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혜란의 열연으로 풀어낸 제주 4.3의 아픈 역사

[리뷰] 영화 <내 이름은>

1948년에 제주도에서 발생했던 이른바 '4.3사건'은 몇 해 전에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아직도 그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적지 않다. 또한 이를 이념의 문제로 환치시켜 폄하하려는 일부 세력들의 그릇된 움직임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공권력에 의해 국민이 피해를 입은 이른바 '국가 폭력'의 사례들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과거사 진상 조사가 다방면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해당 사건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당시의 상황에 대한 실체를 밝히기 쉽지 않다.

9살 이전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살았던 최정순(염혜란 분)의 기억 찾기로부터 시작되는 영화 <내 이름은>에서, 영화를 연출한 정지영 감독은 1998년의 시점에서 과거를 더듬어 가는 방법으로 '제주 4.3사건'에 접근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정순의 아들인 이영옥(신우빈 분)의 고등학교 생활을 통해, 1998년 당시 학교 교육의 현실과 학교 폭력의 문제가 '4.3 사건'과 일정 부분 겹쳐지는 구도를 선보인다. 서울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전학을 온 김경태(박지빈 분)로 인해서, 절친이자 반장을 했던 고민수(최준우 역)를 제치고 영옥은 반장에 뽑히게 된다. 평화로웠던 교실에서 전학생인 경태로 인해 공공연하게 폭력이 조장되는 상황은 '제주 4.3사건' 당시 '외지인'들의 행위와 겹쳐서 형상화된 것이라고 하겠다.

더욱이 최정순의 기억을 찾기 위해 심리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 이희라(김규리 분)라는 인물이 경태의 어머니로 등장하는데, 그녀는 정순의 9살 이전의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에 절대적인 도움을 주는 존재이다. 어린 경태가 학교에서 폭력을 조장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반면, 그녀의 어머니 역시 외지인으로 정순의 기억을 찾고 '4.3사건'의 진상을 찾는 일에 도움을 준다는 구성인 것이다. 즉 '제주 4.3사건'은 외지인과 제주인의 갈등에서 비롯되었지만,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고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제주도 사람과 외지인의 공감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학교에서 절친인 영옥과 민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갈등을 조장하는 경태의 행동과 더불어, 잃어버린 정순의 기억을 되찾아주려고 노력하는 의사 희라는 모두 '외지인'이다. 심리 치료의 과정에서 정순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아들로 키우고 있는 영옥이 실은 세상을 떠난 딸의 자식으로서 정순의 손자임이 밝혀진다.

영화가 전개되면서 1948년 당시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외지인인 '서북청년단'과 군경에 의해 학살당했던 정순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대신하여 죽은 친구 정순의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왔으며, 손자이자 아들로 키운 영옥의 이름이 정순의 본래 이름이었음을 알게 된다. 가족과 마을 사람은 물론 자신을 대신해 죽은 친구까지 참혹한 현실 속에서 정순은 그때의 기억을 잃고 살 수밖에 없던 것이다. 본래 이름인 영옥이 아닌, 친구의 이름인 정순으로 살아야 했던 상황이 어느 정도 이해됐다. 아울러 경태로 인해 갈등 관계가 된 영옥과 민수가 경태와 그 일행들에 맞서 싸우는 모습은, 갈등을 조장하는 외지인에 맞서 친구 관계가 회복되는 서사로 진행된다.

영옥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 학교에 왔던 흰머리의 정순을 부끄러워했다는 내용이 둘의 대사로 제시되기도 하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 정순의 남편이 월남에 다녀온 이후 양 다리를 잃고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왔다는 삽화가 소개되기도 한다. 월남에서의 귀국 이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술을 먹고 폭력적으로 변한 남편의 모습에서 월남전으로 인한 현대사의 아픈 면모가 드러나기도 한다.

또한 폭력적으로 변한 아빠를 피해 광주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했다가,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온 딸이 낳은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키우는 영옥이었다. 임신을 해서 돌아온 딸의 애인이 광주에서 죽음을 맞이했으며, 영옥을 낳다가 딸이 죽고 그 다음날 남편 역시 고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정순의 고백이 이어진다. 이처럼 영화에서는 현대사의 아픈 흔적들을 정순과 그녀의 가족들에게 조금씩 겹쳐놓으면서, 1948년 '4.3사건'으로부터 비롯된 그녀의 삶이 우리의 힘겨운 역사와 함께 전개됐음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이해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화면에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기억을 잃은 노년의 역할을 한 배우 염혜란의 탁월한 연기덕분이었다. 어미를 잃은 손자에게 문득 떠오른 '영옥'이라는 이름을 붙여 자신의 호적에 올리고, 영화 초반에 자신의 이름을 부끄러워하며 개명을 하겠다는 손자 영옥의 모습이 삽화로 제시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머니이자 할머니인 정순의 가슴 아픈 과거의 사연을 알게 되면서, 손자 영옥은 할머니의 본래 이름도 되찾고 자신의 이름이 할머니와 같다는 사실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다.

영화 마지막에 출연진과 연출진들의 이름이 화면에 올라가는 내내 염혜란의 목소리로 부르는 김민가의 <친구>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화면에서 마지막 장면으로 이어지고 극장에 불이 켜질 때까지, 자리에 앉아서 그저 먹먹한 심정으로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아픈 역사의 한 장면을 오래오래 담아뒀다.
영화내이름은 정지영감독 영혜란배우 제주43사건 갈등과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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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고전문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로서, 주로 책과 영화에 대한 리뷰를 쓰고 있다.(순천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기자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도서 리뷰는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