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속에 갇힌 6살 여자 아이의 신고 전화... 구급차는 결국

[김성호의 씨네만세 1328] <힌드의 목소리>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아이들 유치원 나비 반 소녀가 차에 갇혔다. 6살 여자아이 힌드 라잡이 탄 차엔 사촌들까지 일가족 6명의 시신이 실려 있었다. 나중에 발견된 승합차에선 확인된 것만 335발의 총탄이 박혔거나 뚫고 지나갔다고. 이야기는 2024년 1월, 힌드 라잡이 죽은 사촌들과 함께 있던 차 안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은 순간으로 돌아가 시작한다.

주지하다시피 팔레스타인은 UN(국제연합)이 옵저버 가입국으로 승인한 공식 국가다. 이색적이게도 두 곳으로 나뉜 영토는 걸어서 왕래할 수 없고 동떨어져 있다. 한국인도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가자지구는 이스라엘, 이집트와 마주 닿은 지중해 동안에 위치한다. 그리고 이른바 웨스트뱅크라 불리는 서안지구는 사해 북쪽 요르단강 서안에 위치해 있다. 과거 오슬로 협정이 체결된 뒤 이스라엘 군대가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의 자치권 또한 보장하기로 하였으나 오늘에 이르러 협정의 효력은 사실상 깨진 상황이다.

두 지역 모두 이스라엘 군대가 상주한다. 사실상의 점령 상태다. 지중해, 또 이집트와의 좁은 국경을 두고 있는 가자지구는 사실상 봉쇄돼 있다. 항구도, 타국과의 독자적 교통로도 없기 때문이다. 요르단과의 넓은 국경선이 있는 웨스트뱅크는 사정이 조금 낫지만, 요르단은 어디까지나 친이스라엘 행보를 보이는 왕정 독재국가다. 이스라엘은 가자를 고립시키고 웨스트뱅크엔 정착촌을 건설하며 팔레스타인인을 몰아붙이는 전략을 지속해왔다. 베냐민 네타냐후 집권 뒤 노골적이 됐던 적대정책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한 이란 침공 뒤 보다 본격화했다.

힌드의 목소리 스틸컷
힌드의 목소리스틸컷찬란

진짜 목소리가 가진 힘

<힌드의 목소리>를 문제적 작품이라 말하는 이들이 많다. <피부를 판 남자> <올파의 딸들> 등 끊임없이 문제작을 발표해온 감독 카우타르 벤 하니야의 신작이란 점에서 예고된 것이기도 한데, 지난해 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을 받으며 세계적 화제까지 일으켰다. 투박하고 노골적인 카우타르 벤 하니야의 연출적 자세가 급격히 나아질 리 없을 텐데도 이만큼 화제가 된 데는 특별한 승부수가 있었던 때문이겠다. 바로 실화가 가진 힘이다. 그냥 실화만도 아니다. <힌드의 목소리>는 실제 있었던 일 가운데 목소리를 따왔다고 했다. 사건 당시 SNS를 타고 전 세계로 퍼졌던 팔레스타인 6살 아이의 진짜 목소리 말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알려진 카우타르 벤 하니야는 본인이 확보한 진짜 목소리들을 극영화 가운데 살려낸다. 말하자면 실화를 따라 재현한 이야기 가운데 진짜 목소리와 표정들을 겹쳐낸다. 다큐적 순간이 무기가 되는 극영화, 카우타르 벤 하니야가 최고 수준의 영화제 심사위원들을 사로잡은 비결이 여기에 있다. 보는 이에 따라 감정을 추스를 수 없었다고, 그러나 영화를 대하는 작가의 자세며 극적 완성도는 그리 대단치가 않다고, 그야말로 대립하는 온갖 이야기가 나오는 문제작 <힌드의 목소리>를 한국 관객들도 마주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돼 발 빠른 이들이 낸 소문이 또한 무성했던 이 영화가 수입돼 이달 개봉한 덕분이다.

적신월사(PRCS)란 단체가 있다.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기에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로 대체했을 뿐, 적십자사 같은 단체라 보면 된다. 전쟁 등 위험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인도적 구호단체로 팔레스타인 또한 회원국이다. 영화는 웨스트뱅크 지역 적신월사 사무소를 배경으로 한다. 중앙 콜센터가 위치한 곳은 웨스트뱅크 라말라(Ramallah), 이곳에서 근무하던 직원들과 연결된 아이 힌드의 목소리는 무려 80km 넘게 떨어진 가자지구 북부에서 온 것이다. 아이는 살아있고 함께 차에 탄 가족들은 모조리 죽어 있다. 직원들은 힌드를 달래며 그곳까지 구급차를 보내기 위한 작업에 나선다.

힌드의 목소리 스틸컷
힌드의 목소리스틸컷찬란

80km 밖, 아이 홀로 갇혀 있다

80km면 대략 서울에서 천안까지의 거리다. 웨스트뱅크 적신월사가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사건을 다루는 건 가자지구에선 통신도 원활치 않고 구호조직도 사실상 활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의 원흉인 이스라엘 영토를 지나야 하는 웨스트뱅크 본부에서 가자지구 구호문제까지 다뤄야 하는 상황이다. 어찌됐든 아이는 살려야 하겠는데, 구급차를 보내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구급차도 보내려면 이스라엘이 장악한 길을 통해야 한다. 그 길을 이용하겠다는 허락을 구하지 않고 지났다간 벌집이 되기 일쑤다. 센터 벽면엔 그렇게 죽어나간 구조대원들의 얼굴이 주루룩 붙어 있다.

