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의 Tango > 스틸
한국영화아카데미
피난처인 공장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 중소기업 작업환경 떠올릴 때 평균 이상 환경. 인정 넘치진 않아도 합리와 상식이 통하는 곳. 하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작은 사회다. 지원의 삶을 벼랑으로 몰아간 관계의 어려움이 여기라고 없을 턱이 없다. 그래도 산전수전 겪으며 '땐땐'해진 그녀는 버틸 만하다. 신입이라 어리버리할 수밖에 없고, 텃세도 각오한 바다. 한참 어린 예전 조장의 눈총도 무시하면 그만. 한 귀로 듣고 흘린다. 지원이 터득한 생존 전략이다.
이 지경에 전락한 이후 누구도 믿지 않고 타인에게 기대지 않는 철벽을 무형의 갑옷처럼 휘감기로 골백번 다짐했을 테다. 역설적으로 그녀가 얼마나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는지 상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그런 상태에 마구잡이로 치고 들어오는 주희를 어떻게 대할까? 처음엔 한사코 막는다. 얼어붙은 지원의 세상에 주희는 존재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될 존재. 하지만 주인공의 급조 '방패'는 주희의 무한 호의라는 '창' 앞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꿰뚫릴 운명이다.
불가사의한 건 주희다. 지원은 동갑내기라 해도 배경이 전혀 다른 그녀의 호의를 이해하기 어렵다. 딱히 형편이 넉넉하거나 반대급부로 이익을 얻는 것도 없는데, 방실방실 웃으며 남을 대가 없이 도우며 먼저 손을 내밀까? 보면 볼수록 불가사의한 존재다. 가족을 부양하며 자기 몸도 챙겨야 하는데 마음이 약한지 '호구' 천성인 건지 늘 손해만 본다. 그래도 불평조차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냥 우직하게 묵묵히 견디며 보상 없는 친절로 주변의 어둠을 밝힌다.
하지만 양이 있으면 음이 있는 법. 시작부터 굴러온 돌에게 단독 조장 자리를 빼앗겨 오매불망 유감 많은 한별이 그렇다. '착해빠진' 주희가 챙기는 것 하나 없이 사람들 분위기를 아교풀처럼 잇는 동안에 한별은 끊이지 않고 자기 이익 혹은 순전한 악의에 의해 사람들을 이간질하고 분란을 퍼뜨린다. 물론 자기 합리화로 일관하며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눈치는 빨라서 잽싸게 태세전환을 펼친다. 사욕을 위해 시스템을 망치는 소인배의 전형이다.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투사하긴 쉽지 않다. 좋은 의도로 노력해도 재능과 운이 따르지 않으면 실패하는 비극은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목격된다. 건설적인 변화가 늘 최선의 경우를 불러오지 않는다. 그러나 남의 노력을 훼방하고 시샘하며 방해하기는 손쉽다. 물론 악마적인 음모가 아니라 사소한 시기와 질투, 시샘이 불러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지원을 밑바닥으로 추락하게 만든 '관계'의 민낯이자 어두운 이면이다. 착한 사람을 더 가만두지 않는다.
숨을 곳도, 고립주의도 답이 아니라면 결국 남는 건 뭘까
Tango는 속 없이 당하고만 사는 주희가 유일하게 집착하는 대상이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노동자와 서민 사이에서 유래한 이 춤은, 특이하게 반드시 두 명이 짝을 맞춰야 한다. 그것도 자유롭게 떨어졌다 붙었다 하는 게 아니라 서로 빤히 몸을 밀착하고 눈빛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칼처럼 딱딱 합을 이뤄야 온전하게 구현할 수 있다. 마치 인간관계를 고스란히 농축한 것 같은 춤이다.
널리 알려진 '탱고' 대신 본고장 식 스페인 발음을 어설피 흉내 내며 '땅고'라 강조하는 주희의 파트너 제안은 온갖 상상력을 유발하며 둘의 간격 변화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런 상징과 암시는 곳곳에서 연쇄 반응처럼 포착된다. 자신의 기술을 넘어 달과 지구 중력이 교차하며 조석간만 효과 창출하듯 연습에서 주희가 지원에게 들려주는 '땅고'의 정수는 곧 주인공에게 '관계'의 가치를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처럼 작용한다. 그러나 지원이 주희가 될 순 없다.
