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여공들의 새벽, 탱고로 버티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1332] <새벽의 Tango>

모든 작품엔 출발지가 있다. 어떤 영화는 배우로부터, 어떤 영화는 실화가, 또 어떤 영화는 장소가 출발지가 된다. 이 영화 <새벽의 Tango>의 경우엔 춤, 곧 'Tango'가 출발지임을 알겠다. 아마도 영화를 본 모두가 그를 알아차렸을 테다.

편의를 위해 지금부터는 '탱고'라고 쓰겠다. 아니 '땅고'라 하는 편이 낫겠다. 영화 안에서 인물들이 땅고라고 발음하고, 이 춤의 발원지인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스페인어권 전반에서 땅고라 불리기 때문이다. 아마도 영화가 제목에서 땅고를 구태여 알파벳으로 적고 있는 건 외국어표기법에 따르지 않고 본래의 발음으로 불렸으면 하는 바람 때문일 테다.

사실이 그렇다. 세상이란 어찌나 폭력적인지, 나약한 인간에겐 제 모습 그대로 살아가길 허락하지 않는다. <새벽의 Tango> 속 인물들의 일터, 그러니까 어느 공장의 모습도 얼마 다르지 않다.

새벽의 Tango 스틸컷
새벽의 Tango스틸컷㈜스튜디오디에이치엘

공장 여공과 춤, 그 부조화스런 조화

이달 개봉한 김효은 감독의 신작 <새벽의 Tango>는 땅고를 소재로 한 장편영화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오로지 돈만 벌려고 하는 듯한 여자 지원(이연 분)이 숙식을 제공하는 공장에서 일하며 맞이한 이야기를 다뤘다. 나름 공과대학을 졸업한 지원은 이 공장에선 제법 엘리트로 분류되는 듯, 입사와 동시에 조장 직책이 주어진다. 그런데 그 조장이란 게 혼자서 하는 건 아니라고. 그녀의 조엔 한참 먼저 들어온 조장 한별(박한솔 분)이 있다. 이십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조장을 맡고 있는 한별과 함께 조를 이끌어달라는 게 반장(진수 분)의 부탁이다.

그냥 조용히 지내며 돈만 벌고 싶은 지원이지만 거절할 명분이 없다. 한별은 그저 제 권한을 나눠가진다는 것만으로 지원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원리원칙대로 하려는 지원에게 사사건건 어깃장을 놓는 것도 그래서일 테다. 일터에서의 쓸 데 없는 신경전과 함께 지원 곁에 생겨나는 관계를 영화는 가만히 비추어간다.

지원의 숙소는 3인1실이 원칙인 듯하다. 룸메이트는 다른 조 소속인 현미(박서은 분)와 같은 조 주희(권소현 분)인데, 주희는 제가 지원과 동갑이라며 적극적으로 다가와 친한 척이다. 좀처럼 곁을 주지 않으려는 지원의 거리두기도 인간 리트리버 같은 주희 앞에선 도무지 먹혀들지 않는다. 그로부터 영화는 지원과 주의 사이에 깊어지는 관계, 또 회사에서 맞이하는 한별과의 불협화음, 그 사이의 균열로 이어진다.

새벽의 Tango 스틸컷
새벽의 Tango스틸컷㈜스튜디오디에이치엘

깨어지고 비틀리며 이어지고 끊어지는

유리창에 난 균열처럼 이들의 관계는 벌어지기만 할 뿐이지 메워지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제 배를 까서 보이는 주희와 까닭 없이 모두에게 발톱을 드러내는 한별 사이에서 지원이 겪는 일들이 다사다난하다. 영화제서 먼저 작품을 본 이 중 다수가 캐릭터가 작위적이란 얘기를 하였던 것도 이 때문일 테다. 지원을 둘러싼 인물들은 주역이라 할 만한 주희와 한별부터 조연인 현미나 우반장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모습으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주희와 한별이 그러하니 영화 내내 받는 인상이 작위적이라 느껴질 밖에 없다. 일부라도 인물들을 평면이 아닌 입체적으로 설정했다면, 개성만 지나치게 강조하기보다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일부라도 마련했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게 분명하여 아쉬움이 크다.

무튼 영화는 이들의 관계가 깨어지고 비틀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사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건 공장이라는 장소, 또 일터다. 사람을 사람이 아닌 기계처럼 대하는 곳이다. 생산량이 절대적 기준이 되고, 인간은 부품처럼 정해진 작업에 매진해야 한다. 하얀 방진옷을 뒤집어쓴 직원들에게 개성은 돌출되지 않는다. 감독 스스로가 그를 강렬하게 표현하고 싶었던 듯, 주연이 아닌 대부분의 인물은 마치 길 가에 널린 돌멩이처럼 보여질 뿐이다.

