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모델 출신의 신예 스타 소지섭과 1세대 걸그룹 핑클의 막내 성유리가 주연을 맡은 SBS 드라마 <천년지애>가 시청률 30%를 돌파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 배우로 변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성유리의 다소 어설픈 연기가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방영 당시 성유리의 시그니처 대사였던 "나는 남부여의 공주, 부여주다"는 그녀의 연기력 논란과 별개로 엄청난 화제 속에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천년지애> 이후 한 동안 뜸했던 '타입슬립' 소재의 드라마는 201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 중에는 <선재 업고 튀어>와 <내 남편과 결혼해줘>, <폭군의 셰프>, <어게인 마이 라이프>,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처럼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도 적지 않았다. 이제 시청자들은 더 이상 '타임슬립'과 관련된 드라마라고 해서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고 미리 겁을 먹지 않는다.
김병욱 감독과 함께 <순풍 산부인과>, <거침없이 하이킥> 등 레전드 시트콤의 각본에 참여했던 송재정 작가는 2012년 타임슬립 드라마 <인현왕후의 남자>를 통해 정극 드라마 작가로 자리 잡았다. 송재정 작가는 2013년에도 <인현왕후의 남자> 제작진과 의기투합해 또 한 번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를 집필했다. 이진욱과 조윤희가 주연을 맡은 tvN 드라마 <나인: 아홉 번의 시간 여행>(이하 <나인>)이다.
▲<나인>은 ,<유미의 세포들> 등의 각본을 썼던 송재정 작가가 2013년에 집필했던 드라마다.
<나인> 홈페이지
선악이 공존하는 다양한 매력을 가진 배우
대학을 중퇴하고 상경해 2002년 정재형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연예계에 데뷔한 이진욱은 광고와 연극, 단편영화 등에 출연하며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이진욱은 2006년에 방송된 SBS 드라마 <연애시대>를 통해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이진욱은 <연애시대>에서 인생에서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만난 이은호(손예진 분)에게 첫 눈에 반한 베일에 싸인 연하남 민현중을 연기했다.
<연애시대>를 통해 방송가에서 주목 받는 유망주로 떠오른 이진욱은 OCN 드라마 <썸데이>와 MBC의 <에어시티>, KBS의 <강적들>, <스파이 명월>, SBS의 <유리의 성>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그렇게 주연 배우로 꾸준하게 활동했지만 기대만큼 크게 도약하지 못하던 이진욱은 2012년로맨틱 코미디 <로맨스가 필요해 2012>에서 정유미와 좋은 연기 호흡을 보여주며 색다른 매력을 뽐냈다.
이진욱은 2013년 <나인>을 통해 처음으로 단독 주연을 맡았고 <나인>은 최고 1.7%의 낮은 시청률에도 탄탄한 각본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로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이진욱의 첫 번째 대표작이 됐다(닐슨코리아 시청률 기준). 2014년 영화 <수상한 그녀>와 <표적>에 출연한 이진욱은 2015년 드라마 <너를 사랑한 시간>에 이어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서 인상적인 등장 신을 보여주며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이진욱은 2018년 OCN 드라마 <보이스2>에서 장혁을 이은 남자 주인공 도강우 역을 맡았고 <보이스2>는 당시 OCN 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 기록을 세웠다. 2019년 <보이스3>까지 출연한 이진욱은 2020년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에서 그린 홈의 무력을 책임지는 편상욱을 연기해 시즌3까지 빠짐없이 출연했고 2023년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이두나!>에 특별 출연해 또 다시 '등장 신 장인'의 면모를 보여줬다.
이진욱은 2024년과 작년 <오징어게임2, 3>에서 혈액암을 앓고 있는 딸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게임에 참가한 246번 참가자 박경석을 연기했다. 특히 시즌2의 엔딩에서 총에 맞으면서 시즌3가 공개되기 전까지 시청자들에게 많은 추측을 자아내게 했다. 이진욱은 작년 8월 jtbc 주말드라마 <에스콰이어: 변호사를 꿈꾸는 변호사들>에서 법무법인 율림 송무팀의 파트너 변호사 윤석훈 역을 맡아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
장르물 재미에 멜로 요소까지 포함된 수작
▲이진욱은 <나인>에서 처음으로 단독 주연을 맡아 좋은 연기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tvN 화면 캡처
현재 tvN은 이병헌과 송혜교, 손예진, 현빈, 박신혜 같은 스타 배우들이 출연하고 김은숙과 김은희, 박지은 등 스타 작가들이 집필하는 드라마를 편성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하지만 <응답하라> 시리즈가 큰 사랑을 받기 전까지 tvN 드라마는 지금처럼 높은 인기를 끌지 못했고 오히려 이 때문에 제작사나 작가들이 지상파에서 하지 못한 과감하고 신선한 시도를 할 수 있었는데 <나인> 역시 그 중 하나였다.
