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들은 왜 영진위에 화가 났나?

인식 차이 컸던 영진위-영화인연대 간담회

 지난 4월 30일 오전 전주에서 열린 영진위-영화인연대 간담회. 참석자들이 영화인연대가 보낸 공개질의서 대한 영진위의 답변서를 확인하고 있다.
지난 4월 30일 오전 전주에서 열린 영진위-영화인연대 간담회. 참석자들이 영화인연대가 보낸 공개질의서 대한 영진위의 답변서를 확인하고 있다.성하훈

[한상준 영진위원장] "임기 시작하면서부터 예산 확보는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영화계와도 뭐 충분(하게 협의)했는가는 잘 모르겠으나 9인 위원들과 협의해 그 해에 확보했습니다, 올해는 중예산 영화 지원 사업을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추가로 확보했습니다."

[영화인연대] "그게 영진위가 한 일입니까? 영화인들이 했습니다! 중예산 영화 지원 사업도 영화인들이 나서서 설득하고 해서 만들어진 예산입니다. 보수 정부가 서울독립영화제 예산 없애버린 거는 영진위가 나서서 복원했나요? 정부와 국회 설득하고 추경으로 회복한 거는 영화계가 했지 영진위는 안 했습니다"

지난 4월 30일 오전 전주에서 열린 영진위와 영화인연대 간담회가 끝난 직후 영화인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알맹이 없는 형식적인 답변만 계속돼 듣는 내내 답답하기만 했다"는 한 참석자의 말처럼 양측의 인식 차이는 컸다. 간담회가 끝난 직후 한상준 영진위원장을 비롯한 영진위 관계자들은 영화인연대의 강력한 문제 제기를 예상 못했던 듯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관련기사 : "부끄러운 줄 알아야..." 영진위에 불신 표한 영화인연대 https://omn.kr/2i0mh)

참석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영화인연대와 영진위의 견해가 크게 차이 나는 지점은 위원장의 소통 문제, 현안에 대한 이해 부족, 안일하게 진행되는 지원 사업, 영진위원들의 비전문성 등이었다.

영진위는 이날 영화인연대의 공식 질의에 대한 답변서를 간담회 참석자들에게 나눠 주고 한상준 위원장이 설명했으나 영화인연대는 조목조목 반박했다.

장관은 영화인 만나는데, 영진위원장은 안 만나

 지난 4월 14일 서울 인디그라운드에서 열린 최휘영 문체부 장관과 영화단체 인사들의 간담회
지난 4월 14일 서울 인디그라운드에서 열린 최휘영 문체부 장관과 영화단체 인사들의 간담회문화체육관광부

소통 문제에서는 한상준 영진위원장과 최휘영 문체부 장관이 비교됐다. "문체부 장관이 만난 영화인 횟수하고 위원장님이 만난 영화인 횟수 이렇게 비교해 보시면 아실 거다. 이렇게 만나지도 않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도 않는다"는 직설적인 비판을 면전에서 제기했다.

영화인연대 공동대표인 이동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는 '영진위원장보다 문체부 장관을 훨씬 더 많이 만났던 것 같다. 영화인들의 소리를 듣기 위한 자리 등을 문체부는 마련하고 있는데, 영진위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홀드백(극장 개봉 이후 온라인동영상서비스, IPTV 등등으로 넘어가기까지의 순차적 상영 방식)을 법제화 하려는 것에 대한 논란이 큰 상태에서 위원장의 처신에 대한 강한 유감 표명이 나왔다. 상영관의 입장이 주로 반영된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좋은 의견 많이 들었고 공부 많이 해야 되겠습니다'라고 한 게 영화계의 방향과 맞냐는 것이었다.

한상준 영진위원장은 "장관님께서 말씀하시는 거를 올바르게 가기 위해서 절차를 통해 기존에 있는 시스템을 밟아간다는 것이고 홀드백 문제 등 현안은 문화체육관광부하고 늘 함께 협의해서 가는 것이 저희는 절차에 맞고 그게 후유증이라든가 문제가 제일 적다"면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영화인연대는 국회 가서 문제 제기할 때 현장에 위원장님이나 위원이나 혹은 본부장이 같이 있었으면 우리 이런 이야기 안 한다며 영진위의 소극적인 태도를 거듭 질타했다.

