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덕션 IDA의 연극 <돔박아시, 고이래> 공연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 작품의 가장 깊은 힘은 거대한 역사를 한 사람의 몸 안으로 끌고 들어온 점이다. 고이래는 취조실에서 좀처럼 설명하지 않는 대신 노래한다. '말 못 할 그 사연'을 입에 얹고, 설명 대신 선율을 반복한다. 그 장면이 먹먹한 것은 그것이 단순한 감상적 장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노래는 회피가 아니라 생존 방식이다. 말하면 무너질 것 같은 사람이 말보다 먼저 노래의 몸을 빌려 겨우 자기 시간을 견디는 방식이다. 취조실의 공기, 서류를 들여다보는 형사의 시선, 거기 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는 고이래의 모습은 이상하리만치 오래 남는다. 그 순간 객석은 '왜 말하지 않느냐'고 다그치기보다, '얼마나 오래 이 사람은 말할 수 없었을까'를 먼저 생각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작품의 정서를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단단히 버텨냈다. 고이래는 말보다 몸으로 먼저 세월을 보여준다. 걸음을 옮길 때의 망설임, 시선을 들지 않는 버릇, 울음을 쏟기보다 가까스로 눌러 담는 호흡에 오래된 상처의 결이 배어 있었다. 어린 춘옥 역은 젊은 시절의 생기와 불안을 섬세하게 끌어올리며, 늙은 고이래의 내면을 미리 비춰주었다. 무엇보다 해녀 공동체를 이루는 인물들이 모두 살아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이들이 제주어로 주고받는 거칠고도 다정한 말들은 역사적 비극을 관념이 아니라 생활의 체온으로 바꾸어 놓았다.
특히 세화리 해녀들의 장면은 이 공연을 더 넓고 깊게 만든다. 성게를 손질하고, 노동요를 부르고, 리조트 개발을 욕하고, 서로를 '돔박 아시'라 부르는 장면들 속에서 이 작품은 추상이 아니라 삶이 된다. "커피는 돈을 먹는 거고, 쿠살은 정성을 먹는 거주게"라는 말은 우스운 듯 툭 던져지지만, 실은 이 작품 전체를 꿰뚫는 문장이다. 한쪽에서는 삶을 오래 들여 만들어낸 노동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삶을 지워버리고 들어서는 자본의 언어가 있다. 이 연극은 그 두 세계의 충돌을 구호로 외치지 않는다. 대신 해녀들의 입말과 손놀림과 숨결 안에 눌러 담는다. 그래서 더 아프다. 제주 4·3은 총소리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 않고, 지금도 삶터를 밀어붙이는 굴착기의 소리로 변주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부분은 작품이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주 4·3을 다룬 작품은 자칫 무게에 짓눌리거나, 반대로 비극을 너무 쉽게 소비해 버릴 위험도 있다. 그런데 <돔박아시, 고이래>는 절규보다 침묵을 잘 쓰고, 눈물보다 정적을 더 오래 남긴다. 누군가 길게 울부짖는 장면보다 차마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노래나 숨으로 넘겨버리는 장면이 훨씬 크게 다가온다. 실제로 공연 중 객석은 자주 숨을 삼켰다. 누가 대단한 감정 연기를 폭발시켜서가 아니라, 무대 위 사람이 끝내 하지 못한 말이 객석으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좋은 배우들은 늘 대사보다 먼저 몸으로 상처를 보여주는데, 이 무대의 배우들이 정확히 그랬다.
끝내 존엄을 되찾는 마지막 파도
▲프로덕션 IDA의 연극 <돔박아시, 고이래> 공연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돔박아시, 고이래>는 비극을 크게 부풀리는 대신 마지막에 인간의 얼굴을 남긴다. 후반으로 갈수록 이 작품은 단순히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머무르지 않고, 오래 빼앗긴 존엄을 다시 이름 붙이는 자리까지 나아간다. 가장 강하게 남은 것은 마지막에 가까워서 터져 나오는 그 한마디다. "귀한 자식이란 말이야." 이 대사는 감정의 폭발이기 전에, 낙인 속에 오래 갇혀 있던 인간이 제 입으로 자기 존엄을 다시 끌어올리는 선언이었다. 빨갱이의 자식이 아니라, 숨죽여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끝내 귀한 자식이었다는 말. 그 짧은 문장이 객석 전체를 붙들어 세웠다.
이 작품은 제주 4·3을 재현하는 연극을 넘어선다. 누군가에게 덧씌워진 이름을 벗겨내고, 빼앗긴 호명을 되돌려주는 연극이 된다. 그래서 마지막의 울림은 단지 슬픔이 아니다.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누군가를 제대로 불러야 한다는 다짐에 가깝다. 역사 속에서 누군가는 영웅의 동상으로 서 있고, 누군가는 이름도 없이 사라졌다. 그런데 <돔박아시, 고이래>는 끝내 동상보다 사람을 먼저 바라보게 만든다. 기념보다 애도를, 상징보다 삶을, 국가가 붙인 이름보다 한 사람이 자기 입으로 되찾는 이름을 더 앞에 세운다.
공연을 보고 나오며 오래 남는 것은 장면 몇 개의 강렬함만이 아니다. 왜 어떤 죽음은 기려지고 어떤 죽음은 오랫동안 이름조차 불리지 못했는가, 왜 어떤 사람은 영웅의 얼굴로 세워지고 어떤 사람은 침묵 속에서 늙어가야 했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작품은 관객의 손에 슬며시 쥐여 보낸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쉽사리 내려놓을 수 없게.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기억이란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아니라, 오늘 무엇을 먼저 바라볼 것인지 다시 정하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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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 <문화+서울>에서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에서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 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