2013년 3월 tvN 월화드라마로 방송된 <나인>은 1년 전 <인현왕후의 남자>를 함께 만들었던 김병수 PD와 송재정 작가가 1년 만에 재회한 작품이지만 0.6%의 시청률로 시작해 1.7%의 시청률로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나인>은 낮은 시청률과 별개로 장르물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특히 기자 출신 평론가 허지웅은 "5년간 나온 드라마를 합쳐도 <나인>에 미치지 못한다"고 극찬했다.
<나인>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방송국 기자이자 간판 앵커 박선우(이진욱 분)가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향을 발견하고 이를 이용해 집안을 몰락 시킨 원수에게 복수하고 자신과 가족들의 삶, 사랑을 찾아가는 드라마다. 스릴러 적 요소는 물론이고 박선우와 주민영(조윤희 분)의 멜로 요소까지 적재적소에 포함시켰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가 더해지며 끝까지 긴장감을 잘 유지했다.
<나인>은 3년 후 김은희 작가가 집필한 tvN 드라마 <시그널>이 큰 사랑을 받으면서 시청자들에게 재조명되기도 했다. 실제로 <나인>과 <시그널>은 바뀌는 것에 따라 현재에도 변화가 생기고 과거에 개입했던 인물이 원래 있었던 과거와 변한 과거를 모두 기억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나인>은 정확히 20년 전으로만 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시점이 수시로 바뀌던 <시그널>과는 차이가 있었다.
<나인>은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타임슬립 장르물의 수작'으로 평가 받았지만 2006년에 출간된 프랑스 소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표절 했다는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실제로 두 작품은 전반적인 설정과 전개에 있어 유사한 부분이 적지 않았고 제작사에서도 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왔지만 판권 구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원작자 기욤 뮈소 작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며 표절 논란은 커지지 않았다.
메인빌런 연기한 '출생의 비밀' 전문 배우
▲정동환 배우는 <나인>에서 한껏 과장된 표정 연기를 통해 빌런으로서 새로운 매력을 보여줬다.tvN 화면 캡처
데뷔 초 가수 이수영의 뮤직비오에 9편이나 출연하며 '이수영 뮤비 전담 배우'로 불리던 조윤희는 2012년 <넝쿨째 굴러온 당신>으로 주목을 받은 후 <나인>에서 주민영을 연기하며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 방송국 기자 선배인 선우를 짝사랑했다가 과거가 뒤틀린 후 선우를 연인이 아닌 삼촌으로 인식하게 된 민영은 마지막회에서 자신을 멀리하라는 선우의 유언을 어기고 다시 선우를 사랑하게 된다.
<가을동화>와 <겨울연가>, <최고다 이순신> 등 많은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나쁜 아버지 역할을 많이 맡았던 정동환 배우는 <나인>에서 메인 빌런 최진철 역을 맡았다. 최진철은 병원장이자 친구가 사망하자 병원을 양도 받은 후 비 윤리적인 방법으로 신약 개발에 성공하지만 선우의 노력 끝에 과거가 바뀌면서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되고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작년 <보물섬>으로 SBS 연기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배우 변신 후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박형식은 <상속자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전 <나인>에서 박선우의 고교 시절을 연기했다. <나인>이 주인공 박선우가 시간 여행을 하는 드라마인 만큼 어린 선우는 미래의 자신과 여러 차례 조우하는데 박형식은 미래의 자신을 만난 혼란스러움을 인상적으로 표현하면서 시청자들의 눈 도장을 찍었다.
<미스터 션샤인>에서 고종, <힘 쎈 여자 강남순>에서 남순이 아빠 역을 맡았고 최근 <21세기 대군부인>에서 신부 역으로 특별 출연했던 이승준은 <나인>에서 선우의 절친이자 신경외과 전문의 한영훈을 연기했다. 영훈은 '신의 영역'에 해당하는 시간 여행을 시도하는 선우를 말리면서도 가장 가까이서 선우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주로 박형식과 연기 호흡을 맞춘 한영훈의 아역은 신인 시절의 이이경이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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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슬립' 장르물, '시그널' 전에 '나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