 지난 2월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성평등센터 든든 정상화를 촉구하는 영화단체 기자회견
지난 2월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성평등센터 든든 정상화를 촉구하는 영화단체 기자회견성하훈

'성평등센터 든든'의 문제도 관점의 차이가 상당했다. 성평등센터의 경우 잘 운영돼 오던 것을 윤석열 정권에서 탄압의 도구로 활용했다는 게 영화인들의 인식이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지원이 끊긴 든든에 의지하길 원하고, 영화계는 이를 바로 잡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앞서 영화인연대와 여성영화인모임 등 단체들은 지난 2월 기자회견을 열고 성평등센터 정상화를 촉구했다. (관련기사 : "영진위의 성폭력 피해자 지원 약속, 국정감사 모면 위한 꼼수" https://omn.kr/2frhu)

한상준 영진위원장은 "그동안 많이 지적됐으나 직접적으로 특정 개인, 단체에게 유리하게 해야 된다라는 주장을 할 수 없게 돼 있다"며 위원장이라 할지라도 공평하게 경쟁을 해야 되고,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제작 예산 늘었어도 추가 투자 못받아 불용, 대책도 없어

중예산 영화 지원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추경에서 기존 200억보다 더 늘어난 260억이 편성됐으나, 영화인연대는 지원 이후 과정에 우려를 나타냈다. '어렵게 지원에 선정된 제작사들이 추가 제작비를 확보 못 해 지원금을 반납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이에 대한 대책 마련할 생각은 안 하고, 불용처리된 예산을 100억대 이상 영화에 지원하려고 한다'며 영진위를 질타했다.

 지난 4월 확정된 추경에서 영화 분야 예산
지난 4월 확정된 추경에서 영화 분야 예산문화체육관광부

법률안 개정과 예산 확보 등 정부와 국회를 상대하는 대관업무 등에 영화인들이 직접 나설 만큼 답답한 현실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영화인연대는 당번을 정해 요일별로 국회를 찾는 중이라고 한다. 지연스럽게 여러 기관과 단체의 대관업무를 볼 수 있게 되는데, 정작 실무 담당자가 있는 영진위가 제대로 일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동하 영화인연대 공동대표는 "영화인들이 각자 작업하는 것도 힘든데, 우리가 영진위 직원인가? 왜 우리가 이러고 있지? 영진위가 가야 되는데 우리가 이렇게 정부를 설득하려고 하고 있고 이런 얘기를 저희는 진짜 수도 없이 많이 했다"며 "현장 영화인들이 영진위 업무를 대신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정부가 바뀐 지 1년이 가까운데 영진위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상준 위원장은 "하나하나가 다 큰 문제들이라 여기에서 제가 책임감 있게 이렇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자체가 사실 상당히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면서 "지적하는 문제들이 우리가 생각하던 거 하고는 굉장한 차이가 있어 그 자체를 문제로 인식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전문가가 포함된 영진위원들이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가 제기됐다. 김대중 대통령 때 영화진흥공사를 영화진흥위원회로 바꾼 것은 민간 전문가들에게 책임을 맡기기 위함인데, 형식적으로만 할 뿐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상준 위원장은 보는 시각들이 크게 차이 날 수밖에 없다는 걸 느낀다며 영진위원들이 형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했으나, 이전에 영진위원을 역임한 간담회 참석자로부터 "상당히 좀 관행적인 답변이고 호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간담회에 참석한 권영락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운영위원은 '문제제기를 한 영화인들이 모두 한국영화의 인재'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영진위 차원의 각성을 요구했다.

이날 영진위에 강한 유감을 나타냈던 한 영화단체 대표자는 간담회가 끝난 후 "모르는 사람은 영진위가 일을 잘하고 있는 줄 알던데, 영진위의 무능이 제대로 드러난 시간이었다"고 촌평했다.

한편 영진위와 영화인연대는 조만간 다시 만나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정책 협의를 이어가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진위 영화인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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