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눕지 못한 제주, 끝내 입을 연 바다가 전한 한마디

[리뷰] 프로덕션 IDA의 연극 <돔박아시, 고이래>

"깍, 깍, 까아악~ 까매귀 소린 중 알지만 다 사름들 우는 소리여… 난 그 소리 사이로 까매귀 날갯 짓추룩 흔드는 어깨가 보여. 저 멀리 보이는 거, 그거 까매귀 아니여. 꺽꺽 울어대는 어깨여."

극장을 나선 뒤에도 오래도록 귓가를 맴돈다. 짧고 투박하지만 사람을 놓아주지 않는 대사가. 그 안에는 제주의 바닷바람과 오래 눌러온 사람의 울음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제주 4·3을 소재로 한 프로덕션 이다 IDA의 연극 <돔박아시, 고이래>(4월3일~12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는 이런 방식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객석에 앉아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며 오래 미뤄진 재판을 기다리는 느낌이 들었다. 무대는 이미 쓰러진 동상이 있었고, 곁에는 해녀 고이래가 앉아 있었다. 연극은 1948년 피비린내 나는 한복판이 아니다. 2003년 제주의 봄, 쓰러진 동상 옆에 앉아 있는 한 여자의 몸에서 출발한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된 4·3

 프로덕션 IDA의 연극 <돔박아시, 고이래> 공연사진
프로덕션 IDA의 연극 <돔박아시, 고이래> 공연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처음에는 누구나 한 노인이 왜 동상을 무너뜨렸을지 묻게 된다. 왜 수십 개의 빗창을 꽂았을까. 왜 달아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을까. 하지만 연극은 그 질문을 통해 단순한 범행 동기 쪽으로 밀고 가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따라갈수록 더 깊고, 잔혹하고, 오래된 시간의 밑바닥을 들춰낸다. 고이래가 왜 이제야 입을 열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 왜 그 분노가 한 사람의 분풀이로 끝날 수 없는지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어느새 한 개인의 범행이 아니라 한 시대의 침묵과 마주하게 된다.

이 작품이 더 매섭게 다가오는 건 제주 4·3을 지나간 비극으로 박제하지 않아서다. 무대엔 1948년의 학살과 2003년의 개발이 공존한다. 세화리 해녀들의 공동 작업장은 헐벗은 채 남아 있고, 대형 카페와 리조트는 삶터와 식당과 집을 밀어낸다. 총성이 멎은 시대가 끝났어도 다른 얼굴의 폭력은 멈추지 않는다. 땅에서 쫓겨나는 사람들, 기념되는 사람과 잊히는 사람, 영웅으로 세워지는 이름과 침묵 속에 늙어가는 이름이 살아았다. <돔박아시, 고이래>는 바로 그 연속성을 집요하게 붙든다. 그래서 이 공연은 과거를 회상하는 역사극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현재의 연극으로 남아 있다.

무대 위 쓰러진 비석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다. 공연 내내 비석은 시계추처럼 현재와 과거를 흔들었다. 동상이면서 무덤 같았고, 추모비이면서 고발장이다. 한쪽에서는 누군가를 기리는 이름이 번듯하게 세워져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름도 남기지 못한 사람들의 시간이 기어코 떠오른다. 그 충돌이 이 작품의 심장이다. 공연은 조용하게 시작하지만, 그 속에 이미 거대한 균열이 들어 있다. 막이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객석은 눈치챈다. 여기서 무너진 것은 쇠붙이 하나가 아니라, 오랫동안 단단한 척 버텨온 기억의 질서였다.

<돔박아시, 고이래>는 4·3의 폭력을 총칼의 기억으로만 한정하지 않는다. "그 차가운 쇠붙이가 중요합니까?" 무엇이 먼저 기려져야 하는가. 누구의 죽음이 먼저 기억되어야 하는가. 차가운 금속으로 된 동상 하나가 쓰러졌다고 모두가 벌떼처럼 들끓는데, 그 아래 깔린 수많은 이름 없는 죽음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침묵했는가. 작품은 그 전복된 질서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래서 관객은 동상을 훼손한 한 여인을 보다가, 어느 순간 기념의 이름으로 세워진 질서 전체를 응시한다.

