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기자다워지고 싶다"... 이 연극이 던진 질문

[리뷰] 연극 <빅 마더>

미국 대선을 앞두고 현직 대통령의 성추문이 터진다. 국민들이 집권 여당과 대통령에게 실망할 때, '투명사회연합'이라는 군소 정당이 파격적인 공약과 함께 대선후보 머서를 내세운다. 대통령이 되면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검색을 비롯한 알고리즘으로 모든 정책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뉴욕 탐사보도'의 편집국장 오웬은 해당 공약에 합당한 지적을 한다. 정책을 결정하는 알고리즘은 누가 관리하는가, 알고리즘에서 모순된 결과가 나온다면 정책은 어떤 방향을 우선시하는가 등이다. 투명사회연합 당대표는 이 같은 지적에 논점을 회피하며 답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투명사회연합에 열광한다.

지난 23일 관람한 서울시극단의 연극 <빅 마더>는 다른 연극과 달리 동시대를 다룬다. 극 중 상황은 현실과 같다. 혼란스러운 정치 국면 속 언론의 신뢰도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진실을 파헤쳐야 하는 기자들은 광고와 매출 압박에 시달린다.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할 때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사실과 진실의 차이였다. 사실(fact)는 육하원칙에 의해 일어난 일, 즉 바뀌지 않는 발생한 일을 뜻한다. 진실(truth)은 사실을 바탕으로 해당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 그래서 일어난 파장과 앞으로 어떤 일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나타낸다.

그렇게 기자는 사실을 근거로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고 배웠지만, 오히려 기자가 된 이후 고민에 빠졌다. 사람들이 뉴스를 믿지 않는 지금 현실의 언론에서 '진실'을 외치는 건 어떤 의미일까?

연극 <빅 마더> 공연사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진행된 연극 <빅 마더>에서 알렉스 쿡을 연기한 배우 김세환(왼쪽)과 케이트 블랙웰을 연기한 배우 최나라의 공연 사진이다.
연극 <빅 마더> 공연사진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진행된 연극 <빅 마더>에서 알렉스 쿡을 연기한 배우 김세환(왼쪽)과 케이트 블랙웰을 연기한 배우 최나라의 공연 사진이다.서울시극단

기술의 발전을 담은 동시대의 연극

알렉스는 대통령의 성추문을 일으킨 동영상이 조작됐다는 것을 알아낸다. 범인까지 유추해 이를 보도하며 단번에 스타가 되지만, 범인이 다른 사람으로 밝혀지며 역풍을 맞는다. 헌드레드 몽키라는 투명사회연합의 인터넷 대행사가 여론을 조작하자, '동영상이 조작됐다'는 사실조차 묻혀버린다.

이건 알렉스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더 이상 수용자, 독자가 언론사 및 기자가 생산하는 기사를 믿지 못하게 된 환경의 탓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환경을 만들어낸 건 기자들이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자극적으로 꾸며 보도하고, 틀린 사실을 정정하는 데는 소극적인 태도가 수용자로 하여금 언론 기사를 의심하게 만든다.

더불어 언론인의 엘리트주의 때문이기도 하다. <빅 마더>는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한 언론의 오만함을 비판한다. 알렉스는 합당한 근거를 가지고 증명해 낼 수 있는 범위 밖의 것까지 추론해 진실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그 진실에서 한 가지의 사실이 어긋나는 순간 알렉스가 밝혀낸 모든 사실은 의심받기 마련이다.

무대에는 큰 스크린이 있다. 보통 미리 찍어둔 영상을 활용하는 연극 무대와 달리 <빅 마더>는 노트북 캠과 중계 카메라 등을 통해 모든 영상을 라이브로 송출한다. 2층 객석에서 관람하면 무대 뒤편 영상을 송출하는 스튜디오가 살짝 보인다. 방송 뉴스, 대선 후보의 연설, 선거 결과 발표 등 주요 사건을 관객들이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또 무대의 디귿(ㄷ)자 통로는 투명한 벽으로 구성돼, 각 인물이 어디서 어떤 연기를 하고 있는지도 관객이 볼 수 있다. 이는 투명사회연합이 공정하고 투명하다고 평가하는 알고리즘처럼 모든 인물의 동선을 보여주는 장치다. 그러나 그들의 이동 경로를 보고 있다고 해도 관객들은 복잡한 마음이나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다.

연극 <빅 마더> 커튼콜 지난 23일 연극 <빅 마더> 공연을 마친 배우들이 커튼콜에서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우 최호영, 김은희, 김세환, 조한철, 최나라, 신윤지, 김신기, 조수연이다.
연극 <빅 마더> 커튼콜지난 23일 연극 <빅 마더> 공연을 마친 배우들이 커튼콜에서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우 최호영, 김은희, 김세환, 조한철, 최나라, 신윤지, 김신기, 조수연이다. 한별

웃지 못할 결말, 그래도 믿어야 하는 건

<빅 마더>의 기자들은 '완벽한 기자'들이 아니다. 모든 취재 과정 및 기사 작성 과정을 지휘하는 편집국장 오웬은 매출과 가족 등 현실적인 문제에 휘둘리고, 케이트는 방향을 잘 잡아 나가지만 뭔가를 추진할 권한이 없다. 열의 넘치는 기자 알렉스는 자신의 열정에 의심을 하지 못하고 줄리아는 집요함으로 무장한 기자이지만 백악관 대변인 등 취재원과 충돌하게 된다.

뉴욕탐사보도 기자들은 투명사회연합이 만들어 낸 알고리즘 조작과 감시 기능이 현 정부와 연관돼있다는 걸 밝혀내지만, 이번엔 현 정부가 그들을 막는다. 정부의 협조 요청에 따라 언론사 대표가 보도를 망설이자 알렉스가 호소한다. 알렉스는 "국민들이 싫어하는 건 정치인, 정부와 결탁해서 속이는 언론사"라며 사람들이 기자를 싫어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한 번만 기자다워지고 싶다'는 알렉스의 외침은 극 중 언론사 대표 뿐 아니라 관객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언론의 현실은 바뀌었을지 몰라도 여전히 많은 기자가 공익을 추구하고, 사람들이 알아야 할 사회의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한다.

결국 투명사회연합의 후보 머서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취재진의 배드엔딩은 예정된 것처럼 보인다. 무대의 스크린은 환호하는 마서의 뒷편으로 얼어붙은 기자들을 보여준다. 내레이션을 통해 이후 그들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는 말을 전한다.

상황 이면에 숨어있는 진실은 지금 당장 불투명해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기자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건 광고주나 정부가 아닌 뉴스를 수용하는 국민들이다. 다시금 언론에 신뢰를 줄 때 비로소 언론은 제 기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https://blog.naver.com/burn_like_a_star에도 실립니다. 필자 블로그와 인스타그램(@a.star_see)에 취재 후기와 함께 공유됩니다.
빅마더 서울시극단 세종문화회관 언론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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