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라고들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0년 부산 북·강서을 선거구에 출마하기로 결정했을 때 말이다. 종로구 의원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으로 직을 상실해 생긴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의원으로 복귀한 지 2년 만이었다. 충분히 다시 당선을 노려볼 수 있었던 그 자리를 던지고서 노무현은 택한 곳은 험지 부산이었다.
1988년 청문회 스타로 일약 전국구 스타가 됐던 그가 구태여 당선을 넘보기 어려운 부산으로 향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그곳에서 싸우고 낙선했다. 직전 총선보다 득표율이 5%p 가량 오르기는 했으나 역부족인 패배였다. 그러나 바로 이때 얻은 자산이 2년 뒤 대선에서 가히 신드롬이라 해도 좋을 '노풍'의 배경이 됐다.
정치에 관심을 둔 이라면 많이 들어보았을 얘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으로 향한 결정적 이유가 '지역주의 타파'라는 것, 해당 선거가 지역주의 조장과 타파의 싸움이었단 것 말이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건 그 다음이겠다. 부산 북·강서을 선거구에선 이후에도 민주당계가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북구와 강서구을로 나뉜 지난 총선에서도 두 곳 모두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다. 바보 노무현의 도전은 그를 대통령으로 이끌었을지 몰라도, 그가 맞서 싸웠던 지역주의는 20년이 더 되도록 공고하기만 하다.
▲빨간 나라를 보았니스틸컷
트리플픽쳐스
민주당계는 모두 죽는 땅, '빨간 나라' 경상북도
사람들은 말한다. 저기는 '빨간 나라'라고. 그 반대편은 '파란 나라'라고 말이다. 어찌됐든 경상도와 전라도를 서로 나라라 부를 만큼, 두 지역 간 정치적 선택은 극명히 엇갈린다.
<빨간 나라를 보았니>는 방송작가 출신 홍주현 감독의 신작 다큐다.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 경상도, 그중에서도 국민의힘의 견고한 텃밭 경상북도를 다룬다. 민주화가 이뤄진 이래 민주당계 정치인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사례가 단 한 건 뿐(15대 총선 안동갑 권오을)인 이곳에서 여전히 링 위에 오르고 있는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은 어째서 승리를 기대할 수 없는 싸움을 하는가. 수확을 기대할 수 없는 파종을 하는 농부가 있다는 이야기를 나는 들어본 일이 없다. 이 영화가 궁금해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작은 부부 정치가 임미애와 김현권이다. 임미애는 지난 22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당선돼 국회에 입성한 제법 이름난 이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이화여자대학교 총학생회장이었음에도 1980년대 주요 대학교 학생운동 리더들과는 달리 남편 김현권을 따라 지방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살았다. 그랬던 그녀가 지역을 넘어 정책정당을 표방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북 의성군의회 선거 출마를 시작으로, 정치 무대에 나선다. 영화는 2022년 경북 도지사 선거 후보로 나선 임미애와 2024년 22대 총선에서 경북 구미시을 후보로 뛴 김현권의 선거운동 과정을 뒤따른다.
▲빨간 나라를 보았니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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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버린 땅에 버티고 선 이들이 있다
이들이 맞닥뜨리는 민심은 타지에선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대놓고 거부감을 표하고, 지지하는 이들은 소리 내어 그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빨간 나라에서 파란 마음을 가지고 사는 건 불편, 혹은 그 이상을 감수하는 것이라는 듯 지난 삶 가운데 학습한 빨갛고 파란 것을 대하는 자세가 자연스레 묻어난다.
그저 임미애와 김현권만이 아니다. 안동과 포항, 구미 등 경북 각지에서 후보로 나선 후보들의 사정과 이들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감내하는 까닭도 등장한다. '험지가 아니라 사지'라 말하는 후보들은 제 노후를 위한 적금을 깨고 빚을 지면서까지 불리한 싸움을 이어간다. 누군가는 파란 정당 지지를 드러낸 이는 지역에서 작은 활동조차 마음껏 할 수 없다고 말하고, 또 누구는 저보다 나은 후보감들을 찾아 출마를 부탁해보았으나 응하는 이가 없어 제 자식을 대신 바쳤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있어 무투표당선은 한국 민주주의의 퇴보다. 어느 정당을 지지하고 그렇지 않고를 넘어서 특정 정치세력이 제가 나고 자란 고장을 사유화하고 돌보지 않는 것을 참을 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수고로움도 공고한 지역주의가 빚은 현실과 맞닥뜨리면 아무렇지 않게 깨어져 나가는 것이다.
