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재단 송형종 대표이사와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규승
그리고 그날,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내 마음을 흔든 장면이 하나 있었다. 서울문화재단 송형종 대표와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가 마주 서서 인사를 나누는 순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짧은 환담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게 그 장면은 그냥 지나가는 장면이 아니었다. 나는 20년 전부터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시절의 강동석 선생을 기억하고 있다. 그때 그는 지금보다 훨씬 젊었지만 이미 그 이름만으로도 봄의 공기를 바꾸는 사람이었다. 서울의 봄이 지금보다 더 거칠고, 클래식을 향한 갈증이 더 날것으로 남아 있던 시절, 강동석이라는 이름은 음악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그것은 어떤 품격이었고, 어떤 긴장이었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 신뢰였다.
그리고 20년이 흘러 다시 마주한 그의 얼굴에는 세월이 분명히 내려앉아 있었다. 머리에는 흰빛이 돌고 있었고, 웃을 때마다 눈가와 뺨에는 주름이 깊게 번졌다. 나는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잠시 말을 잃었다. 시간은 누구도 비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있던 사람의 얼굴 위에서 그것을 다시 확인하게 될 때 가슴은 생각보다 더 깊이 저민다. 한 시대를 통과한 사람의 얼굴은 말이 없어도 하나의 서사가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바로 그다음이었다. 일흔을 넘긴 세월은 분명 얼굴 위에 있었지만, 그의 눈빛에는 오히려 음악을 향한 시간이 더 깊게 쌓여 있었다. 음악을 대하는 사람의 표정에는 여전히 애정과 집중이 살아 있었다. 오래 무대를 지켜온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단단한 온기, 수많은 시간을 지나오고도 닳지 않은 예술에 대한 믿음이 그의 몸가짐 안에 고요히 배어 있었다. 젊은 날의 열정이 타오르는 불꽃이라면, 그날 내가 본 열정은 오래 달궈진 쇠의 열기 같았다. 요란하지 않았지만 가까이 가면 뜨거웠다.
그래서 나는 그 장면 앞에서 조금 오래 머물렀다. 20년 전의 봄과 지금의 봄이 한 사람의 얼굴 위에서 겹쳐지는 순간을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가슴 아픈 일이었다. 흰머리와 주름은 시간의 증거였지만, 클래식을 향한 그의 마음은 그 시간을 지워버리는 대신 더 깊게 빛나게 하고 있었다. 오래 사랑한 것만이 끝내 사람을 저렇게 만들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나는 그를 보며 문득, 클래식은 악보 안에만 남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 속에도 남는다는 생각을 했다. 한 예술가가 지나온 시간과 견뎌온 세월, 끝내 놓지 않은 마음이 모두 음악의 일부라는 생각. 그 생각 앞에서 나는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마음이 젖어버렸다.
흰머리 너머로, 음악은 아직도 타오르고 있었다
이날 공연 '봄의 파동'은 하이든의 플루트·첼로·피아노를 위한 3중주 D장조, 슈베르트의 '마왕'과 '세레나데', 리스트의 네 손을 위한 '헝가리 광시곡 2번', 드보르자크의 피아노와 현악을 위한 5중주 A장조로 이어졌다. 프로그램은 제목 그대로 봄의 여러 결을 품고 있었다. 봄은 하나의 표정으로 오지 않는다. 설렘과 흔들림, 생기와 불안, 환한 햇살과 설명하기 어려운 쓸쓸함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계절이다. 그날의 음악은 바로 그 복수의 봄을 차례로 펼쳐 보였다.
첫 곡 하이든의 3중주가 시작되자 객석의 공기가 맑게 정돈되었다. 플루트와 첼로, 피아노가 서로를 앞지르지 않으면서 각자의 자리를 분명히 지켰다. 그 질서와 균형은 봄볕 아래 잘 닦인 유리창처럼 투명했다. 서울체임버홀은 가까운 공연장이었다. 소리가 만들어지는 순간이 눈으로 보였고, 그 떨림이 객석으로 건너오는 길이 짧았다. 큰 홀에서는 종종 '좋다'는 인상만 남기고 스쳐 지나가는 소리들이 이곳에서는 훨씬 또렷하게 마음에 박혔다. 누가 숨을 들이쉬는지, 어디에서 선율이 넘어가는지, 악기들 사이에 어떤 배려와 긴장이 오가는지가 더 선명하게 전해졌다.
슈베르트의 '마왕'은 그 정돈된 공기를 단숨에 뒤집었다. 투명하던 봄빛 위로 불안과 서사가 거칠게 겹쳐졌다. 베이스 바리톤 안민수의 목소리는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어둠을 직접 끌고 오는 듯했다. 피아노의 리듬은 다급했고, 객석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봄이란 늘 생명의 계절로만 불리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봄이야말로 가장 위태로운 계절이라고 생각해왔다. 무엇인가가 다시 움트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움트는 것은 기쁘지만 동시에 두렵다. 새로 시작되는 모든 것은 아름답고도 불안하다. 그날의 슈베르트는 바로 그 흔들리는 봄의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어진 '세레나데'는 조금 전의 긴장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같은 작곡가의 음악 안에도 이토록 다른 계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뭉클했다. 방금 전까지 곤두서 있던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면서, 오히려 더 깊은 감정이 밀려왔다. 사람은 때로 날카로운 슬픔 앞에서는 버티다가, 다정한 위로 앞에서 무너진다. 그날의 나는 조금 그랬다. 풀리는 선율을 따라가다가 문득 눈가가 뜨거워졌다. 아마도 그날의 봄빛, 공연 전 복도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조용한 표정, 20년 만에 다시 본 강동석 선생의 얼굴,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 앞에서 흘러가는 음악이 한꺼번에 겹쳐졌기 때문일 것이다.
