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사라질 수 없었다... '미분류영화제'의 분류되지 못한 작품들

[김성호의 씨네만세 1319] 제1회 미분류영화제 초청작과 섹션2

상영관부터 빌렸다고 했다. 영화제를 위해서였다. 출품작 한 편도 없는 전에 없던 영화제가 그렇게 시작됐다. 갓 서른 된 젊은이, 단편 한 편을 직접 찍은 게 전부인 연출자이자 연극과 웹드라마로 조금씩 경력을 쌓아온 4년 차 배우 차경찬이 만든 영화제에 수십 편의 작품이 모여들었다. 어떤 대가도 없는, 찾는 관객 또한 보장할 수 없는 영화제에 제 작품을 걸겠단 이가 그토록 많았다. 서로 제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이들이 그렇게 한 자리에 모여들었다. 지난 10일 저녁 있었던 제1회 미분류영화제가 바로 그 장이 됐다.

처음 올린 스레드 게시글을 타고 영화제 소식이 널리 퍼져나갔다. '기존 영화제의 분류 기준이나 공모 과정에서 상영 기회를 얻지 못했던 작품들을 다시 발견하고 소개하기 위해 기획된 독립 영화제'란 정체성에 호응해온 이들이 많았다. '장르, 형식, 러닝타임, 언어, 제작 규모를 묻지 않'는다며 '다만 아직 관객을 만나지 못한 영화가 있다면, 그 자리를 만드는 것이 이 영화제의 이유'란 사실에 많은 영화인들이 문의해왔다. 여러 영화제에 작품을 내봤으나 번번이 미끄러진 이들이었다.

애써 만든 영화가 한 영화제에서도 틀 수 없다면 어찌해야 할 것인가. 누구는 제 작품이 기성 영화제에서 틀어진 작품보다 못하단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을 테다. 또 누구는 부족한 영화라도 어느 한 곳에선 상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아쉬워했을 테다. 그렇고 그런 마음들이 모여 분류되지 않은 영화의 축제를 성사한 것이다.

헬렌과 켈러 스틸컷
헬렌과 켈러스틸컷미분류영화제

귀한 자리 얻은 12편의 작품

소개된 작품은 모두 12편이다. 두 개 섹션에 든 11편과 초청작 한 편이다. 시간을 고려한 단편들의 묶음으로, '미분류'란 정체성에 맞게 따로 엄격한 기준으로 작품을 선별한 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나는 섹션 간, 또 작품 간 정체성의 차이를 느낀다. 기존의 틀에서 장르며 형식에 들지 않는 작품을 모았다는 첫 섹션, 또 '신인 감독, 숨은 작품, 실험적 시도'를 모았다는 두 번째 섹션 사이에 나름의 이유를 단 건 어찌할 수 없는 분류와 구분이 있었음을 방증한다.

의미 있는 지점을 많이 찾을 수 있었던 첫 섹션과 달리 두 번째 섹션과 초청작은 글 하나에 묶어 소개한다. 초대작은 <밴드를 떼는 시간>이다. 영화제를 기획하고 운영한 차경찬 배우의 연출 데뷔작이자 직접 주연한 작품이다. 15분의 단편으로, 다분히 투박하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상실과 그에 대항하는 마음까지를 담아낸다. 가까운 무엇을 잃어본 적 있는 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구석이 없지 않은 드라마다. 그 연출과 각본에 있어 따로 언급할 만한 구석이 얼마 없으나 그저 일이 떨어지길 기다리지 않는 배우의 의지와 도전정신 만큼은 분명하다. 못한 습작 하나가 감나무 아래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느니보다 낫다. 정말이지 나는 그렇게 여긴다. 저의 현재를 동료들 앞에 기꺼이 펼쳐 소개한 차경찬의 작품 뒤 본격적인 섹션2가 문을 연다.

<경보> <평가의 방> <찾아주실 분 찾아요> <영영> <헬렌과 켈러> <이븐도우>까지 여섯 편의 작품이다. 신진부터 업계에서 제법 잔뼈 굵어진 이들의 실험적 작품까지가 다양하게 담겼다. 우선 <경보>는 서채민의 5분짜리 짧은 단편이다. 5분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궁금한 이도 있겠다. 5분이라면 단편영화보다도 TV광고에, 혹은 유튜브 쇼츠며 인스타그램 릴스에 더 가깝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영화는 5분이면 충분하단 사실을 보인다. 제가 하고픈 말, 여기서는 퇴로 없는 상황 가운데 선 이의 스트레스를 관객 앞에 보이는 데 말이다. 가전제품이 돌아가며 내는 경보음으로부터 출산 뒤 여성의 스트레스며 부담, 우울 따위를 전하는 영화다.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를 엮어낸 시도가 일견 흥미롭긴 하다.

영영 스틸컷
영영스틸컷미분류영화제

그저 가만히 사라질 수는 없어서

<평가의 방>은 최길리의 10분짜리 단편이다. 저기 공포영화 사상 가장 탁월한 작품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의 취업면접 버전이랄까. 같은 문구를 반복해 적는 인간의 모습, 또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야만 제 쓰임의 자리를 얻을 수 있는 현대사회를 그리려 했던 듯도 하다. 명징한 서사며 대단한 주제의식, 그를 효과적으로 풀어내는 솜씨까지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작품이다. 마음껏 난해해지지도 모호해지지도 못한 채로 멈춰 선 연출은 아마도 목표하는 지점이 불명확했던 때문인 듯도 하다. 상영 뒤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 선 최길리 감독은 "모든 직업은 평가를 받는다"는 제 친구의 말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말하였는데, 언젠가는 제가 진정으로 하고픈 이야기로부터 출발하고 끝맺는 작품을 찍어내길 바란다.

