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통과"... 영화 '디레미디'의 시도

[김성호의 씨네만세 1317] 제1회 미분류영화제 <디레미디>

"이 영화는 서사를 제거한다. 이미지와 사운드, 그리고 신체의 반응만으로 하나의 상태를 기록한다. 감각은 점점 증폭되고, 몸은 점점 시스템에 맞게 변형된다. 관객은 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통과한다. 이것은 이야기보다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제1회 미분류영화제서 소개된 영화 <디레미디>에 대한 감독의 변이다. 서사, 그러니까 이야기를 제거했단다. 시간에 따라 이야기가 흘러가며 관객에게 제가 무엇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영화의 가장 주효한 무기를 감독은 스스로 내려놓았다.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지는 전쟁터에 제게 가장 잘 맞는 무기를 내려두고 나서는 병사란 어떤 모습인가. 그가 마주할 운명은 또한 어떤 것일까. 영화 <디레미디>를 보는 건 이를 확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감독은 서사를 내려놓은 자리에서 이미지와 사운드, 그리고 신체의 반응을 활용한다. 하나의 상태를 기록하는 것이 목적이다. 권력은 공백을 허하지 않는다 했다. 그저 지정학에서만 통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를 보는 이는 누구나 이야기에 주목한다. 제가 감독이 풀어내는 어떤 이야기를 알기 위하여 영화를 본다고 믿는다.

디레미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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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를 배제한 자리에 부각되는 것들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가장 강한 영향을 발하는 서사가 배제된다면 어떨까. 자연히 영화를 이루는 제 요소가 그만큼 많은 조명을 얻게 된다. 색감과 화질, 조도, 배경과 소품의 배치며 구도 따위의 이미지적 요소들이 그렇다. 영화 위에 얹혀진 소리 또한 더는 조연으로 전락하지 않는다. 어쩌면 주연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배우의 연기, 맥락 따위가 불필요하거나 상당부분 거세된 상태에서 펼쳐지는 표정과 몸짓, 발성 따위가 그대로 관심을 받을 수 있겠다.

소리와 이미지, 배우까지가 평소보다 부각되어 빚어내는 감각적 차이가 있을까. 그에 영향을 받는, 어쩌면 상호작용하는 관객의 움직임 또한 있을까. 영화 <디레미디>가 기대하는 게 바로 이 지점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디레미디>를 영어로 풀면 'Deremedy'가 된다. 감독은 영화가 끝난 뒤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제목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eremedy'는 영어로 의약품(치료약)이란 뜻인데, 여기에 부정어인 'de'를 붙여 만들었다고 말이다. 치료하지 않는 약, 말하자면 문제를 증폭게 하는 약을 영화의 제목으로 삼았단 이야기다. 과연 무언가를 망치는 것이 영화에 등장하기도 한다.

디레미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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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적 발상부터 난투까지

조태민, 정윤호 감독이 함께 연출한 영화는 어느 건물 옥상 주차장으로부터 시작한다. 다분히 불량해 보이는 이와 상태가 온전치 못한 듯한 두 사람이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접선한 모양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사려 든다. 마치 마약거래를 연상케 하는 모습인데, 거래되는 건 우리가 아는 마약이 아니다. 메모리카드 형태의 칩이다.

그러니까 SF다. 칩을 구한 이는 제 머리 뒤 슬롯에다 그를 가져다 꽂는다. 칩이 작동하는 모양, 꽂은 이는 온 몸을 떨며 정신을 잃는다. 영화는 그의 시선에서, 다시 다른 이의 시선에서 같은 장면을 두 차례 내보인다. 앞의 이에게선 끊어지는 인식으로 낯설게, 뒤의 이에게선 우리가 일상적으로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같은 상황을 연속해 이어붙인다.

칩엔 제각기 색깔이 붙어 있다. 가장 강한 강도의 자극부터 약한 강도까지, 마치 마약의 종류며 그 순도를 보여주듯 서로 다른 색깔이 칩마다 붙어 있다. 사는 이는 더 강한 자극을 구하려 들고 파는 이는 그만한 대가가 없다면 팔지 않을 듯한 모양새다. 영화는 그로부터 칩을 구하려는 이의 이상행동과 그 결과까지로 이어진다.

미분류영화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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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게 할 필요 없다, 통과하게 하면 된다

<디레미디>가 대단한 이야기를 품고 있지 않다. 서사를 덜어냈다는 감독의 이야기처럼 간단한 상황과 그에 따른 반응만이 주어질 뿐이다. 영화는 촬영과 음악, 그리고 연기의 합으로써 지탱되며 이어진다. 감독은 감각이 증폭되고, 몸이 변형되는 과정을 다루었다고 하였는데, 보는 이에 따라 그렇게 이해할 수도, 전혀 그렇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 보인다.

관객을 이해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통과한다고 말하는 건 감독이 아예 이조차 기대하지 않았음을 말한다. 이야기보다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라는 정의는 <디레미디>가 통상적 극영화도, 그렇다고 야심찬 실험영화도 되지 못한단 사실을 알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러닝타임 내내 관객의 주의를 붙들고 있음은 사실이다. 여기엔 다분히 거친 이미지며 설익은 연기보다는 자극적이고 선명한 음악의 힘이 크다. 영화가 끝난 뒤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온 질문도 이와 관련된 것이었다. 감독은 "음악감독이 저와 막역한 사이"라며 "영화가 음악에 맞춘 부분도 있고, 또 음악이 영화에 맞춘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특징적인 음악이 실험의 지점이 모호한 영화를 얼마쯤 지탱해낸다. 나름대로의 성과라 할 수 있겠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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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