전반부에서 객석의 온도를 단숨에 끌어올린 것은 신박듀오의 리스트 '헝가리 광시곡 2번'이었다. 한 대의 피아노 앞에 앉은 두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속도와 기세가 공간을 꽉 채웠다. 손이 교차하고, 박이 맞물리고, 서로의 움직임을 읽어가며 곡을 밀어붙이는 장면은 눈앞의 불꽃 같았다. 객석의 집중도도 단숨에 높아졌다. 누군가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고, 누군가는 프로그램북을 덮은 채 무대만 바라보았다. 그 생생한 에너지 속에서 나는 잠시 숨을 돌렸다. 실내악은 이렇게 사람을 울게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 있게도 만든다. 무너뜨린 뒤 일으켜 세운다. 그 진폭 때문에 음악은 끝내 사람을 놓아주지 않는다.
▲공연을 마치고 인사하는 장면이규승
봄의 파동은 공연장을 지나 마음의 바닥까지 스며들었다
인터미션 뒤 이어진 드보르자크의 피아노와 현악을 위한 5중주 A장조는 이날 공연의 가장 깊은 곳을 열어젖혔다. 전반부가 봄의 여러 표정을 차례로 보여주었다면, 후반부는 그 모든 표정을 한꺼번에 끌어안는 듯했다. 피아노와 현악이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소리는 넉넉했고, 따뜻했고, 때로는 눈이 시릴 만큼 환하게 번졌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각 연주자가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하나의 문장을 함께 써내려가는 듯한 합의감이었다. 실내악은 결국 함께 듣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듣고, 서로의 호흡을 기다리고, 상대의 떨림까지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는 음악. 그 점에서 이날의 드보르자크는 어쩐지 삶과 닮아 있었다. 사람도 결국 그렇게 살아가는 것 아닐까. 서로의 기쁨과 상처를 조금씩 듣고, 기다리고, 견디며 하나의 시간을 함께 통과하는 것.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나는 결국 눈가를 한 번 훔쳤다. 음악이 마음을 파고드는 순간은 대개 그렇게 온다. 큰 파도처럼 오는 것이 아니라, 다 안다고 생각한 마음의 틈으로 조용히 스며들어 어느새 물이 차오르는 식으로.
이쯤 되자 한 가지 생각이 더는 의심 없이 분명해졌다. 이날 서초센터의 분위기는 결코 예술의전당에 뒤지지 않았다. 물론 규모도 다르고 역사도 다르다. 서초센터는 지난 2024년 11월 문을 열었다. 그러나 클래식의 밀도는 건물의 크기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그날 이곳에는 음악을 듣겠다는 사람들의 집중이 있었고, 공간을 세심하게 가꾸어온 손길이 있었고, 소리가 사람에게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닿는 뜨거움이 있었다. 그것은 결코 작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직접적이었다. 큰 홀에서는 감탄으로 지나갈 순간이 이곳에서는 상처처럼 남았고, 따뜻한 장면은 위로처럼 와 닿았다. 클래식이 사람을 울릴 수 있다는 가장 오래된 사실을, 서초센터는 그날 너무도 조용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쉽게 자리를 뜨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누군가는 무대를 오래 바라보았고, 누군가는 로비로 나와 다시 프로그램북을 펼쳐 들었다. 공연 전 사람들을 맞이하던 복도와 로비는 이제 또 다른 표정으로 관객들을 품고 있었다. 봄빛은 여전히 안쪽까지 길게 들어와 있었고, 사람들의 걸음은 들어올 때보다 훨씬 느렸다. 좋은 공연은 끝난 뒤의 얼굴을 바꾼다. 그날 서초센터가 그랬다. 조금 조용해진 얼굴들, 조금 더 부드러워진 걸음들, 막 울음을 삼킨 사람처럼 가만히 입술을 다문 표정들. 나 역시 그들 가운데 있었다.
돌아 나오며 다시 건물 바깥을 올려다보았다. 봄볕은 여전히 밝았지만, 내 마음은 공연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어떤 저녁은 한 계절을 다시 쓰게 만든다. 그날이 그랬다. 나는 그날 비로소 알았다. 봄은 눈으로만 오는 계절이 아니라는 것을. 어떤 봄은 소리로 오고, 어떤 봄은 한 사람의 주름과 흰머리 위로 오고, 어떤 봄은 오래 묻어 두었던 마음의 바닥을 건드리며 조용히 밀려온다는 것을.
예술의전당만이 클래식의 집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날만큼은,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 역시 충분히 뜨겁고 충분히 깊은 또 하나의 집이었다. 그리고 '봄의 파동'은 그 사실을 음악으로, 사람으로, 공간의 온도로 보여준 저녁이었다. 아니, 보여준 것을 넘어 마음속 깊이 파고든 저녁이었다. 봄의 파동은 그날 공연장 안에서만 울리고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돌아오는 길에도, 밤이 깊어진 뒤에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 물결로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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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 <문화+서울>에서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에서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 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