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란도> 스틸컷
에이유앤씨
04.
"같은 사람이야. 다른 건 없어. 성별만 다를 뿐."
이전까지 이어졌던 전반부가 개인의 정체성과 시간적 측면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면, 네 번째 장인 '정치'로부터 시작되는 후반부는 역사적 흐름 속의 개인, 본질적 인간성, 그리고 성역할과 같은 주제가 중심이 된다. 네 번째 장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오스만 제국으로의 여정과 체류는 올란도가 개인이기 이전에 역사적 권력의 배치 속에 놓인 존재임을 드러낸다. 어떤 구조 내부에 개인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는 다음 장인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성으로 살아가기 시작한 올란도가 경험하게 되는 관습적, 제도적 권력과 결합하며 더 선명해진다. 사회가 한 개인을 어떻게 구조 속으로 밀어 넣는지,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인지하기 이전에 어떻게 분류해 왔는지 보여주는 대목인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올란도가 여성의 몸이 되어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일단 영화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 장에서 중요한 것이 성전환의 드라마가 아니라 성별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존재는 동일하다는 명제임을 분명히 한다. 하지만, 다음 장으로 넘어온 여성 올란도가 경험하게 되는 것들은 같지 않다. 남성이었을 때 당연했던 자유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제한되고, 재산 상속이나 법적 지위는 흔들리기만 한다. 특히, 대공인 해리(존 우드 분)는 자신이 올란도를 흠모하기에 그의 소유여야 한다는 욕구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과거 남성이었던 올란도가 자신을 떠나려는 샤샤에게 했던 모습 그대로다.
'성별만 다를 뿐'이라던 영화의 바람은 여섯 번째 장인 '성'에 이르러서야 어느 정도 이루어진다. 이미 남성으로도, 여성으로도 살아본 올란도는 하나의 성별 안으로 완전히 수렴하지 않는다. 갑자기 나타난 쉘머딘(빌리 제인 분)이라는 남성과의 관계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란도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따를지, 남을지를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다. 그 선택의 가능성 자체가 과거의 자신과는 다른 궤도 위에 놓여 있다. 수동적인 여성의 선택이 당연시되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이는 더욱 그렇다. (패닝되는 카메라 속에 반복적으로 담기는 두 인물의 대사는 그래서 중요하다.)
05.
마지막 장이 '탄생'으로 맺어지는 것은 단순히 첫 장인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순환적 의미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현대에 이른 올란도는 더 이상 귀족도 아니고, 귀부인도 아니다. 그는 이제 한 아이와 함께 서 있으며, 자유로운 들판 위에서 카메라 앞에 놓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최종적으로 어떤 정체성으로 읽힐 수 있게 되었는가가 아니라 비로소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점이다. 영화의 모든 장면 속에서 올란도는 끊임없이 세계의 규칙 속에서만 규정되는 존재였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사랑은 외부적 조건에 의해 실패했고, 사회는 그를 다른 위치로 밀어 넣었으며, 성별은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삶을 뒤바꿔놓는다. 종장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자신을 하나의 이야기로 다룰 수 있는 상태가 된 셈이다. 이전까지가 '살아지는 삶'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스스로 '풀어낼 수 있는 삶'으로의 이동이다. 이 전환이 곧 새로운 탄생이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올란도는 마지막 장면의 처음에서 그려지는 대로 비로소 하나의 작가가 된다.
이렇게 읽게 되면, 영화 속 일곱 개의 장은 사건의 나열이 아닌, 인간 존재의 조건에 대한 목차처럼 여겨진다. 죽음은 세계의 시작점이고, 사랑은 가장 먼저 무너지는 환상이다. 시는 자아를 고정하려는 시도이며, 정치는 인간을 구조 속에 다시 배치하는 힘이다. 사회는 그 힘이 일상으로 스며든 형태이고, 성은 가장 본질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불안정한 범주다. 그리고 탄생은 새로운 시대의 시선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일이다. 이 연결성은 감독인 샐리 포터가 원작을 자신의 언어로 재번역하는 과정에서 창조한 셈이나 다름없다. 원작이 여러 시대를 건너 한 개인의 전기를 보여주고자 했다면, 영화 <올란도>는 그 생을 일곱 개의 단어(개념)로 압축해 펼쳐 보이고자 한 것이다.
▲영화 <올란도> 스틸컷에이유앤씨
06.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개개인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남고자 하더라도, 법은 다른 사람으로 읽으려 하고, 사회는 다른 규칙을 적용하며, 또 시대는 다른 얼굴을 요구한다. 개인의 동일성 혹은 정체성이라는 것이 단지 개인 내면의 확신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제나 외부의 인정과 충돌하고, 제도의 언어와 어긋나며, 기록의 형식 속에서 흔들리며 나아가기 마련이다. 이 영화가 지금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현재의 우리 역시 더 빠른 속도와 다양한 시선 아래에서 끊임없이 다시 읽히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이 글에서 이야기 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상하리만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틸다 스윈튼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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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