지원은 주희가 고맙긴 해도 온전히 동화할 순 없다. 주희의 선의는 대개 온전히 돌려받지 못한다. 남을 돕느라 제 것까지 다 내어주지만, 그렇게 내민 호의를 악용하고 등치려는 이들의 간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일쑤다. 그래도 종종 그녀가 내뿜는 희미한 빛과 온기는 작은 기적을 창조하곤 한다. 지원이 주희에게 끌리는 것 역시 그런 이적을 목격했기 때문일 테다. 마치 <행복한 라짜로> 속 주인공이 바보 취급을 당해도 결국엔 이웃들을 구원하듯 말이다.
'변장한 천사'처럼 지원 곁에 머무는 주희의 정체는 뭘까? 한참 그들을 응시하다 보면 어떤 원형질을 깨닫게 된다. 종종 코믹하게 희화화되는, 선택을 망설이는 주인공 곁에 달콤한 유혹과 솔직한 충고를 동시에 던지는 악마와 천사가 주희와 한별을 통해 구현된다. 주인공이 불신하는 인간관계의 얄팍함, 타인을 해치면서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소소한 악의의 실체가 형상화한 한별의 행태는 암을 유발하듯 희망을 짓밟듯 튀어나온다. 밉상 수준이 아니다.
세상의 질서에 휩쓸리며 낙담한 이들에게 바치는 송가
▲< 새벽의 Tango > 포스터한국영화아카데미
지원이 모는 차에 탄 주희가 던지는 질문. 도로에 차가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사고가 나지 않는 걸까? 지원이 답한다. 개인의 안전을 위한 이기심이 도로교통법이란 룰을 통해 형성한 질서라는 것. 지원에겐 세상을 구성하는 핵심 원리다. 주희도 모르진 않는다. 하지만 온전히 수긍하진 않는다. 초보자 지원이 자꾸 발을 밟자 자기 발을 지키기 위해 '밟혀도 덜 아픈 신발'을 내미는 게 그녀의 유일한 생존 전략. 동갑인 둘의 세계관은 이렇게 대비된다.
지원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물이지만, 그녀 대신 속죄하는 주희는 오히려 비인간적이다. 그래서 지원에게 '선물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아주 잠깐 주인공 삶에 스며들어 제 역할 다하고 사라지는 운명이다. 개인으로 주희를 평가하면 비극이지만, 주인공 운명에 부속된 존재로 접근하면 완벽하진 않아도 27살 지원을 무간지옥에서 현실로 되돌리는 길잡이 소임을 훌륭히 수행한 셈이다. 인물을 대하는 관점에 따라 영화의 결말은 천양지차로 다가온다.
단편 <거북이가 죽었다>에 이어 미래가 흐릿한 회색빛 청춘 군상에 도전한 감독은 전작에 이어 배우 이연을 페르소나로 삼았다.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눈빛과 깊은 침묵을 머금은 배우의 이미지를 호흡을 맞춰본 감독은 제대로 활용한다. 소녀와 성인 사이를 오가는 앳된 이미지가 관습화를 피해 딱 맞아떨어진다. 이젠 아이돌 꼬리표 떼고 독립영화 주연급으로 입지를 다진 권소현, 'MZ세대' 부정적 모습을 통째 조각한 듯 표독하고 교활한 역을 소화한 박한솔의 궁합이 심상찮다.
작지만 단단한 구조, 모두가 보고픈 후련한 결말과는 제법 간격이 있지만, 보고 나면 몇몇 장면은 오래 눈가에 맴도는 기운이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에게 여운을 진하게 드리울 작업이다. 대도시의 익명성과 관계의 어려움에 지친 이들을 위한 송가이자 우화로 기능할 영화.
[작품정보]
새벽의 Tango
Tango at Dawn
2024|한국|드라마
2026.04.22. 개봉|116분 43초|15세 관람가
감독/각본 김효은
출연 이연, 권소현, 박한솔
제공 영화진흥위원회
제작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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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