영화는 이스라엘 군과 정부 당국, 팔레스타인 공직자며 국제기구까지 접촉해 구급차 통행 허가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코디네이터 마디(아메르 흘레헬 분)의 모습을 비춘다. 잘 통하지도 않는 전화기를 붙들고서 이쪽저쪽 연락해 부디 허가를 내달라고, 허가가 내려질 수 있게 압력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하고 또 요청하는 마디의 모습이 애처롭다. 그 반대편엔 오마르(모타즈 말히스 분)와 라나(사자 킬라니 분)가 있다. 이들은 힌드와 직접 통화하는 콜센터 직원들로, 격앙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구급차를 보낼 권한을 가진 마디를 압박한다. 허가가 없더라도 일단 구급차를 보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사실이 그렇다. 힌드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스라엘 군대가 아이가 탄 차 가까이 나와 있고, 이미 수백 발 쯤은 발포한 것으로 보인다. 총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고, 아이는 이미 죽은 가족들 곁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구조를 기다리며 울고 있다. 한 번 나온 군대가 며칠을 더 머물다 갈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물도 없이 겁먹은 어린 여자 아이가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까. 가장 가까이 나가 있는 구급차는 불과 8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그 차를 보내면 된다. 데려오면 된다. 오마르가 수시로 마디를 찾아 압박하는 이유다.

힌드의 목소리 스틸컷
힌드의 목소리스틸컷찬란

그 구급차를 보낼 수 없는 이유

마디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코디네이터가 이스라엘 정부며 군대를 압박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하늘의 은혜를 구하듯 공손하고 또 공손하게 제발 어린아이 하나를 살려주십사 간청할 뿐이다. 야속한 저들의 응답은 이들의 신이 또한 그렇듯이 제 때 도달하지 않는다.

카우타르 벤 하니야의 연출이 사실 그대로 이뤄졌으리라 확언할 수는 없겠다. 그녀의 영화가 자주 그러하듯 관객의 감정을 증폭케 하기 위해 연출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시도가 잇따른다. 사정을 충분히 알 만한 오마르가 마디를 찾아 하는 대사나 행동 상당수는 실제 있었으리라고는 믿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에 응답하며 뱉는 마디의 발언들도 이들이 처한 참담한 상황을 관객에게 알리기 위해 계산되고 정리된 것처럼 보인다. 현장에서 직원들의 심리를 상담하는 나스린(클라라 코우리 분)과의 상황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는 마치 노골적 신파극처럼 가만히 보도록 해도 좋을 사정들을 감정을 담뿍 담아 구구절절 설명한다. 오랫동안 차분하게 이뤄졌을 이야기도 뭉쳐 극적으로 표출한다. 카우타르 벤 하니야의 인장이라 해도 좋을 노골적 연출이 극영화적 효과가 가해진 <힌드의 목소리>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그럼에도 영화는 결정적 순간들을 담고 있다. 힌드와 이뤄진 수차례 통화, SNS를 통해 공개됐던 장면들이 그렇다. 그와 같은 진짜들이 극화된 영화 가운데 마주 닿는 여러 순간이 있다. 영화는 그 순간마다 실제 있었던 일임을 표기해 관객이 당시의 긴박하고 부조리한 상황으로부터 떨어지지 않도록 붙든다. 그리고 그는 정말이지 확실한 효과를 발한다. 영화를 보고난 뒤 자세며 만듦새에서 일부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조차 모두 설득해내는 목소리를 분명히 쥐고 있는 때문이다.

힌드의 목소리 포스터
힌드의 목소리포스터찬란

서아시아의 비극이 오늘에 전하는 울림

힌드의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에서만큼은 영화는 파일명을 자막으로 띄우고 음파만을 내보인다. 재현이며 극화가 비윤리적이라거나 실례라 여겨서가 아니다. 그것 그대로 가장 파괴적이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끝내 구하지 못한 적신월사처럼, 영화를 보는 관객 모두가 무력감과 마주한다.

이야기는 실화다. 사건 뒤 이스라엘 전쟁범죄의 상징처럼 알려진 힌드 라잡의 죽음, 6살짜리 아이를 구하기 위해 간 구급대원들조차 무참하게 살해 당한 비극을 영화는 담아낸다. 무력하기만 한 상황 속에서 희망을 갖도록 아이에게 '코란'을 암송하도록 이끄는 상담원의 음성이, 그녀가 애써 숨기는 절망적 인식이 보는 이를 아프게 한다.

누구도 위협하지 않는 이들을 이유 없이 살해한 이스라엘군은 당시의 일을 부인했다. 이스라엘군이 아예 그 지역에 나가 있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탱크까지 동원한 작전이 민간인을 상대로 이뤄졌고, 구급차에도 포탄이 날아와 박혔다. 난사된 총탄의 흔적은 물론, 위성사진이며 영상까지 확인됐다. 힌드의 이야기는 전 세계 시민사회와 이스라엘을 지탄하는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로부터 카우타르 벤 하니야가 영화를 제작하겠다 나섰고, <힌드의 목소리>는 이제껏 힌드의 이야기가 닿았던 가장 먼 곳 너머까지 닿고 있는 것이다. 내가 카우타르 벤 하니야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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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