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빨간 나라를 보았니〉를 보기 위해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오산 옆 동네인 화성 병점으로 차를 몰았다. 홍주현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리얼 험지 선거 휴먼다큐'라고 소개했다. 영화는 2022년 지방선거에 나간 임미애 후보와 2024년 총선에 도전한 그의 남편 김현권, 두 사람의 2년을 담았다. 홍 감독은 방송 작가로 30년을 일해왔다. 그녀의 관심사는 늘 '사람'이었다. 영화는 빨간 나라, 구미에 사는 감독의 친구가 임미애 후보를 추천하면서 시작되었다. 원래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던 감독이었다.
보수 텃밭 경북에 나선 민주당 후보
▲<빨간 나라를 보았니> 스틸(주)트리플픽쳐스
영화의 배경은 보수 텃밭 경북에, 그것도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2022년이다. 지방 선거에 민주당의 험지 중의 험지인 경북에 뛰어든 임미애 후보의 선거 운동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아무도 없는 식당 구석에 홀로 앉아 식사하다 턱을 괴고 앉아 있는 임미애의 모습은 무척이나 고독해 보였다. 그녀는 눈물이 많다고 말했지만, 대중 앞에서는 달랐다. 피켓을 든 채 시장이든 도로 위든 가리지 않고 당당하게 나섰다. 거칠 것 없는 기개로 거리를 누비다가도, 카카메라 앞에 혼자 남겨지면 자주 울었다.
카메라는 이제 선거 현장의 냉혹한 대비를 비춘다. 한쪽에는 신이 나서 춤추는 빨간 옷의 선거원들과 환호하는 시민들이 가득하다. 반대편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유세차에 올라 쉰 목소리로 마이크를 잡은 파란 옷의 김현권이 있다.
그러나 빨간 나라라고 해서 빨간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감독은 그 틈바구니에 다양한 표정들을 포착했다. 시장을 누비는 후보가 건네는 명함을 냉랭하게 받아 든 여성 옆에서, 남편으로 보이는 남성이 나직이 속삭였다. "우리는 광주에서 살다 와서 다 압니다."
이번에는 임미애가 난전에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에게 이번에는 바뀌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을 걸었다. 한참 뜸을 들이던 할머니는 "나도 이번에는 바꿨으면 좋겠다"라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관객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배달하고 트럭에 오르는 젊은 택배 기사도 "파이팅!"을 외쳤다. 그러나 마치 해서는 안 될 금기어를 입에 올리기라도 한 듯, 세 사람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말했다.
험지 출마한 엄마와 아들
영화에는 주연뿐 아니라 경북 각지에서 동분서주하는 '조연 파랑이'들도 등장한다. 험지 출마를 위해 늘 통장에 1억 5000만 원을 저축해 둔다는 엄마와 아들, 배영애·황태성 후보가 대표적이다. 배영애는 "우리가 이곳을 지키기에 서울과 경기에서 민주당이 꽃피는 것 아니냐"는 말을 남기고 바삐 어디론가 뛰어갔다.
낙선이 예견된 길을 걷는 이유를 묻는 감독에게 정석원 후보는 답했다. "꽃은 못 되어도, 그 꽃이 피는 땅에 거름은 되지 않겠습니까?" 이 담담한 고백은 후보의 부인과 관객은 물론 감독까지 울렸다.
임미애·김현권 부부는 아들 둘을 뒀다. 두 아들 모두 부모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장남은 이길 수 있을 때만 반장선거에 나갔다며 고개를 저었고, 차남은 부모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며 이제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임미애는 자식들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는 선거에서 떨어질 때마다 농사가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고 우사(牛舍)에서 말했다. 그러면서도 굵어진 손마디로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결과를 알면서도 개표방송에서 나도 긴장했다. 이번에도 파랑이들은 고배를 마셨다. 망연자실한 채 술에 취해 우는 선거원도 있었다. 그 가운데 막내 선거원이 임미애 후보의 비례대표 당선 소식을 알리는 순간, 유일한 환호성이 터졌다.
23세 때 악명 높은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 의해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이후 여러 차례 수술을 받은 김현권 후보는 낙선했다. 하지만 선거 후 다시 길 위에 섰다. 그는 차들을 향해 깊은 절을 했다.
영화는 끝이 났다. 내 앞에 앉아 거의 오열에 가까운 눈물을 흘리던 여자분에게 말을 걸었다. 그분은 나와 같이 오산에서 왔고 운동 삼아 10km를 걸어왔다고 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었다. 경북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직접 보니 놀랍고 답답해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우리는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신영복 선생님의 '중심부는 기존의 질서를 지키느라 스스로 바꿀 수 없지만, 변방은 중심의 억압에서 자유롭기에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변방이론이 떠올랐다. 그들은 출세와 안락함이 보장된 중앙이 아니라 자기 뜻조차 안전하게 말할 수 없는 척박한 땅, 의성이라는 변방을 택했다. 그곳에서 아주 조금씩, 천천히 변화를 끌어내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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