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매율은 최고, 지역 상권은 한산... 전주영화제의 두 얼굴

[김성호의 씨네만세 1338] 27회 전주국제영화제 견문①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이번 영화제엔 따로 청탁을 받지 못한 관계로, 꼭 봐야 할 작품 몇 만 추려 보고 돌아왔다. 시작부터 끝까지, 전 일정을 소화하던 영화제를 이번엔 사흘만 돌아보게 되었으니 전체를 보았다고 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이유로써 더욱 잘 보인 것들 또한 있었다. 내가 만난 27회 전주국제영화제 이모저모를 기록해 보려 한다(제 27회 전주영화제는 4월 29일부터 5월 9일까지 열렸다).

전주국제영화제 행사 사진
전주국제영화제행사 사진전주국제영화제

#1. "독립영화 누가 봐?"

개막식 당일 광화문에서 영화제 측이 마련한 차량을 타고서 전주로 이동했다. 3시간가량 걸려 도착한 전주에서 가장 처음 해야 할 건 배지를 발급받는 일이다. 개막식보다 먼저 열리는 개막작 기자·평론가 대상 시사까진 한 시간 남짓이 남아 있다. 배지 발급장소인 게스트센터에 도착하니 우리가 첫 손님인 듯. 준비에 여념 없던 지프지기들이 앞다퉈 찾는 이를 반긴다.

배지를 받아 게스트센터를 막 나왔다. 곁에 큼직하게 붙은 상영시간표를 볼까 다가가던 순간, 젊은 여성 둘이 곁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중 한 명이 말한다. "여기 뭐야?" 다른 이가 답한다. "무슨 영화제 한 대. 독립영화." 처음 말한 이가 다시 묻는다. "독립영화 그거 재밌어?" 친구가 답한다. "마니아들은 보지." 그리고 덧붙은 뒷이야기는 멀어져 듣지 못했다.

짤막한 대화가 오래 남는다. 독립영화 그거 재밌니? 독립영화 관련 글을 쓰며 나 또한 때로 때때로 받는 질문이다. 평소엔 독립영화가 다른 영화와 구분되는 무엇이라 인식하지 않는 나다. 그러나 독립영화를 따로 호칭하는 이들에겐 독립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 아마도 상업영화며 재밌는 영화들을 구분하는 나름의 울타리가 있는 듯하다. 대체로 호의적인 쪽은 후자일 테다. 아직 성공하지 못한 창작자들이 없는 살림에 돈을 내어 찍은 의미가 있는 영화, 대개는 재미가 없고 완성도도 떨어지는 작품들. 독립영화에 대한 흔한 생각이 이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단 걸 나는 지난 수년간의 대화로써 짐작할 뿐이다. 얼마 전 만난 어느 비평가는 내게 '아직도 대중들 중에선 독립영화를 독립운동가와 관련된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려주었으니 이와 같은 고민이 오로지 나만의 것은 아닐 테다.

그 숱한 의심과 고민을 넘어 독립영화의 가치를 발굴하고 확인하며 지켜내는 것이 영화와 영화제, 그리고 영화인들의 책무일 테다. '선을 넘고, 경계를 무시하고 새로운 도전을 지속하는 것이 전주국제영화제의 정체성'이라고 밝힌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또한 그러하다.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사전 시사회 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켄트 존스 감독이 발언하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개막작 사전 시사회 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켄트 존스 감독이 발언하고 있다.김성호

#2. 제발 그대로 놔둬주면 안 될까

처음 본 작품은 개막작 <나의 사적인 예술가>다. 원제는 'Late Fame', 직역하면 '뒤늦은 명성' 쯤이 될까. 한국 영화제가 고쳐 다는 한국어 제목이 영 엉망일 때가 많은데, 올해는 개막작부터 그러한 듯 싶어 민망해지는 마음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가 무려 개막작 제목을 바꿔단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굵직한 영화제 중에서 그래도 전주국제영화제는 원제를 잘 살리는 편이었다. 이를테면 로이 안데르손의 'A Pigeon Sat on a Branch Reflecting on Existence'를 <비둘기, 가지에 앉아 존재를 성찰하다>란 제목으로 직역해 소개한 게 대표적이다. 다른 영화제라면 어떻게든 다른 제목으로 바꿔냈을 관념어를 그대로 제목으로 반영한 게 인상적이다. 독립, 예술영화를 비롯해 전 세계 작가주의 영화를 소개하는 창구로써 작가의 본래 의도를 살린 직역한 제목을 즐겨 써 온 영화제가 아닌가. 그런데 올해는 영화제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개막작부터 제목을 바꿔 달았다.

오로지 '있어 봬는', '힙해 보이는' 요소를 강조해 관심을 좀 끌어보려는 시도처럼 읽힌다. 민망하게도 이는 영화의 중심 줄기, 그러니까 영화의 주제의식에 정면으로 반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영화의 주제의식이며 맥락과도 관련이 없음은 물론이다. 제발 확연히 낫다는 확신이 없다면 원제를 그대로 풀어주면 안 될까.

전주국제영화제 지역 독립영화 관련 행사 사진
전주국제영화제지역 독립영화 관련 행사 사진전주국제영화제

#3. "그들만의 축제지, 뭐"

전주영화제는 틀림없이 올해도 성황을 이뤘다. 예매율이 80%를 넘겨 역대 최고치를 또 한 번 경신했고 출품작수 또한 1835편으로 역대 최다였다. 내가 들어간 상영관마다 좌석점유율이 9할 내외에 달해보였다. 예고된 일이다. 영화에 대한 관심은 급속히 졸아들지만 영화제는, 특히 부산과 전주 같이 규모 있는 영화제는 소위 힙쟁이들의 성지가 된 지 오래다. 올해도 영화제 굿즈는 완판행렬이 이어졌다. 실제로 영화제 첫날부터 굿즈샵 앞에 희귀템을 확보하려는 발 빠른 이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서 줄을 설 엄두도 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게 어디 전부일까. 전주에 갈 때마다 종종 찾는 가게들에 들러 영화제와 관련해 묻는 것은 내 주요한 일과다. 내 단골가게들은 영화제가 펼쳐지는 영화의 거리와는 못해도 2km 내외까지 떨어져 있는데, 불과 이 정도 거리를 걷는 동안 사람들이 급격히 사라진단 게 놀랍기까지 하다. 영화제를 찾은 이들이 주변 상권을 이용하는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란 건 전주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분투하는 이들에게 깊은 고민을 안긴다.

영화제 북쪽으로 난 오거리에 있는 콩나물국밥집 할머니는 "매년 영화제가 열리지만 체감은 전혀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영화제는 외지 젊은 사람들이 찾는 행사고 그들이 가는 가게는 따로 있다는 얘기다. 온라인에서 전주의 상징이라고 소문이 퍼진 몇몇 곳들, 아니면 서울 인기 상권과 다르지 않게 인테리어를 해둔 젊은 가게들에 간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내가 찾는 점포들은 또 그대로 지역 어르신들로 그득하니 둘 사이의 거리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전주 구도심이라는 동일한 공간에서 분명히 나뉘어 있는 층을 발견한다. 영화제를 즐기는 이들과 전주 사람들 사이에서 교류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니 곁에서 식사하던 손님 하나가 말을 받는다. "영화제도 뭐 서울 사람들이 하는 거지. 말만 전주영화제지 높은 사람들부터 싹 다 서울 사람들이 와서 운영하고 가잖아. 직원이랑 봉사자(지프지기)들도 외지인들이고. 우린 안 가 거기." 내가 느낀 위화감이 무언지를 알 것도 같았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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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