▲빨간 나라를 보았니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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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할 줄 알면서도 전장에 나서는 군인처럼
<빨간 나라를 보았니>는 어떤 영화인가. 반대편에 선 이들은 이를 두고 프로파간다라고, 노골적으로 편향된 작품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나는 얼마쯤 그것이 사실이라고 여긴다. 영화 속에서 민주당 후보와 당원들은 진심이 절절이 묻어나는 의로운 이들인 반면, 반대편에 선 이들은 하나 같이 뻔뻔하거나 포악하게 그려지는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경주하는 장, 그러니까 경북의 투표권자들은 너무나 무지하며 무관심하게만 그려진다.
영화가 그저 가벼운 대사로 치고 지나가는 '우리당이 우리를 버렸다고 생각해요'와 같은 말은 그저 그처럼 스리슬쩍 사라져선 안 되는 것이 아닌가. 또 반대편에도 지역을 위하는, 진짜 정치를 하려 하는 이가 아주 없을까. 적어도 그를 찾아보려는 노력을 해보기는 하였는가.
그러나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이에 대한 비판보다 유효하고 긴요하다. 낙향한 농사꾼, 또 작은 학원을 운영하며 살아가던 임미애와 김현권을 정치판으로 불러온 건 영화가 따로 언급하지 않는 열린우리당이다. 이제는 지역주의를 끝내야 한다고, 정책정당이 정치 일선에서 싸워나가야 한다며 등장했던 이 정당의 해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얼마나 가슴 아파 하였던가. 그 처참한 파당의 결말을 뒤로 하고 경북은 더욱 공고해진 빨간 세력의 아성이 되어 버렸다. 그것이 한국이 민주주의를, 공동체의 통합을 해한단 걸 알기에 어떤 이들은 기꺼이 패배하는 싸움에 나선다. 제가 썩어 거름이 되길 기대하며.
▲빨간 나라를 보았니포스터트리플픽쳐스
가장 참혹한 땅에 의인이 있다
어느 특정 정당을 추켜세우는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가 작게 다루고는 있으나 아주 외면하지 않는 건 오늘의 민주당이 지역주의에 저항하지 않고 의로운 이들을 거의 버려두고 있는 광경이기도 하다. 요컨대 민주당의 분투가 아니다. 지역주의에 맞서 스스로를 던지는 이들이 민주당의 옷을 입고 있을 뿐이다. 때로 균형을 잃고 가끔 초점이 흐려지기도 하지만 홍주현 감독의 영화는 빨간 나라가 아닌 대한민국 경상도를, 우리의 마땅한 민주주의 공화국을 지켜내려는 이들의 외로운 싸움을 담아내고 있다. 그게 어딘가.
누구도 돌보지 않는 땅은 폐허가 된다. 제가 사는 땅을, 제 이웃과 형제가 사는 곳을 폐허로 버려둘 수 없는 이들이 이 영화 안에 있다. 수시로 땅을, 밭을 탓하고 싶어지겠으나 끝끝내 스스로를 낮추며 무릎 꿇고 절하는 이들이 이 다큐 앞에 제 속내를 털어낸다. 나는 그를 들을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여긴다. 민주당이고 국민의힘이고, 좌고 우고, 무당파고 중도고 간에 우리 모두는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때문이다. 우리 공화국, 그를 지탱하는 민주주의와 다원주의의 질서 가운데 중한 것이 이들의 수고로써 겨우 지켜질 수도 있는 까닭이다.
또한 나는 감독이 영화의 말미에 비춘 것처럼 '파란 나라를 보았니'도 반드시 제작해야 한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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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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