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왜 우리는 다시 맥베스를 호출하는가

연극 <맥베스 리포트 쇼>가 던지는 불편한 질문

최근 공연계에서는 유독 맥베스를 변주한 작품들이 이어지고 있다. 호텔 전체를 누비는 이머시브 연극의 신화 <슬립노모어>부터,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참호 속의 <벙커 트릴로지-맥베스편>, 역동적인 무협 액션으로 재탄생한 <칼로막베스>, 그리고 2025년 초연 전석 매진 후에 다시 돌아온 정치 풍자극 <맥베스 리포트 쇼>까지.

창작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맥베스를 소환하고 있다. 형식은 다르지만, 질문은 같다. 왜 지금, 다시 맥베스인가.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이미 수없이 반복되어 왔다. 어떤 공연에서는, 그 질문이 더 이상 무대 위에만 머물지 않는다. 관객은 질문을 마주하고 실제로 공연 도중에 배우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선택을 말해야 하는 순간을 맞는다.

"당신이 최고 권력자가 된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4월 19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연희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맥베스 리포트 쇼>는 이 질문을 던진 채 관객을 무대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그 순간, 맥베스는 더 이상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마녀의 예언과 밀실의 권력... 합리가 실종된 시대

"세상을 속이시려면, 세상 사람들처럼 보이세요." 던컨왕 시해를 망설이는 맥베스에게 레이디가 속삭인다.
"세상을 속이시려면, 세상 사람들처럼 보이세요."던컨왕 시해를 망설이는 맥베스에게 레이디가 속삭인다.배현정

맥베스의 비극은 광야에서 만난 마녀들의 기만적인 예언에서 출발한다. "왕이 되실 분"이라는 주술적인 속삭임은 맥베스 내면의 탐욕을 깨우고, 합리적인 이성을 마비시킨다.

이 오래된 서사는 기묘하게 오늘날의 풍경과 겹친다. 공적인 토론과 철학은 사라진다. 그 자리에 확인되지 않은 속삭임과 비합리적인 확신이 들어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형성된 판단이 현실을 움직이는 구조. 우리는 이미 그것을 낯설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또 다른 축은 '밀실'이다. 맥베스를 자극하고 부추기는 레이디 맥베스는, 통제받지 않는 측근 권력이 어떻게 지도자의 판단을 잠식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예언과 측근에 기대어 작동하는 권력은 결국 불안과 공포를 낳는다. 반대파를 제거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점점 더 현실과 단절되는 통치.

이 구조는 수백 년 전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정치와 권력 작동 방식을 떠올리게 할 만큼 낯설지 않다. 그래서 맥베스는 반복된다. 직접 말하기 어려운 것을 비추기 위한 우회적인 언어로서.

어느새 권력의 '공범'이 되어버린 관객

"이게 다 뭐야아, 나 이런 거 안 좋아해요오" 청탁자들이 가져온 (명품) 선물 보따리를 들여다보는 레이디 맥베스
"이게 다 뭐야아, 나 이런 거 안 좋아해요오"청탁자들이 가져온 (명품) 선물 보따리를 들여다보는 레이디 맥베스배현정

극단 바바서커스의 <맥베스 리포트 쇼>는 이 질문을 가장 노골적인 방식으로 확장한다. 이 작품에서 맥베스는 더 이상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그의 이야기는 '보도(Report)'의 형식을 빌려, 하나의 사건처럼 재구성된다. 권력의 암투는 뉴스가 되고, 인물들은 인터뷰의 대상이 되며, 몰락의 과정은 하나의 '쇼'처럼 소비된다.

권력을 쥔 맥베스는 MSG(Make Scatland Great)이라는 문구가 쓰인 익숙한 빨간 캡을 쓰고 나와서 대중 선동 연설을 한다. 레이디 맥베스는 추종자들로부터 명품(그것도 가방으로 보이는 사이즈의) 쇼핑백을 잔뜩 받아들고 자신의 지위를 뽐낸다.

정말이지, 오늘날 뉴스 소비자들에게는 익숙한 정치 풍자 밈이 아닌가. 이 과정에서 관객은 고전을 감상하는 위치를 벗어난다. 대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목격하는 시선으로 이동한다.