도예영 감독의 <찾아주실 분 찾아요>는 바로 앞에 적은 문장의 결과물이랄까. 감독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불특정 관객 앞에 마음껏 풀어놓은 한 바탕 낙서장 같다. 본래 연극 각본으로부터 출발해 극화된 어투가 그대로 영화 안에 담겼단 것 또한 인상적인 대목이다. 놀이터에서 만난 세 남녀가 도무지 무얼 찾는지 알 수 없는 채로 무언가를 찾기는 하는 기묘한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담았다. 무지하게 취향을 탈 것 같은 이 이야기를 구태여 영화로 만든 이유를 묻는 질문에 감독은 "내가 만든 영화이기도 하지만 유머 코드가 완전히 내 취향이어서 영화로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과연 그와 같은 취향이라면 시종 웃으며 볼 수도 있겠구나 하였다. 물론 그 반대도 있겠으나.

<영영>은 오랜 시간 함께했던 TV를 고치기 위해 중고가전매장을 찾아간 은조의 이야기다. 이제는 찾아보기도 힘들어진 무려 브라운관 TV를 고치러 온 은조는 그 수리 방법이 마땅찮단 사실을 알게 된다. 때리거나 말을 걸어 설득하거나 부활을 기도하거나 말고는 처방이 없는 상황, 은조는 말을 걸어보기로 한다. 감독은 이제는 찾는 이 얼마 없어 뵈는 전파상과 유물에 가까운 브라운관TV를 통해 보는 이에게 낡음과 지침, 다함과 헤짐의 정서를 일으킨다. 그러나 그 끝에서 애정과 욕구가 남아 있기만 하다면, 그를 되살릴 용기며 의지 또한 있다면, 다른 가능성도 있을까. 영화가 그저 낡은 가전의 이야기이기만 하지 않단 걸 영화를 본 이들은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을 테다.

찾아 주실 분 찾아요 스틸컷
찾아 주실 분 찾아요스틸컷미분류영화제

진지하거나 나태하거나, 편하거나 불편하거나

이재윤 감독의 23분짜리 단편 <헬렌과 켈러>는 섹션2에선 가장 문제적 작품이라 해야 옳겠다. 시각장애가 있는 언니 수안과 청각장애가 있는 동생 수이가 마주한 절망적 순간과 이들이 맞이하는 반전적 장치가 분명한 극적 효과를 도모한다. 감각의 장애와 경제적 붕괴, 돌봄의 망실이 전하는 파국의 현장을 영화가 어떻게 소비하며 활용하는지가 인상적이다.

혹자는 이 영화의 자세가 어리고 유치하다 할 수 있겠다. 장애와 죽음을 소비하는 방식과 사회를 인지하며 내보이는 방식이 모두 그러하다. 반면 영화적 상상력과 표현의 적극성에 집중한다면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을 테다. 더 분명해지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때로는 물음표를 남기고 감각하도록 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 이 영화가 선 방향은 후자에 가깝다. 관객에게 나름의 질문을 남기는 것, 그 목적만 이루면 반은 성공했다 할 것이다.

마지막은 <이븐도우>다. 이준의 감독은 1년에 300편이 넘는 영상을 오로지 수익을 목적으로 찍는 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이 영화는 어느 순간 돌아서 보니 제가 정작 찍고 싶은 영상을 찍지 못하는 직업인의 현실에 더는 매몰될 수 없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했다고. 그러나 생업에 치여 따로 시간을 내기 버거운 생활인의 한계 앞에 그는 적당하고 적절한 타협점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각본 없이 카메라만 들고 배우들에게 무한정 자유를 주는 것이다. 이쁜이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도우가 이별의 이유를 알고자 여자가 도망간 섬으로 찾아가 빚어지는 이야기, 오직 그것만으로 10분의 단편을 찍어낸 것이다. 배우들의 활약 속에 작업이 어찌저찌 마무리된 영화가 제1회 미분류영화제를 통해 관객과 만났으니 어찌 됐든 완주는 해낸 것이다. 박수를 보낸다.

미분류영화제 포스터
미분류영화제포스터미분류영화제

존중하는 마음

제1회 미분류영화제에 대해 성공이나 실패, 가능성과 한계와 같은 거창한 딱지를 붙이고 싶진 않다. 어느 배우가 충분한 창구가 마련되지 않는 창작품에 대해 생각하였고, 저와 같은 영화인이 이 영화계 안에 얼마든지 있으리라 의문을 품었다. 그리하여 상영관을 잡고 영화제를 기획해 홍보하였다. 그 결과로써 위와 같은 작품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그 안에서 무언가를 보기는 한 것 같다. 탁월하거나 훌륭하거나 감동적이라거나 하는 대단한 말을 붙이기는 어려워도 무언가 꼼작거린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 점은 희망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 또한 있다. 영화제가 아닌 관객, 아마도 동료 창작자이기도 할 적잖은 이들에 대한 것이다. 제가 지은 작품을 통해 제1회 미분류영화제 현장을 찾은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제 작품을 보고 난 뒤 자리를 뜨는 일을 목격하였다. 영화제는 하나의 축제이고, 동료 창작자들에 대한 존중의 자리이기도 하다. 무조건적인 응원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작은 창구 하나가 더없이 귀하단 걸 알고서 어렵게 마련한 자리지 않은가. 그에 부응하여 작품을 보낸 이들의 자리이지 않은가. 동료 창작자에게 존중을 표하지 않는 태도, 나 하나쯤이야 괜찮겠지 하는 자세가 드러내는 가벼움을 다음 영화제서는 보고 싶지 않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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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