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탄 장애인이 주인공, 연극의 반전은 마지막에 있다

[공연 리뷰] 연극 <제일 가까운 장애인 화장실이 어디죠?>

안데르센이 쓴 동화 <인어공주>에서 공주는 왕자님을 위해 기꺼이 목소리와 두 다리를 잃는다. 하지만 연극 <제일 가까운 장애인 화장실이 어디죠?>(천쓰안 작, 강보름 연출,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2026.4.25~5.3)에서 뇌병변 장애 주인공인 청즈(조우리 분)는 이렇게 외친다.

"난 절대로, 왕자님을 위해서 내 목소리와 두 다리를 잃지 않으리라. 그 어떤 것을 위해서라도 내 목소리를 잃지 않으리라."

연극 <제일 가까운 장애인 화장실이 어디죠?>는 베이징 출신 작가 천쓰안의 작품으로 현재 중국에서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자오홍청의 실화가 바탕이 된 극이다. 중국에서는 이 작품이 모노드라마 형태였는데 한국에서는 주인공의 대사를 3명이 나누어 말하는 방식으로 극이 올려졌다. 이것은 장애인 당사자의 발화에 그치는 게 아니라 연대의 의미를 감각 시키려는 강보름 연출가의 새로운 해석과 의지가 담겨있다.

지난 26일 공연에서는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는데 중국에 있는 천쓰안 작가와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관객과 직접 대화하는 시간도 마련되었다.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중국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시설이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4월 26일(일) 관객과의 대화.  중국에 있는 천쓰안 작가와 실시간 질의응답 시간.
4월 26일(일) 관객과의 대화. 중국에 있는 천쓰안 작가와 실시간 질의응답 시간.최성문

몸에 대한 수치심을 강화시키는 세상

연극의 첫 장면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강연 장소인 대학로예술극장으로 오는 청즈의 모습을 마치 실시간 촬영인 것처럼 영상으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휠체어를 타고 와야 하는 청즈의 여정은 온통 고난의 연속이다. 계단을 오를 수 없으니 엘리베이터만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영상이 끝나면 휠체어를 탄 청즈가 무대로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극이 시작된다.

연극의 무대는 빈공간이다. 무대 세트가 하나도 없는 곳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 배우 한 명과 비장애인 배우 두 명이 공연을 이끌어간다. 관객석은 'ㄷ'자로 빈 공간을 감싼 형태로 놓여 있다. 그런데 관객석은 프로시니엄 무대(객석에서 볼 때 원형이나 반 원형으로 보이는 무대-기자주) 아래 있지 않고 무대 위에 새롭게 설치됐다. 이것의 비밀스러운 감동은 마지막에 밝혀진다.

장애인에게는 절대 편리하지 않은 장애물이 많은 세상을 뚫고 약속 장소로 오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장애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 또한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일 것이다. 연극은 만약 내 자식이 장애인이라면 어떤 걸 가르칠까 생각하게 한다. 연극 속 엄마는 청즈에게 늘 치마를 입지 말라고 당부한다. 또한 강하고 센 척하지 말고 약한 모습을 보여서 남들이 도와주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고, 그래야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청즈는 오랜 시간 엄마의 수치심과 회피를 감당하고 소화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낸다. 청즈를 향한 엄마의 생각과 태도는 약자와 소외계층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에 바탕한 것일 수도 있다. 연극은 청즈의 약하고 짧은 기형의 다리를 아무 거리낌 없이 쳐다보는 사람들, 강연 장소에 도착한 청즈에게 자신의 방식대로 무리하게 도움을 주려는 스태프 등의 모습을 통해 평소 장애인들을 향한 각자의 생각과 시선을 조명한다.

연극 <제일 가까운 장애인 화장실이 어디죠?> 포스터
연극 <제일 가까운 장애인 화장실이 어디죠?>포스터프로젝트레디메이드

쾌락을 원하고 즐길 가치가 있는 몸

청즈의 소원은 두 다리로 서는 것이다. 그래서 과감히 다리 교정 수술을 선택한다. 수술에 성공했지만 평생 교정기와 보행 보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나중에 그녀는 "만약 자신이 쾌락을 누릴 능력과 자격이 있다는 걸 일찍 깨달았다면 수술받지 않았을 거야"라고 말한다. 장애인을 향한 사회적 편견은 장애인 당사자에게도 주입되어 자기 몸에 대해 더 왜곡된 생각을 갖게 한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인 자아 정체성 확립의 과정을 몇 겹으로 더 어렵게 하는 방해물이 된다.

사람들이 장애인에게 궁금한 것 중의 하나는 섹스일 것이다. 연극 속 청즈는 '사람들은 자신이 섹스할 수 있다는 게 무슨 대단한 미스터리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고 말한다. 청즈와 애인인 비장애인 샤오리펑과의 첫 섹스 장면은 특별할 것 없는 누구나 일반적으로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인다. 청즈는 샤오리펑을 통해 긴장을 풀고 신체접촉에 적응하며 해방과 희열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청즈의 경우는 행운의 상황일 것이다. 장애인도 섹스하는, 쾌락을 원하고 즐길 가치가 있는 몸이라는 시각은 앞으로도 계속 세련된 형태로 반복적으로 이야기되고 확장되어야 한다. 비장애인들뿐만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들의 인식 개선에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마음껏 휠체어를 굴리기를 바라며

이 극은 장애 여성의 자기 정체성 확립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준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즉 엄마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줄 것을 바라는 화해의 과정이다.

청즈는 강연을 준비하면서 두 개의 원고 중에서 어떤 것을 고를지 고민한다. 하나는 모두가 기대하는 밝고, 긍정적이고, 따뜻하고, 용감한 장애인 서사. 다른 하나는 가슴 속에 오래 묻어둔, 감히 말하지 못한, 상스러운 욕도 담긴, 엄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청즈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원고는 모두 진실이지만 한쪽만 이야기한다면 둘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은 어쩌면 두려움을 수반한 감동일 것이다. 청즈는 강연을 준비하면서 장애가 있는 자신의 몸을 새롭게 성찰한다.

"이 세상엔 애초에 장애란 병은 없었다. 장애는, 내가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환자를 대하는 시선으로 나 자신을 대하지 않는 것, 그건 내가 바꿀 수 있는 사실이다."

연극 <제일 가까운 장애인 화장실이 어디죠?> 공연 사진
연극 <제일 가까운 장애인 화장실이 어디죠?>공연 사진최성문

다양한 움직임을 소화할 수 없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주인공의 연극을 소극장이 아닌 대극장에서 올린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청즈가 강연 요청을 받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 강연 무대에 서는 마지막 장면이 대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색다른 감동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청즈가 휠체어를 뒤로 돌려 중앙에 위치하면 그동안 내내 닫혀있던 무대 뒤의 커튼 막이 열린다. 막이 열리고 관객이 보는 것은 대학로예술극장의 수많은 빈 관객석이다. 연극을 본 관객들은 동시에 청즈의 눈이 되어 관객(빈 관객석)을 쳐다보는 것이다. 이것으로 연극은 끝이 난다.

연극의 제목은 '제일 가까운 장애인 화장실이 어디죠?'이다. 이것은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묻는 단순한 질문이 아닐 것이다. 제일 가까운 장애인 이웃이 누구인지, 장애인의 필요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장애인과 진정한 친구가 되어 살고 있는지를 묻는 은유의 표현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https://blog.naver.com/choismoon에도 실립니다. 글쓴이는 연극평론가입니다.
제일가까운장애인화장실이어디죠 장애연극 연극 공연 연극평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