"Make Scatland Great!" 맥베스가 왕위에 즉위해서 대국민 선동 연설을 한다.
"Make Scatland Great!"맥베스가 왕위에 즉위해서 대국민 선동 연설을 한다.배현정

그리고 이 작품은 한 발 더 나아간다. 관객은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 하나의 질문을 받는다. "당신이 최고 권력자가 된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문제는 이 질문 자체가 아니다. 관객이 그 질문에 대해 스스로 성찰하고 답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연 도중 객석의 조명이 켜지고, 배우와 관객은 소그룹으로 나뉘어 생각을 나눈다. 누군가는 농담처럼 답하고, 누군가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다.

그 짧은 순간, 관객은 더 이상 외부자가 아니다. 맥베스는 잠시 무대에서 내려오고 관객이 그 자리에 올라선다. 한발짝 떨어져서 권력을 평가하는 관찰자가 아니라, 그 가능성을 스스로 가정해보는 주체적 위치로 이동한다.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은 침팬지와 다를 바 없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인상적인 장치는 '침팬지'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무대와 객석을 오가는 침팬지들은 관객을 스쳐 지나가고, 때로는 소지품을 건드리거나 간식을 탐한다. 이 낯선 풍경은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명확한 의미를 드러낸다. 권력 욕망이 폭주하는 순간, 극중 인물들은 인간의 언어를 잃고 원초적인 몸짓과 소리로 변한다.

이는 사회적 자아와 이성을 내려놓은 인간이 결국 얼마나 쉽게 본능으로 퇴행하는지를 보여주는 은유다. 문명과 제도의 외피 아래, 권력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단순한 존재로 환원되는지를 드러내는 장면.

그리고 그 장면을 바라보는 관객 역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이미 한 번, '권력을 가진 나'를 상상해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권력욕에 눈이 멀어 '사회적 자아'와 합리적 이성을 놓아버린 인간은 결국 날것의 본능만 남은 짐승, 유인원과 다를 바 없다는 은유다. 그리고 그 장면을 지켜보던 관객 역시, 이미 한 번 '권력을 상상해본 사람'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문명과 제도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결국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서열 싸움을 벌이는 야만의 무리와 다를 바 없다는 조롱이기도 하다. 품격을 잃어버린 현대 정치판의 야만성을 이보다 더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이 작품이 인상적인 이유는 메시지 때문만이 아니다. 그 메시지를 직접 체험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다.

인간인가 침팬지인가 공연 시작 전, 침팬지로 분한 배우들이 공연장과 객석을 누빈다.
인간인가 침팬지인가공연 시작 전, 침팬지로 분한 배우들이 공연장과 객석을 누빈다.배현정

부조리를 고발하는 리포트, 이 모든 것을 비웃는 쇼

극단 바바서커스의 <맥베스 리포트 쇼>는 무겁고 엄숙한 비극이 아니라, 날카로운 현실 풍자극이다. 원작의 인물들은 현대 사회의 정치가, 언론인, 혹은 그 주변을 맴도는 권력 지향적 군상들로 절묘하게 치환된다.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극은, 권력의 암투와 몰락을 한 편의 부조리한 '쇼'로 만들어버린다. 현실의 정치가 이미 한 편의 막장 드라마를 능가하는 상황에서, 무대 위의 과장된 풍자는 오히려 묘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이번 작품을 무대에 올린 극단 바바서커스의 관계자는 "우리 안에 흐르는 침팬지의 생존 본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이 작품은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목격하고 있는 정치 리더들의 경박함에 대한 조소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그 조소의 끝에서 마주한 것은, 특정 개인의 결함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 종(種)의 DNA에 새겨진 권력욕에 직면했다. 극 중 인물들이 침팬지의 언어와 몸짓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인간으로서 '퇴행'한 것이라기보다는 문명이라는 외피 아래에 숨겨진 '생존 본능'이 발현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맥베스는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시대가 불안정해질수록, 그는 더 자주 호출된다. <맥베스 리포트 쇼>는 그 반복을 가장 직설적인 방식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 공연은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단순히 고전의 해석에 그치지 않고, 생생한 체험에 가깝다.

과연 누가 맥베스인가. 그리고 그 질문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 질문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썩 꺼지지 못할까 죄책감과 환영에 시달리며 몰락하는 맥베스
썩 꺼지지 못할까죄책감과 환영에 시달리며 몰락하는 맥베스배현정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https://brunch.co.kr/@jenjenjen에도 실립니다.이 기사를 읽고 흥미를 느꼈다면 현재 예매 가능한 공연. 4월 19일까지 연희예술극장에서 이어질 예정.

✔️ 공연명 : 맥베스 리포트 쇼
✔️ 장소 : 연희예술극장
✔️ 기간: 4/9(목)~4/19(일)
✔️ 극단 : 바바서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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