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버틴 한국 '독립영화' 잡지, 오해하고 있었던 사실

[김성호의 씨네만세 1324] '영화와 책' <독립영화> 창간호

읽는 이가 급감하는 시대다. 진지하고 호흡 긴 글은 더욱 그렇다. 인간이 여적 문자, 그중에서도 글보다 더 효과적으로 깊이 있게 소통하는 수단을 발명하지 못했음에도 인간은 글을 빠르게 저버리려 하고 있다. 일방향으로 주입되는 영상매체로, 그것도 휘발성 강한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로 향하는 경향이 분명하다. 글을 읽는 이들 중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분명하다. 사고를 깨우고 의식을 확장하는 글 읽기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이는 독서인구 가운데서도 소수에 불과하다. 더 쉽고 편하게 읽히는 글쓰기만이 정도이자 정답이라 떠받들어진다.

처음 글을 판 지 꼭 20년이 되었다. 지금껏 글을 실은 매체가 못해도 오륙십은 될 것이다. 돌아보면 그중 절반을 훌쩍 넘는 매체가 사라졌다. 한 달 전 어느 편집자와 자리를 가졌다. 퇴사하게 되었다며 잡지, 또 활자매체 편집자의 길을 완전히 떠나겠다 했다. 독자는 줄어가고 AI 기반 LLM 서비스의 일반화로 글과 문자의 가치 또한 전혀 달라져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박봉에도 자긍심을 지키며 수십 년을 일해 온 이조차 떠나는 자리에서 희망을 구할 곳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 해 사라지는 잡지가 몇이나 되는지 아느냐는 그녀의 물음에 나는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그녀는 "200개예요. 200개가 사라진 대요"하고 말했다. 글 쓰는 내게 어서 유튜브나 틱톡 계정부터 열라고 당부한 그녀의 말을 더는 무시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오랜 거래처가 또 하나 사라진 날, 나는 새로운 모임 하나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잡지, 그중에서도 잘 읽히지 않아 점차 위축되어가는 어느 잡지를 다시 읽어보는 모임이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소속 비평가들이 벌써 27년 째 발간해온 <독립영화>가 바로 그 잡지다. 55호부터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게 되며 지난 54호를 처음 읽은 나는 이 잡지가 가진 가치, 그 깊이와 담고 있는 담론의 유의미함에 상당히 감탄한 바 있었다.

독립영화 한국독립영화협회 창간호와 최근 발간된 신간 55호.
독립영화한국독립영화협회 창간호와 최근 발간된 신간 55호.김성호

27년 된 잡지를 다시 읽는 까닭

이달 초, 나는 뜻 맞는 동료 비평가와 감독, 또 배우들을 모아 이 잡지를 1회부터 다시 읽는 모임을 열었다. 모집공고를 읽은 영화계 인사들이 10명 가량 참여했다. 27년 전인 1999년, 그러니까 한국 독립영화계가 학생운동이며 사회운동의 연장선에서 막 벗어나 독자적인 걸음을 시작했고, 영화진흥위원회가 아직 설립되기도 전 나온 창간호다. 27년을 건너 여기 실린 글을 읽는 작업이 이토록 의미 있을 줄을 나는 모임을 열면서도 예상치 못하였다. 여기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창간호엔 모두 19개 꼭지가 실렸다. 한 꼭지에 두어 개 글이 함께 든 형식도 있어 실제 담긴 글은 스물 몇 편쯤이 된다. 당시 독립영화계에 몸담은 제작자 및 비평가들이 글쓴이며 글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당대 독립영화에 대한 여러 형식의 비평부터, 당시 있었던 영화제에 대한 비평 및 참관기, 또 동료 영화인에 대한 찬사와 비판, 자기 영화에 대한 변명과 홍보, 또 막 출범한 한독협의 지향이며 정부정책에 대한 고민 등이 두루 담겼다. 27년을 건너 옛 글을 다시 읽는다는 것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하고, 잡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 또한 감각, 그러니까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피부로 느끼듯이 곧장 알도록 한다.

이 잡지를 오늘을 살아가는 대중, 그중에서도 '씨네만세'를 찾아 읽는 영화팬이며 활자매체를 즐겨 접하는 읽는 이들에게 전해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 길이 들고 있는 때문이다. 마치 반려견을 길들이는 게 목줄만이 아니라 사료이고 장난감이듯이, 스마트폰과 유튜브 영상, 또 인스타그램 릴스와 보편 AI 서비스가 우리를 길들이고 있는 까닭이다.

기술과 문화, 각 시대의 평균적 감각이며 윤리는 인간을 길들이고 표준화한다. 그리하여 2026년의 한국인은 1999년의 한국인보다 동시대 페르시아인이며 슬라브인과 더 가깝다. 그러고도 1999년의 한국인과 아무런 의심 없이 동질감을 가지니 그는 편리하긴 하여도 왜곡되고 나태한 자기인식인 것이다. 과거와 대면하는 일은 바뀌고 바뀌지 않은 우리의 양면을 이해하는 일이다. 우리가 바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나, 그리고 읽기모임에 참여한 동료 영화인들이 앞으로 이 모임을 지속하기로 한 이유다.