이곳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공장을 배경으로 한 한국 독립영화 대다수가 그러하듯 산업재해와 그 처리방식이 이 영화에서도 비판적인 시각에서 그려진다. 회사는 사고를 축소하려 하고 산업재해로 처리조차 않으려 든다. 심지어는 직원인 주희의 개인적 과실로 일어난 일이라며 아예 구상권을 청구하겠다고 한다. 요즈음에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지만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종종 보고되던 문제였다. 공장에서 직원의 과실로 다른 직원이 피해를 입는 경우 과실이 있는 직원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보상토록 하고 회사가 면피하는 사례 말이다.

새벽의 Tango 스틸컷
새벽의 Tango스틸컷㈜스튜디오디에이치엘

노동영화와 우정영화 사이에서

영화 속 결정적 사건이 꼭 그러하다. 껄끄러운 성격의 룸메이트 현미의 동생 현우의 손가락이 잘리는 사건이 이들이 일하는 공장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주희가 수리 중인 기계의 작동버튼을 누른 게 문제였다. 주희가 버튼을 누르기까지 한별의 잘못된 정보 제공과 지시가 영향이 있었으나 한별은 제 책임이 없는 양 모른척한다. 사람 좋은 주희는 그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고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다. 월급이 차감되고 현우에게 협박 아닌 협박까지 받는다.

<새벽의 Tango>가 노동영화라고는 말하기 어렵겠다. 분명 영화 가운데 발생하는 사건은 산업재해와 부당한 회사의 책임회피, 또 회사 내에서 발생하는 갈등이지만 정작 주목하는 건 그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산재를 갈등의 재료로 활용할 뿐, 그 문제에 깊이 다가서지 않는다. 회사의 부당한 압력과 면피행위는 몇 장면으로 치워지고, 그 대신 부각되는 건 주희를 바라보는 지원, 그리고 이들 사이에 싹트는 관계다.

회사와 한별의 부당한 요구를 그저 감내하기만 하는 주희가 이해되지 않는 지원이다. 그러나 그저 그렇게 하겠다는 주희의 곁에서 다른 수를 쓸 방도가 없다. 대신 그녀를 응원하기 위해 함께 취미생활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영화가 땅고와 관계 맺는 방식이 이렇다.

새벽의 Tango 포스터
새벽의 Tango포스터㈜스튜디오디에이치엘

어디 땅고 한 번 땅겨 보실래요?

그렇다. 영화는 지원이 주희와 함께 땅고를 추는 이야기다. 아마도 땅고로부터 출발했음이 짐작되는 장면들, 그러니까 사람과 다른 사람이 손을 마주 잡고 나아가고 물러서며 호흡을 맞추는 과정이 인상적으로 담긴다. 땅고를 제대로 춰본 사람이라면, 또 그 매력을 아는 이라면 반드시 이를 영화 안에 담고 싶은 욕심이 생기겠다 싶은 순간도 없지 않다. 두 사람이 집과 회사 사이 공원에서 손을 맞잡고 나아가고 물러서며 춤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신선하다. 회사와 버거운 일상이 시작되기 전, 또 직장으로부터 벗어난 뒤의 시간인 새벽이 땅고로 인해 풍요로워진다.

한국 영화계에서 조금씩 제 존재감을 알려가고 있는 가능성 있는 배우 이연과 이제는 아이돌보다는 배우란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권소현의 연기가 캐릭터보다 빛난다. 땅고와 산업재해, 그리고 청춘 여성들의 관계와 삶이라는 엇갈리는 소재들을 어떻게든 그러모아 전진하는 영화다. 작위적이란 말을 들어도 반박의 여지없는 캐릭터와 무엇에 집중할지 갈팡질팡하는 서사 가운데 분명히 부각되는 건 새벽 공원에서 둘 사이의 땅고다. 그 순간만큼은 이 영화가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무엇을 위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아주 길을 잃은 영화라고는 하지 못하겠다. 적어도 가능성 있는 소재 하나로 장편영화를 뚝딱 만드는 추진력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영화 가운데는 분명히 이 시대에 존재하는 길 잃은 청춘들이, 보답 받지 못하는 선의와 아무렇지 않게 희생되는 아까운 것들이 담겨 있다. 사람을 사람이 아닌 도구며 재화로 대하는 체제의 문제 또한 유효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겠다. 그 모든 어려움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만 있다면 버텨낼 수 있으리란 생각 또한 틀리지가 않다. 그러니 이 영화로부터 좋은 감상을 가져갈 이도 있을 테다. 다만 더 나아질 수 있었음을 아쉬워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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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