말 대신 노래한 사람들

 프로덕션 IDA의 연극 <돔박아시, 고이래> 공연사진
프로덕션 IDA의 연극 <돔박아시, 고이래> 공연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 작품의 가장 깊은 힘은 거대한 역사를 한 사람의 몸 안으로 끌고 들어온 점이다. 고이래는 취조실에서 좀처럼 설명하지 않는 대신 노래한다. '말 못 할 그 사연'을 입에 얹고, 설명 대신 선율을 반복한다. 그 장면이 먹먹한 것은 그것이 단순한 감상적 장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노래는 회피가 아니라 생존 방식이다. 말하면 무너질 것 같은 사람이 말보다 먼저 노래의 몸을 빌려 겨우 자기 시간을 견디는 방식이다. 취조실의 공기, 서류를 들여다보는 형사의 시선, 거기 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는 고이래의 모습은 이상하리만치 오래 남는다. 그 순간 객석은 '왜 말하지 않느냐'고 다그치기보다, '얼마나 오래 이 사람은 말할 수 없었을까'를 먼저 생각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작품의 정서를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단단히 버텨냈다. 고이래는 말보다 몸으로 먼저 세월을 보여준다. 걸음을 옮길 때의 망설임, 시선을 들지 않는 버릇, 울음을 쏟기보다 가까스로 눌러 담는 호흡에 오래된 상처의 결이 배어 있었다. 어린 춘옥 역은 젊은 시절의 생기와 불안을 섬세하게 끌어올리며, 늙은 고이래의 내면을 미리 비춰주었다. 무엇보다 해녀 공동체를 이루는 인물들이 모두 살아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이들이 제주어로 주고받는 거칠고도 다정한 말들은 역사적 비극을 관념이 아니라 생활의 체온으로 바꾸어 놓았다.

특히 세화리 해녀들의 장면은 이 공연을 더 넓고 깊게 만든다. 성게를 손질하고, 노동요를 부르고, 리조트 개발을 욕하고, 서로를 '돔박 아시'라 부르는 장면들 속에서 이 작품은 추상이 아니라 삶이 된다. "커피는 돈을 먹는 거고, 쿠살은 정성을 먹는 거주게"라는 말은 우스운 듯 툭 던져지지만, 실은 이 작품 전체를 꿰뚫는 문장이다. 한쪽에서는 삶을 오래 들여 만들어낸 노동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삶을 지워버리고 들어서는 자본의 언어가 있다. 이 연극은 그 두 세계의 충돌을 구호로 외치지 않는다. 대신 해녀들의 입말과 손놀림과 숨결 안에 눌러 담는다. 그래서 더 아프다. 제주 4·3은 총소리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 않고, 지금도 삶터를 밀어붙이는 굴착기의 소리로 변주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부분은 작품이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주 4·3을 다룬 작품은 자칫 무게에 짓눌리거나, 반대로 비극을 너무 쉽게 소비해 버릴 위험도 있다. 그런데 <돔박아시, 고이래>는 절규보다 침묵을 잘 쓰고, 눈물보다 정적을 더 오래 남긴다. 누군가 길게 울부짖는 장면보다 차마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노래나 숨으로 넘겨버리는 장면이 훨씬 크게 다가온다. 실제로 공연 중 객석은 자주 숨을 삼켰다. 누가 대단한 감정 연기를 폭발시켜서가 아니라, 무대 위 사람이 끝내 하지 못한 말이 객석으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좋은 배우들은 늘 대사보다 먼저 몸으로 상처를 보여주는데, 이 무대의 배우들이 정확히 그랬다.

끝내 존엄을 되찾는 마지막 파도

 프로덕션 IDA의 연극 <돔박아시, 고이래> 공연사진
프로덕션 IDA의 연극 <돔박아시, 고이래> 공연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돔박아시, 고이래>는 비극을 크게 부풀리는 대신 마지막에 인간의 얼굴을 남긴다. 후반으로 갈수록 이 작품은 단순히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머무르지 않고, 오래 빼앗긴 존엄을 다시 이름 붙이는 자리까지 나아간다. 가장 강하게 남은 것은 마지막에 가까워서 터져 나오는 그 한마디다. "귀한 자식이란 말이야." 이 대사는 감정의 폭발이기 전에, 낙인 속에 오래 갇혀 있던 인간이 제 입으로 자기 존엄을 다시 끌어올리는 선언이었다. 빨갱이의 자식이 아니라, 숨죽여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끝내 귀한 자식이었다는 말. 그 짧은 문장이 객석 전체를 붙들어 세웠다.

이 작품은 제주 4·3을 재현하는 연극을 넘어선다. 누군가에게 덧씌워진 이름을 벗겨내고, 빼앗긴 호명을 되돌려주는 연극이 된다. 그래서 마지막의 울림은 단지 슬픔이 아니다.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누군가를 제대로 불러야 한다는 다짐에 가깝다. 역사 속에서 누군가는 영웅의 동상으로 서 있고, 누군가는 이름도 없이 사라졌다. 그런데 <돔박아시, 고이래>는 끝내 동상보다 사람을 먼저 바라보게 만든다. 기념보다 애도를, 상징보다 삶을, 국가가 붙인 이름보다 한 사람이 자기 입으로 되찾는 이름을 더 앞에 세운다.

공연을 보고 나오며 오래 남는 것은 장면 몇 개의 강렬함만이 아니다. 왜 어떤 죽음은 기려지고 어떤 죽음은 오랫동안 이름조차 불리지 못했는가, 왜 어떤 사람은 영웅의 얼굴로 세워지고 어떤 사람은 침묵 속에서 늙어가야 했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작품은 관객의 손에 슬며시 쥐여 보낸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쉽사리 내려놓을 수 없게.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기억이란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아니라, 오늘 무엇을 먼저 바라볼 것인지 다시 정하는 일이라는 것을.
연극 대학로 제주43 돔박아시고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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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 <문화+서울>에서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에서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 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