지처럼 관객 중 일부는 빨간 셔츠에 검은 넥타이를 매기도 했다.
공연 후 A구역 왼쪽 부근에서 함께 공연 관람했던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공연 후 한 지인들도 만났고, 혹시나 크라프트베르크 멤버를 만날 수 있을까 기다리던 이들의 마니아와도 공연 후일담을 공유했다. 하나같이 입을 모아 "너무 좋았다"란 말이 나오자 괜스레 내 맘이 뭉클했다. 역시 좋은 음악은 세월을 타지 않았다. 세 번째 한국을 찾은 전자음악의 전설은 고대한 그대로, 전설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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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염동교라고 합니다. 대중음악을 비롯해 영화와 연극, 미술 등 다양한 문화 예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