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의 피아노가 하나의 유기체로 숨쉬던 밤

라베크 자매 투 피아노즈(Two Pianos) - 필립 글래스의 장 콕토 3부작

 라베크 자매 투 피아노즈(Two Pianos) - 필립 글래스의 장 콕토 3부작
라베크 자매 투 피아노즈(Two Pianos) - 필립 글래스의 장 콕토 3부작염동교

시인이자 디자이너, 영화 감독으로 재능을 만방에 떨쳤던 20세기 프랑스 예술계의 기린아 장 콕토. 단순한 구조와 반복의 미니멀리즘을 토대로 20세기 미국 현대음악거장으로 부상한 필립 글래스. 조지 거쉬윈과 스팅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스타일로 듀오 피아노 미학을 설파해온 라베크 자매(Katia and Marielle Labèque). 20세기 위대한 네 예술가가 영혼의 교류를 나눈 듯한 2시간이었다.

2026년 4월 26일 LG아트센터 서울서 열린 "라베크 자매 투 피아노즈(Two Pianos) – 필립 글래스의 장 콕토 3부작"은 글래스가 1993년부터 1996년에 걸쳐 쓴 오페라에 기초한다. 세 개의 오페라는 각각 콕토의 두 영화 < 미녀와 야수(La Belle et la Bête) >(1939), < 오르페(Orphée) >(1950) 그리고 1929년도 소설 < 앙팡테리블(Les Enfants terribles) >에서 영감을 얻었다.

콕토의 놀라운 서사와 상상에 매료되었던 글래스는 미국과 프랑스, 절제와 무한 등 어쩌면 반대 축에 놓인 듯한 프랑스 예술인의 작품을 자기 방식대로 해석했다. 1960년대에 프랑스 작곡가 나디아 불랑제에게 사사하기 전부터 글래스의 프랑스 문화를 향한 관심은 깊었다고. 고유한 음악성에 프랑스적 예술성을 결합한 오페라 연작은 필립 글래스 앙상블의 음악 감독인 마이클 리스만의 편곡 작업을 통해 라베크 자매의 듀오 피아노로 환생했다.

영감의 꼬리를 문 이 작품은 < 앙팡테리블 >이 발표된 근 100년 만에 라베크 자매의 듀오 피아노 콘서트로 서울에 당도했다. 다시금 시대와 국가를 경유한 영혼의 교분처럼 느껴진 이유. 2025년 7월 열린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30 손민수 & 임윤찬" 듀오 리사이틀이 공존을 위시한 개인성의 발로였다면 라베크 자매는 그야말로 유기체 같은 합일의 연주를 선보였다. 두 대의 그랜드 피아노도 관객석에서 바라볼 때 하나의 기다란 단일체로 보였다.

가락을 주고받는 콜 앤 리스폰스와 동일한 멜로디를 동시에 치는 하모니의 섬세함에서 라베크 자매의 호흡은 대단했다. 글래스 고유의 미니멀리즘을 골자로 한 작풍 덕에 선율이나 기교가 도드라지진 않았으나 카티아 라베크의 저음부 타건에 격정이 스며들었으며 이에 대한 마리엘의 완급 조절이 조화로웠다.

 라베크 자매 투 피아노즈(Two Pianos) - 필립 글래스의 장 콕토 3부작
라베크 자매 투 피아노즈(Two Pianos) - 필립 글래스의 장 콕토 3부작염동교

1부의 절반쯤 지났을까 잠시 눈을 감고 콕토의 영화를 상상했다. 어릴적 읽었던 < 이제하의 시네마 천국 > 속 < 미녀와 야수 > 스틸 이미지가 떠올랐다. 팜플렛을 확인해보니 딱 그 시점이 필립 글래스가 < 미녀와 야수 >에서 영감 받아 지은 악곡을 라베크 자매가 연주했던 타이밍. 사이사이 흐른 불어 낭독은 콕토의 음성으로 작품의 심상과 걸맞은 내용을 인터뷰에서 인용한 것.

2부 < 앙팡 테리블 >은 유희와 파괴, 죽음을 다룬 만큼 1부에 비해 날카롭고 냉철했다. 중반부는 마치 스릴러 영화의 필름스코어처럼 스산한 기운에 괜스레 몸이 떨려왔다. 마이클 리스만이 작업한 초연이 성공을 거둔 < 앙팡 테리블 >은 나머지 두 작품의 시발점이 되었다.

평소 LG아트센터의 다른 공연보다 낮은 명도의 암흑에 니나 샬로가 주조한 무대미술이 선명했다. 샹들리에 혹은 연회장의 드레스 같은 천장 구조물은 시시각각 색깔을 달리하며 몽환과 신비를 가져다주었다. 2부에 백의(白衣)를 맞춰 입고 온 자매와 구조물의 붉은 조명이 강렬한 시각 경험을 선사했다.

 라베크 자매 투 피아노즈(Two Pianos) - 필립 글래스의 장 콕토 3부작
라베크 자매 투 피아노즈(Two Pianos) - 필립 글래스의 장 콕토 3부작염동교

흉측한 자기 모습을 비관하는 < 미녀와 야수 >, 질타와 의심 속에 고통받는 예술가의 이야기 < 오르페 >, 유년기의 아픔을 모태로 한 < 앙팡 테리블 > 모두 존재의 취약성을 근본으로 한다. 중독과 상실, 질병을 거듭했던 콕토 삶의 징표기도 하다. 그런데도 인생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찬미했던 콕토의 정신이 필립 글래스와 라베크 자매를 거쳐 나에게까지 전이되어 절망에서 느낀 여러가지 아름다운 감정을 상기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 클래시컬 뮤직의 대선배 모리스 라벨을 들려준 두번째 앙코르까지 풍성했던 공연 종료 후 사전 구매했던 라베크 자매의 < 필립 글래스 / 콕토 트릴로지(Philip Glass / Cocteau Trilogy) > 레코드에 사인받았다. 3개의 엘피가 들어가 있는 거대한 분량의 대작을 감상할 생각에 흥분감이 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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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염동교라고 합니다. 대중음악을 비롯해 영화와 연극, 미술 등 다양한 문화 예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