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에게> 스틸
미디어나무(주)
여기까지만 보면, 장애인과 사회적 참사 유가족, 가정폭력 피해자와 4.3 희생자 가족이란 다양한 형태의 사회/국가 폭력 희생자들이 공통점을 찾아내며 각자의 외로운 '섬'과 '섬'을 잇는 경로가 드러난다. 21세기 한국 사회를 휘감은 채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 과거로부터의 부정적 유산, 문제의 근절에는 무관심한 채 주먹구구 봉합에만 매몰된 사회 시스템,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거나 단지 시혜적으로만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에 맞서 '고통받는 자들의 연대'가 생성되는 현장 목격담인 셈이다.
하지만 이 광대한 여정을 이어달리는 건 '주희'라는 모험가다. 태어날 때부터 삶 자체가 생존 투쟁이던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악운을 원망하며 '천하제일 불행대회'에 도전할 수도 있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남의 형편 돌아볼 여유가 어디 있으랴. 자기 형편을 정당화하며 주희는 충분히 이기적으로, 자기중심주의로 향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만난 이들의 세상을 향한 싸움을 목격하고 연대하며 다른 방식에 눈을 뜬다.
이제 주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무한히 확장한다. 21세기 한국 사회의 부정적 기원, 희생제물로 유지되는 불의한 시스템, 소외된 이들에 대한 방치가 어떻게 맞물리는지, 공통된 기원을 갖는지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녀의 눈에 흔히 4.3 희생자라면 떠올릴 형상화와는 색다른 형태를 갖는 성필의 가족사, 얼핏 무례하고 이기적으로 비치기 좋은 철규의 불가사의한 고집, 이젠 그만 망각으로 떠나보내야 합당해 뵈는 사안에 매달리는 인숙의 심지가 거대한 풍경화처럼 조화롭게 이어진다.
그런 이들을 바라보며 주희 또한 선택해야 한다. 자신의 기구한 삶을 다스리기 위해 '나'는 어떤 행로를 택해야 할까? 자신과 엄마, 여동생을 칭칭 휘감은 가족이란 족쇄를 어떻게 끊어낼 수 있단 말인가. 간신히 끔찍한 질병에서 벗어났지만, 중단된 영화의 꿈은 계속될 수 있을까? 끝없는 질문과 마주하며 도망치지 않은 채, 주희는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세상의 모순을 똑바로 대면하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법,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사방에 무서운 것 천지다. 다른 이들의 불운을 가까이 하면 그 어둠의 기운은 나에게로 전염된다. 하지만 한 번 나눠버린 친구들의 상처를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게다가 자신이 풀어야 할 숙제도 가득하다. 어찌할 수 없는 가정폭력 멍에에서 그저 탈주하고 싶은 따름이다. 세상 끝까지 도망친다 해도 과연 안전은 보장될 수 있을까? 피할 수 없다고 지금도 나를 위협하는 공포에 맞서는 게 가능한 일일까? 주희는 끝없이 스스로에 묻고 또 묻는다. 답은 '가지 않은 길'에 용맹하게 들어서는 것뿐이다. 안개 속의 미로를 오직 자신의 판단으로 돌파하기.
사회적 폭력의 희생자들을 잇는 지도 만들기
▲<주희에게> 스틸미디어나무(주)
한국 독립영화에서 시스템의 불합리, 사회적 참사와 국가폭력에 맞서는 저항은 떼어낼 수 없는 화두로 불변의 가치를 지닌다. 비록 과거 '영화운동' 시절과 비교하면 확연히 '개인적인' 것의 비중이 늘어난 21세기 상황에서도 기저에는 변할 리 없는 진실이 깔린 채다. 그리고 한동안 개별의 국가폭력 희생자, 사회적 재난에 대한 접근으로 채워지던 독립 다큐멘터리 작업에도 점차 새로운 형태의 세계관이 조성되기 시작한다. 각 사안의 유래와 기원, 공통점 찾아내기란 일관된 방향성이다.
다만 몇 명의 '표본'이 어쩌다 우연히 만났을 뿐이건만, <주희에게> 속 주인공들은 그들 각자의 사연을 통해 거대한 지도를 완성해 나간다. 개인, 여성에서 출발한 미시적 일상사 저편의 지극히 사적인 불행은 4.3과 세월호라는, 세기를 초월한 국가적 재난, 사회를 구성하는 토대의 위기로 자연스레 확장하며 서로의 접속 코드를 자체적으로 형성한다. 그 가운데 과거의 사회운동 형태와는 다른 방식의 대안적 운동이 꿈틀대며 맹아를 갖추기 시작한다.
그것은 '대'를 위해 '소'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획일화 대신 다양성 속의 융합이라는 미래 대안으로 향한다. 물론 갈 길은 멀다. 수많은 '주희'들은 앞으로도 숱한 암초와 장벽에 부딪힐 테고, 영화 속에서 감춰지지 않던 의견 차이로 논쟁에 시달릴 게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순 없다. 기득권과 불의에 맞선 고통받는 자들의 연대는 시작일 뿐이다.
영화는 개별적 작품 완성도를 넘어 공감 가는 이들의 여행기로 귀결된다. 개인으로서의 '주희'가 찾아낸 저항의 방식은 여전히 망설이는 이들에겐 '희망의 근거'로 기능할 테다. <주희에게>는 그 입구를 여는 '작은 문'의 일부다.
<작품정보>
주희에게
Dear Juhee
2025|한국|다큐멘터리
2026.04.15. 개봉|104분|12세 관람가
감독 장주희, 부성필, 김성환
출연 선철규, 전인숙, 장주희, 부성필, 박종대
제작/배급 미디어나무(주)
공동제작 와동필름
공동배급 오마이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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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