독립영화 잡지가 막 창간됐을 당시 역시 막 문을 연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 올라온 독자서평
독립영화잡지가 막 창간됐을 당시 역시 막 문을 연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 올라온 독자서평독립영화

오늘과 다른 분위기, 자부심과 열의가 담겼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건네는 스무 편이 넘는 글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전해야 할까. 우선은 이들 가운데 공통된, 그러나 오늘과는 확연히 다른 특징부터 꺼내야겠다. 내가 아는 두 권, 그러니까 2025년과 2026년 막 발간된 54호와 55호는 매우 점잖고 진지한 책이다.

기본적으로는 독립영화, 또 독립영화계 전반에 대한 비평집이자 소식지의 성격을 갖는다. 54호는 공정이용 권리와 저작권법 100조 영상물 특례조항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었고, 55호는 서부지법 폭동과 관련해 언론사 기자와는 달리 처벌을 면치 못한 다큐멘터리 감독 정윤석의 사례 등 독립영화의 여러 현장에서 빚어지는 문제를 소화한다. 그런데 창간호는 이와는 전혀 다른 자세와 호흡으로 엮였으니 나는 내가 27년 전 나와 같은 자리에서 잡지를 빚던 이들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창간호는 막 피어난 것이 대개 그러하듯 억지로 짜내지 않은 기세가 실려 있다. 이게 과연 같은 잡지인가 당혹스러울 지경이다. 이 잡지의 어제 앞에 오늘이 부끄러운 순간도 없지 않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비판이다. 그저 헛헛한 '우쭈쭈'며 '있어 봬는' 현학적 글줄이 다수를 이루는 오늘의 비평에 비추어서 그 혀끝이 사납다. '초록물고기는 위선적이고 정사는 비겁한 영화이며 쉬리는 부도덕한 영화다'라는 문장을 그대로 실을 수 있는 잡지가 오늘에 남았는가. 실린 모든 비평에서 의미 발굴보다도 한계를 집어내는 비판이, 때로 과도하거나 집요하게 느끼는 이도 있을 법한 지적이 잇따르는 모습이 생경하기까지 하다. 사납다고 표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사나움 가운데 자부심과 열의, 그리고 관심이 분명하게 읽힌다. 자유로이 오가는 생각들과 다시 그에 대응하는 생각들이 다름을 넘어 거침없이 닿고 투과되는 당시의 풍토를 느끼게 한다. 요컨대 교류다. 거침없는 표현이 누구의 마음을 상하게 될까 지레짐작하여 움츠러드는, 물론 그에도 장려할 만한 미덕이 있겠으나, 격식을 차리고 거리를 두어 진심이 오가지 못할 때가 많은 오늘의 경향을 돌아보게 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들이 있고,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는 것 또한 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의 차이를, 변화의 이유를 우리는 과연 알고 있는가. 우리가 걸어온 길이 놓쳐 버린 가능성을 나는 창간호로부터 적잖이 발견한다.

독립영화 각 지역 도서관을 통해 누구나 무료 이용할 수 있는 'DBpia'를 통해 전권 일독이 가능하다.
독립영화각 지역 도서관을 통해 누구나 무료 이용할 수 있는 'DBpia'를 통해 전권 일독이 가능하다.DBpia

한국 독립영화를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많은 글이 흥미롭다. 모임 자리에서 나는 '거의 모든' 글이 흥미롭고 다수가 이 시대에 '유효하다'고 말하였다. 다른 이들도 동의했다. 실린 글 중 하나(지금은 사라진 '파적'이란 당대엔 꽤나 화제가 돼 방송국 뉴스까지 탔다는 독립영화 단체 관계자 인터뷰) 중에 "이 사회가 게릴라를 필요로 한다"는 대목이 있다. 강렬한 추동력으로 어느 한 방향으로만 모든 구성원을 끌어가려는 사회 가운데 게릴라의 의미가 더욱 커진다는 뜻이겠다. 나는 오늘의 창작자를 모아 이 잡지를 다시 읽는 활동이, 또 그 모임이, 다시 이를 전하여 오늘의 독자들과 나누는 일이 모두 그와 같다고 느낀다.

창간호를 통하여 나는 비로소 독립영화가 진영으로 존재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해하게 됐다. 오늘날 우리는 흔히 영화란 생산과 소비의 매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다보면 상품성 있는 것과 아닌 것으로, 자연스레 구분의 기준마저 내재화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는 당연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아니, 나는 아니어야 한다고 여긴다. 독립영화는 생산과 소비만이 아니라 창작과 비평의 대상으로 존재하고 다뤄져야 한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면 독립이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수단이다. 하나하나 창작자들이 곧추 선 주체로 기대어 성장하기 위한 전제조건일 뿐이다. 나는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달았다.

<독립영화> 전 권은 국회도서관과 한국영상자료원을 통해 실물로 접할 수 있다. 또 서울시교육청 여러 도서관을 통해 온라인으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DBpia'에서도 무료로 확인할 수 있다. 참여를 원하는 영화계 관계자라면 누구나 한국독립영화협회를 통해 해당 모임에 가입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독립영화 한국독립영화협회 한독협 서평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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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